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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der, 2018 by Ali Abbasi

소외자들의 결핍을 보기 불편해하는 자들의 시선

by 영화평론 이도

영화의 제목 ‘경계선’은 소수자와 다수자의 경계일까, 모호한 요소는 다 넣은 내용과 제목의 경계인 것일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시각적인 불편함을 선사한다. 시각적 불편함, 보통 사람들이 보는 소수자에 대한 시각 아닌가. 감독은 <경계선>을 통하여 소외자들을 배척해버리는 자들의 기준의 경계선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트롤과 인간, 남자와 여자. 이분법적인 구분이 넘치는 본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경계선에 서 있다. 또한, 그 경계 자체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인물들이다. 인도에서 태어나 북유럽에서 공부한 알리 아바시 감독의 디아스포라적 경험이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렛미인>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원작 소설임을 고려할 때 본 영화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소수자를 뱀파이어에 은유하여 관객의 마음을 울린 <렛미인>과 비교를 해보자면 소수자를 트롤에 은유한 <경계선>은 좀 더 이성적이고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한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등장뿐만 아니라 트롤의 체인질링(인간의 아기 바꿔치기)을 통하여 북유럽 신화의 색을 잘 나타낸다.
주인공은 꽤나 도덕적인 인물이다. 사회에서 소외 당하지만 본인의 장점을 이용하여 살아가고, 소아성애자를 잡아내는 데에 기여하고, 자신이 트롤임을 알고도 말하지 않고 키운 부모에게 말로 따지는 정도이고, 일명 나쁜 남자친구에게 소리 지르면서 나가라는 정도이고, 체인질링을 하는 보레에게 옳지 않다고 말하는 정도이다.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확립한 예술의 법칙인 ‘주인공은 최종적으로 도덕적 선택’을 성립하여 이 이야기를 더욱 완성도 높은 신화로 만들어준다. 시나리오로 볼 때, 본 영화의 결핍에 대하는 자세는 영화로써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기형에 특이한 능력을 가진 자와 이를 완벽하다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자. 소외된 이들끼리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서로의 매력을 알아본다. 결함없는 인간이 존재할까. 인간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자신의 추악한 모습이 있다. 티나와 보레의 경우는 외형적으로 드러난 편이라면 오히려 겉은 이케아 가구를 사서 쓰는 평범한 커플이야말로 속은 썩어 문드러진 이들이다. 이 커플 또한 서로를 감싸주고 이해하는 모습은 티나와 보레의 다른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주인공 티나는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소외자로 만들던 이들의 내면을 바라보고 바로잡는 바람직한 인물로 그려진다.
자웅동체, 티나와 보레의 벌레를 먹는 장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익숙하지 않은 낯선 화면들로 불쾌함이 인다. 감독이 의도한 것은 바로 이 불쾌함,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티나에게 벌레를 권하고 자신도 먹는 보레의 장면은 둘만의 공감이 만들어지는 동시에 관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티나와 보레의 성교 장면 또한 둘만의 연결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들의 교감을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이 감독의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꽤나 자세하게 자웅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적 표현에서 모호함을 남겼을뿐이다. 수잔 손택이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말하듯 인간은 타인의 고통(혹은 혐오스러움)을 보고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줄만큼 강렬한 장면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감독의 의도가 아주 역겨워 보이도록 원했다면 아쉬움이 남고, 평범하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 영화 또한 그저 그런 영화들 중 조금 다른 정도의 영화인 것이다.

소설이 원작인 <경계선>을 시나리오와 영화적 표현을 구별해 고찰해 보았을 때, 영화에서 가장 표현이 어려운 후각을 이용한다던가 시나리오를 영화적 표현법을 이용하여 보여주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로써의 메리트는 관객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었을 때 와닿는 불편함뿐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히려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방법보다 글로 존재하며 독자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나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은 기존에도 <렛미인>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시각적 불편함 또한 <쉐이브 오브 워터>에서 볼 수 있었다.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영화들의 요소는 있으나 딱히 그들을 뛰어넘는 <경계선>만의 매력은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고, 전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파악할 수 있는 친절한 영화이다. 결핍과 소외에 대해 얘기한다면 <은교> 같은 영화말고 이 영화를 열 번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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