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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30. 2023

코로나 19, 더욱 좁아진 청년의 자리

코로나19는 단순한 재난으로 표현 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로 하여금 이 사회의 불확실성, 불안정성을 마주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확진자가 몇 명이라고 하는 질병관리의 통계적 접근으로 다가설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를 포함하여 재난 또는 재앙이라고 표현되는 무언가는 항상 가장 약한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가 지금까지의 모순들을 드러냅니다. 


불안한 노동환경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였던 ‘가려진 노동’

청년의 노동은 대부분 취약한 노동환경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고 있지 못한 것도 청년들이 많이 일하는 다양한 일터입니다. 콜센터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올해 3월 콜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80%가 감염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상이 멈추어버린 가운데 비대면으로 상담의 수요는 훨씬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콜센터에서 일을 하면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객들의 폭언, 불만 등으로 감정노동의 소비가 매우 심각한데, 마스크를 쓰고 얘기하면 잘 들리지 않는다고 고객들은 항의 할 것입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업무공간은 얇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마치 ‘닭장의 닭’들처럼 일을 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멈추어버린 이 사회가 지속가능하게끔 만들고 잇는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일터는 안전한 일터가 아닌 집단감염에 취약한 일터였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일하고 있는 배달노동 역시 대표적입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였음에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었던 것은, 음식 배달, 택배 등 이례적으로 발달한 배달 산업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배달의 물량이 급증하면서 휴식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고, 과로로 인한 사건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와 최전방에서 사투를 버리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간호사들입니다. 가장 현장에서 환자들의 진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위해 정부는 덕분에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현장의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코로나의 방역,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라는 말에 가려진, 코로나19의 영웅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현실이 있습니다. 지난 5월 대한간호협회는 코로나19 유행 속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를 밝혔습니다. 그 결과 72.8%가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집단감염이 발생한 대구로 파견을 간 간호사들은 감염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돌보는 데에 신념의 헌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료진에게 돌아간 것은 매우 열악한 식사, 임금체불, 헌신의 요구 등 불합리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코로나19 시대의 우리의 시대상입니다. 코로나19는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게, 규모가 큰 기업보다는 규모가 작은 기업에게, 기성세대 보다는 청년세대에게 더욱 가혹하게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청년을 향하는 코로나19의 칼끝

그리고 지금 코로나19의 칼끝은 불안한 삶의 가운데 서 있는 청년들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일자리와 불안한 노동환경, 경직된 사회의 전 시민적 무기력과 고립은 청년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나의 삶이 나아 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더더욱 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97년 외환위기 때보다 경제충격이 클 것이라 전망을 하였고 그 전망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징후는 우리의 주변을 보면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찾아간 영화관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항상 금요일 저녁이면 북적이던 영화관은 한산하기만 했고, 북적이는 손님을 맞이하였던 노동자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5명이 일했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이제 2명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없어 한산한 만큼 표를 끊어주던, 팝콘을 덜어주던 노동자들도 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라진 3명의 청년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자리를 찾는 청년들, 청년들의 자리는 어디에?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 속에서 청년은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하는 자로서 대표적인 취약계층에 해당합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직접적으로는 양질의 일자리의 절대적 숫자가 적다는 것입니다. 첫 취업을 하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1년 이하 계약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청년층은 노동시장 진입 이후에도 열악한 근로조건 등으로 잦은 이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5개월에 불과하며, 30대 청년의 37.7%가 현재 근속기간이 3년 이하에 해당합니다. 또한 한국사회 특유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으로 청년층은 일터에서의 인권 침해에 더욱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나이와 경험에 따른 권위주의와 여성 청년이 집중적으로 겪는 성차별적 문화가 고용, 근로조건 상의 열악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일터에서의 인권침해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N포세대, 88만원 세대, 니트세대, 캥거루족, 민달팽이세대 등등 지금의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들은 넘쳐 납니다. 더 이상 나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단어들은 지금 청년들의 삶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코로나19 청년문제를 가시화하다

전대미문의 전염병, 코로나19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가 본격화 되면서, 청년들은 발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도 막막한 상황입니다. 일을 구하는 청년들은 3-4시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실정 이고, 불안한 노동환경에 일하고 있는 청년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취준생 400여 명 중 73.7%가 코로나 19로 ‘공채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공채 포비아는 각종 자격증 시험과 공공기관, 대기업 등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시험들이 잇따라 연기되거나 취소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연기되는 것에 따른 공포를 의미합니다. 이는 지금의 청년세대가 코로나 19로 인하여 구직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지장을 받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는 여느 경기침체와 같이 청년들의 일자리, 즉 신규채용부터 축소됩니다. 이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취업준비기간이 길어짐과 동시에 늦어진 취업시기 만큼 중장기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될 것입니다.


