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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Aug 21. 2023

중년소년의 잠깐 트레블로그

6. Zubiri -  Puenta la Reina

순례길 DAY 3. Zubiri - Pamplona

팜플로나 가는길

주비리에서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고 아름다웠다. 아르가 강변 너도밤나무와 소나무 사이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어느새 넘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짐을 싸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출발하면 5시 반에서 6시 사이가 된다. 20km가 조금 넘는 오늘의 코스는 너 다섯 시 간이면 충분해서 나는 정오 무렵에 팜플로나에 닿을 수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의 일정에 비해 여유도 생겼다. 왠지 순례길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기는 하루였다. 팜플로나는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중세 나바라 왕국의 수도이자 훗날 지중해 패권을 차지했던 아라곤 왕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고도(古都)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중세의 유럽도시답게 도시외곽이 성벽으로 둘러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순례길을 3월에 걷는 것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데 특히 비시즌 기간이라서 문을 닫은 숙소들이 많았다. 팜플로나 공립 알베르게도 문을 닫았기 때문에 나는 성밖 공원옆에 자리한 Albergue Casa Paderborn에 묵게 되었다.  독일 파데보른시와 팜플로나시의 자매결연 사업을 통해 만들게 된 알베르게로 독일출신 주인부부가 운영하는 아담한 숙소다.  싼 가격임에도 깨끗하고 친절했던 곳이라서 추천하고 싶다. 

Albergue Casa Paerborn (출처 https://www.pamplona.es/)

오후에는 순례길 동료들과 함께 시내투어 겸 슈퍼마켓 투어를 돌았다. 순례길에서 제때 잘 먹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스페인의 슈퍼마켓은 체인이 다양하다. 물건들의 가격이나 취급품들이 체인별로 상이하다.  이날 나는 스페인의 어떤 슈퍼마켓 체인에서 장을 보는 게 보다 좋을지, 걸으며 먹을 수 있는 보조식을  싸게 살 수 있는 옵션은 어떤 것인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싸구려 빵에 치즈와 샐러드를 넣은 샌드위치를 주로 먹었더니 너무 퍽퍽하고 짜서 금세 물려버렸다. 그래서 오이나 참치를 넣은 촉촉한 샌드위치 사과나 바나나 같은 먹기 간편한 과일들을 곁들여 먹을 생각으로 장을 봤다.   

팜플로나 시청과 골목

저녁은 순례길 동료들과 나가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이태리 친구 페페와 마르코, 멕시코 친구 아나벨라, 독일 친구 페드리케와 나까지 5명, 우리는 바스크 지방 대표요리인 핀쵸스(Pinchos:  조그만 빵조각 위에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인 것을 올린 뒤 이름의 유래가 된 이쑤시개 같은 나무로 고정한 요리)를 먹기로 했다. 다양한 재료를 빵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이쑤시개만 꽂으면 되는 요리가 뭐가 대단할까 싶지만, 스페인 북부의 식재료를 그들만의 방식대로 요리해 먹는다는 게 핀쵸스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으로 내 취향은 그리 아니였찌만 다양한 식재료를 경험할 수 있고 먹기 쉽고 간편한 점이 좋았다. 특히나 엔초비(멸치류)와 함께 절인 스페인식 올리브는 생선젓갈이 듬뿍 들어간 김치가 떠올라 전라도 출신 내 입맛에 딱이었다.

까스띠요 광장에서 저녁장소를 물색하는 친구들


DAY 4. Pamplona - Puenta La Reina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길은 산과 숲을 넘고 계곡사이를 지나야 했다. 팜플로나를 지나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드넓은 대지를 마주하게 된다. 시내를 벗어나니 광활한 초록대지에 출렁이는 능선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시야를 가로막는 것들이 없다 보니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홀로 차지하며 걷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떠오른 적도 잘 사용한적도 없는 '광막함'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스페인의 자연이 발하는 색깔은 한국과는 조금 달랐다. 공기 속 색의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할까. 파랑은 좀 더 파랗고 녹색은 좀 더 짙어 하늘과 대지의 대비가 분명했다. 드넓은 대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멀리 있던 곳도 어느새 가까워지고 길은 또 다른 마을로 연결된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5km 사이 작은 마을이 최소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마을과 마을이 최소 5km 정도 떨어져 있을때 물자 이동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비교적 손쉽기 때문이라는 순례길 유경험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을과 마을이 서로 너무 멀어지면 길은 본래로 돌아가려는 자연의 성질 때문에 금새 훼손되고 마을은 고립될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마을을 유지하고 지킬 수 있는 힘은 순례자들 덕분이 아닌가 싶었다.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면 가끔 이곳의 시간은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잘 보존된 오래된 건물과 옛 도로, 마을의 고즈넉함이 몇백년전 이곳을 지나쳤던 순례자들이 보던것과 많이 다르지 않을것 같았다.  그 순례자들은 이 아름다운 대지와 하늘 그리고 마을의 교회를 지나가며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길 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에 품은 고민은 어디에 닿아있을까?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동안 걸었던, 천년이라는 세월의 광막한 두께와 너비에 마음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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