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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 이도 May 16. 2023

웃겨 뒤집어지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

슬픔의 삼각형 펴시죠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화 크루즈에 협찬으로 승선한 인플루언서 모델 커플. 각양각색의 부자들과 휴가를 즐기던 사이, 뜻밖의 사건으로 배가 전복되고 8명만이 간신히 무인도에 도착한다. 



전작 <더 스퀘어>로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한충 더 업그레이드된 영화를 선보였다. 여기서는 이를 비롯한 화려한 영화의 배경보다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영화는 모델 오디션을 보는 남자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면 기존의 임금격차 문제와는 다르게 모델계에서는 남성 모델의 수입이 더 적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알리며 시작한다. 임금뿐만 아니라 더 ‘잘 나가는' 모델인 여자친구 야야와 남자친구인 칼은 데이트 비용 문제로 한바탕 갈등을 겪고 칼은 차라리 이 상황이 반대면 좋겠다는 발언과 함께 영화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뒤집어 나간다.

영화는 위와 같이 한 커플의 젠더 갈등을 시작으로 3부로 나누어 진행한다. 1부에서 개인과 개인의 격차를 보였다면 2부에서는 크루즈에 승선하여 계급 간의 격차를 보여준다. 특히나 공간을 통한 연출이 두드러지는데,  크루즈는 사실상 3층의 구조로 나뉜다. 부유한 소비자인 백인이 있는 3층, 이들을 위한 보기 좋은 유니폼을 입은 백인 노동자들의 2층, 그리고 그 아래에 백인 노동자들은 손대지 않는 위험하거나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진짜' 일복을 입은 유색인종 노동자들의 지하에 가까운 1층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상위 계급자는 이 계급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에 3층의 한 중년 여성은 수영을 하다가 2층의 노동자에게 함께 수영하자며 1층부터 모든 노동자들을 끌어올리지만 이들은 이내 미끄럼틀을 타고 다시 내려가며 다시 아래층에 위치하고 이들은 유희로 이용될 뿐이다. 이러한 형식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 섬에 갇혀 생존 능력으로 리더(최상위 계층)를 선점하게 된 필리핀 계 노동자 애비게일은 섬에서 가장 능력 없는 최하위 계층의 칼을 자신의 옆에 두게 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는 최상위 계층의 ‘유희'로 밖에 전락하지 않는다.

3부에서는 섬에 갇히게 된 8명이 크루즈와는 정반대로 새로운 서열을 만든다. 섬 밖에서 부, 명예, 인기가 상위 계층의 필요 능력이었다면 당장의 생존에 대한 능력으로 권력의 구조가 탄생한 셈이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어떻게 힘을 가지는지, 그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며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렇게 후반부로 흘러가며 이 영화의 초반 트리거가 된 칼의 바람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바라던 형태를 이룬다. 하지만 칼은 사실상 어떤 능력도 없고 바라던 대로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얻은 능력으로 리더의 옆에 앉게 되는 일종의 소망을 이루게 된다. 더불어 계급이 전복되며 구축한 이 구조에서 흥미로운 점은 권력 간의 관계와 권력자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점이다. 애인을 빌려준(?) 야야는 리더 애비게일을 견제하지 않고 이는 크루즈 위에서 야야가 노동자에게 웃어줬다며 논쟁을 일으킨 칼의 모습과 대조된다. 마찬가지로 섬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일종의 권력을 일시적으로 얻기 위해) ‘성'이 아닌 자신의 시계를 건네는 장면은 크루즈 위에서 여성 파트너를 둘이나 데리고 올라탄 남성과 대조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누구든 권력을 쥐게 되면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영화는 3층의 구조를 가진 크루즈를 뒤집으며 젠더, 계급, 인종 모든 구조를 뒤집어엎는다.


결론적으로 영화의 맨 처음 이 구조를 바꾸고 싶다던 칼은 아이러니하게도 원래의 계급 구조로 돌아가기 위해 앞만 보며 달려간다. 시간제한이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칼의 모습에 간절함을 느끼는 동시에 묘한 웃음이 터져 나오게 된다. 엉망진창으로 흘러가는 코미디 같지만 그 안에는 개인으로 시작해 사회로 확장하며 정교한 연출과 구조에 분명 웃고 있지만 어느새 그 어떤 영화보다 논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 모두가 생각해 보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꺼내고, 상황들을 전개해 가며 실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재치를 가진 감독이다. 뒤집어지게 웃긴 이 영화를 ‘슬픔의 삼각형'을 펴고 웃으며 즐기길!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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