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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Jun 29. 2020

춤의 생

아우성치는 몸 이야기



언제부터 춤을 췄더라?



엄마 말씀으로는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그쯤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티브이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한 나이 말이다. 정확히 언제부터 나에게 춤을 추고 싶은 본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움직이는 에너지에 흥분을 느끼며 자랐다.

엄마의 기억으로는 아주 어린 시절에도 율동을 곧잘 예쁘게 따라 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율동 사진이나 춤을 추고 있는 사진을 보면 내 눈에도 내가 즐거워 보인다.

흥얼거리는 걸 좋아해서 만화영화를 보면 피아노 앞에 앉아 딩동 동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오빠와 함께 앉아 악보 없이 들은 귀로 주제곡 부르는 시간을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음감이 좋았다고 했다. 그랬음에도 나는 가만히 앉아 움직이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발산하지 못하는 걸  힘들어했다.  

무용하기 전까지는 미술 학원에 다녔다. 상을 받은 적도 있는 것 같다. 못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퍽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꾸준히 그림 공부를 해서 미술로 대학 가기를 바랐다. 나 말고 부모님이. 아마 엄마의 꿈이기도 했고, 친척 언니들이 여럿 미대를 가다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미술을 포기한 이유를 한 가지만 말해보라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오랫동안 앉아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몸 안에서 발산되지 못한 에너지들이 답답하다고 아우성쳤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나는 움직이는 직업을 가져서 그런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내 마음대로 형태를 만들어 움직임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나를 춤추게 하는 힘, 에너지이다.

그러니까 내 안을 돌아다니는 이 에너지들은 파닥파닥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그중에서도 아주 힘 좋고 빠른 놈들로,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만족스러워했다.

차분히 기다릴 줄 모르는 요놈들 덕에 한 번씩 소풍이나 수학여행에서 춤을 추면, 참았던 나의 모든 에너지가 발산됐다. 그 모습을 보고 중학교 수학여행에서 만난 사회자님이 명함을 주셨다. 가수 하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아! 어린 나이에 뭣도 모르고 좋아했는데, 이벤트 회사 사회자님께 연예인 시켜달라고 찾아갈 뻔했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이 상상했다. 더 큰 형태를 만들어 이것들을 여러 온도와 크기로 만들고 속도도 달아줬다.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나루토에서 나오는 차크라처럼, 차크라와 비슷한 모양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분산시켰다. 나루토나 여러 닌자들이 자신만의 차크라로 무기를 만들어 악당을 상대하는 장면들은 언제 보아도 희열을 느끼게 했다. 나에게도 그런 차크라가 있다. 나는 악당을 상대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도 몸 안에 날뛰는 차크라를 잡아다가 요리조리 만드는 연습을 몸으로 한다. 내가 요가 수련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이것이다. 나의 에너지를 잘 다뤄야 하니까. 그리고 그것들을 몸을 통해 춤으로 잘 표출시키고 싶으니까.



춤을 추게 하는 나의 에너지 원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지?



                                                                                                                                                                            스물셋 또는 스물넷의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올라갔던 무대에서 춤을 추다가 주체하지 못한 에너지 덕에 소리까지 질렀던 기억. 신이 나서 날뛰는 에너지를 통제할 새도 없이 마구잡이로 소리를 질렀다. 원초적인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몸에도 움직임들에도 그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는데, 그 순간이 딱 그랬다. 몸이 기억하는 특별한 경험이기에 아직도 여전히 생생하다.


 사실 우리는 한 번의 무대를 서기 위해 연습실에서 몇십 배 되는 시간들을 감내한다. 즉흥 공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짜인 대로 연습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연습으로 무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연습실에서 했던 가장 못난 리허설이 무대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래서 연습실에서의 리허설 퀄리티를 계속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무대에 서게 되는 거다.


아주 잘 알고 있군. 그런데 소리를 지르다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날뛰는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순간순간 무엇인가를 하고 에너지를 발산하지 않으면 에너지가 몸에 그대로 고여 조울증이 온다. 이건 딱 1년, 춤을 떠나 쉬었던 동안에 사무치게 경험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받아들였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을 이 세상에서 찾는다 해도, 춤을 추며 살겠다고.

이 정도로 나를 몰아붙이며 춤을 추게 하는 녀석.

순수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무대에서 소리를 지르게 하고, 음악을 들으면 날뛰는 에너지가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나는 정말 흥이 많다. 



그거 다 있는 거야 흥.



안다. 에너지를 이루는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나는 흥을 가장 많이 가졌다. 그래서 방방 뜨는 호흡과 에너지를 주로 쓴다. 주특기가 점프를 뛰고 빠르게 구르는 거였다. 대체나  빠르고 힘 있는 춤을 춰왔다. 이제는 나이가 있어 약간 지쳤지만.

동료 무용수들이나 함께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에너지를 가지진 않았다. 무용수 모두가 흥이 많다고 춤을 추는 것은 아니니까. 

모두가 다 다른 개성 있는 에너지를 사용한다. 물론 나에게도 흥이 아닌 에너지도 많다. 하지만 이 녀석이 나의 춤추는 에너지를 만드는 근원이다 보니, 아직도 가끔 개구지고 철없는 무용수가 된다.



아, 녀석 대단하네.



글자도 한 글자밖에 안 되는 쪼그만 녀석이 나처럼 무거운 무용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움직임을 하게 하는 이 녀석이 다분히 많은 에너지의 지분을 가졌으니, 너무 날뛰기만 하지 않도록  더더욱 잘 다스리고 싶다. 언제든 내가 상상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움직임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게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녀석 덕분에 아직도 행복하게 춤을 춘다. 그러니 살짝 감사한 마음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며 나를 만들어 살게 했다. 춤을 추며 느끼는 행복도, 무대에 서는 환희도, 연습실에서의 두근거리는 설렘도 모두 이 녀석이 함께 했다.

그러니 좀 많이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흥이라는 녀석이 내 안에서 사라진다면 나는, 아주 많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더 이상은 춤을 출 수 없어를 제외하면 내가 춤을 그만 추게 되는 유일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아마도 나의 춤이 가진 생은 이러나저러나 이 녀석에게 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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