2017년 광주청년계층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광주청년층이 취업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1년 1개월 정도가 걸리며 평균적으로 40만 원 정도의 취업준비를 위한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조사데이터가 있습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거나 부모님께 도움을 받거나 생활비 대출 등 미래의 빛을 위해 현재의 빚을 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공공 도서관 등이 문을 닫고 공채가 취소되고 경제침체로 해고되는 등으로 인해 취업비용이 늘어나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개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몫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0.7%로, 일반 실업률 4.3%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취업자 수는 3월 이후 넉 달째 감소하며 청년층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난이 장기화하는 모습입니다. 특히 취업준비생이 많은 25~29세 실업률은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지며 일명 ‘코로나 세대’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연차 쓰고 쉬라고 했어요

“다니던 직장이 코로나19로 휴업해서 한 달 무급 휴직했어요. 복귀하고 권고사직으로 퇴사했습니다”, “회사에서 연차 쓰고 쉬라고 했어요”, “이번 달까지는 괜찮은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불안해요” 대구청년유니온이 실시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자 실태조사에 참여한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코로나19의 감염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불안한 노동환경인 것입니다.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층은 중장년층보다 이러한 경제위기에 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5월 경기도 코로나19 위험 인식 조사에서도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응답 비율은 20대 청년층에서 11.3%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직장갑질119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해고 및 권고사직에 관한 상담이 3.2배 증가하였으며 코로나19로 인하여 직장인들의 32.8%는 심각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청년들이 다수 구성하고 있는 시간제 노동의 42%, 프리랜서 노동의 52.9%가 실제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이 줄었다고 답하였습니다. 이에 더해 비상용직의 17%와 비사무직의 14.4%는 코로나19로인하여 권고사직/해고/계약해지를 강요받았다고 답변하였습니다. 휴업수당이 해당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과 사회안정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프리랜서, 플랫폼 청년 노동자의 경우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 나라살림 연구소 보고에 따르면 20대들의 현금 서비스 이용률과 연체율은 3월부터 늘어나기 시작하여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은 현금 서비스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로 청년들은 무급 휴직, 임금 삭감 등 다양한 형태로 경제적 피해를 겪고 있으며 이를 대출로 충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곧바로 2차 3차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먼저 주거의 위기입니다. 현재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주거 빈곤에 해당되는 상태입니다. 불안정하고 불편한 주거, 고시원, 옥탑방, 반지하를 전전하는 가운데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벌었으나 그마저도 없어지게 되면서 피시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상황까지 몰리게 됩니다.


 ‘실업률 IMF 직후 수준’, ‘5월 증가 실업자 중 20대 가장 높은 비율(전체 32.2%)’, ‘고용률과 취업자 감소폭은 금융위기 수준 초과’, ‘코로나19 여성 취업자에게 더 큰 영향’ 등의 무수히 많은 기사 속 이 숫자들 속의 삶, 현장에서 느끼는 고통과 답답함 막막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의 삶, 노력하면 달라질까?

과연 혹자가 말하듯이 아프니까 청춘일까요? 정말 노력하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코로나19와는 관련이 없지만 올해 5월 22일 광주하남공단에서 일하던 만26세 청년노동자 김재순씨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광산구의 하남공단에 소재한 자원업체에 일하고 있던 청년입니다. 지각 한 적이 없었고, 매사 열심히 일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안전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되어있지 않았던 그 현장의 파쇄기는 폐자원이 아닌 김재순씨의 몸을 파쇄 하였습니다. 그렇게 26살 청년의 삶의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청년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왜 지금 시대의 청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몇 백대 1일이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경쟁을 해야만 할까요. 지금의 한국사회는 정규직 일자리, 공무원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지 못하였을 때, 그곳은 바로 낭떠러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탈락한 청년들, 더 이상 내 삶을 긍정할 수 없는 청년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자화상입니다. 코로나 여파라고 할 수 있는 올 해 3~4월, 지난해보다 자살이 60%증가하였습니다. 대부분 청년층입니다. 활력을 잃어버린 시대, 사회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삶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코로나19가 보여주었던 청년의 삶의 모순은 너무나도 심각하게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나의 삶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청년의 삶은 더 이상 노력으로 대표될 수 있는, 아픔으로만 얘기 할 수 없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하는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이제 개인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그리고 이 안에도 들어갈 수 없는 플랫폼,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주15시간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까지 노동에 대한 제도적 사각지대는 점점 넓어져가고 있고, 기업규모의 크기에 따른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격차 또한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분사회는 점점 공고화 되어가고 있고 기회의 가능성은 차단되었습니다. 코로나19의 칼날은 누구를 겨누었는가는 점점 더 명확해 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온전히 개인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사회, 가난한 사람은 계속해서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은 계속해서 부유한 사회는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이 모든 부조리를 공정한 것이라는 말로 감추고 숨기고 기만합니다. 더 나은 삶이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나의 꿈이 이 사회로부터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 내가 실패하고 좌절 하여도 공동체 안에서 회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우리가 나아가야하는 사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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