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운동을 시작하며 느낀 삶의 단상.
1년 4개월 동안 이어온 운동을 한 달간 쉬어보았다. 그간 집중했던 프로젝트도 끝났고, 새로운 결정을 내리기 전 '아예 뇌 빼고 쉬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허락한 완전한 휴가. 원래도 외출이 잦지 않았는데 운동마저 끊어버리니 행동반경은 더욱 좁아졌고,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것 외엔 플랫폼이 촘촘히 설계해 둔 세계에 빠져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을 살았다. 한 달이 지나고 아, 이제 다시 루틴을 찾아야겠다 결심했을 즈음엔 체중이 삼 킬로가 빠져있었다. 별로 움직이지 않으니 위에 고인 음식들의 소화가 더뎠고, 소화가 더딘 만큼 식욕도 떨어져 끼니를 이전만큼 챙기지 않은 탓이다. 근손실, 근손실 말로만 들었는데 이게 진짜 근손실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났지만 어째. 쉼을 명분 삼아 근육을 흘려보낸 사람도 나인데. 이젠 그 시간에 책임을 질 때다.
실제론 한 달이지만 체감상 천오백 년 만에 방문하는 듯한 헬스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오신 거죠?"라며 묻는 실장님의 인사에 조금 찔리긴 했다만.. 사실이 그러니 대답은 웃음으로 때우고 스트레칭부터 본격 시작. 다행히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데이터는 쉬이 무시할 수 없는지 물 흐르듯 동작을 마치고, 등 운동의 기초라 배웠던 랫풀다운을 잡았는데.. 그랬는데..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엄청 쉽네'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수월하지'라고 생각했던 무게가 유조선을 혼자 끌어당기는 마냥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게으름의 벌인가? 와식 생활의 달콤함이 빽빽한 고통으로 모습을 바꾸어 거울 속 나를 시뻘겋게 담금질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돈가? 싶어 최애 운동기구인 케이블 로우를 했는데 등이 뻑적지근.. 이어 줄줄이 잡아본 기구의 무게는 한 달 전과 너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제일 빡셌던 건 아무래도 천국의 계단. 주 3일 갔던 운동에서 매번 빠지지 않고 1천 개 이상 했던 천국의 계단인데, 600개가 넘어갈 때즈음엔 진짜 천국이 보일랑말랑. 결국 잠깐 쉬고 나머지 400개를 했다. 자존심이 불에 올린 오징어 마냥 쪼그라드는 소리가 들린다 들려. 쉬익.
결국 1시간 40분간의 웨이트와 유산소를 마치고 자동 털기춤을 하며 집에 오는 동안, 또다시 느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운동해도 왜 이렇게 느는 느낌이 안 드냐'라는 불평을 했는데 많이 늘어서 그 정도였고 현상 유지라도 하려고 노력했으니 그 정도였구나 하는 생각. 늘길 원한다면 이것저것 재지 말고, 느냐 안느냐 따지려 들지 말고 그냥 무식하게 해 왔던 걸 지속하는 수밖엔 답이 없다는 것. 매번 느끼지만 느낄 때마다 이것만한 답이 없다. 몸으로 하는 일뿐만 아니라 머리로 하는 일도 다 그렇다. 글쓰기 실력이 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땐 한 달 반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소재가 있건 없건, 글이 잘 쓰이건 안 쓰이건 꼬박 천자를 채워서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그 글들은 가끔 조회 수가 유독 높으면, 때론 추억팔이용으로 읽곤 하는데 솔직히 대단히 잘 썼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꽤 괜찮다고 생각해서 올린 거일테고, 지금의 내가 그 글을 봤을 때 만족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글 보는 눈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퇴고를 할 때 더 꼼꼼하게 보고, '이런 표현은 어떨까' 고민하는 행동 또한 한 달이 넘는 연습 이후 생긴 좋은 습관이다.
무식한 방법이 결국 완성의 지름길이라는 게 세상을 살며 깨우친 가장 큰 아이러니라니. 효율성이 신성화되고 편법이 '고능하다' 추앙받는 세상에서 무식하게 할 일만 하는 건 대놓고 미련해 보인다. 하지만 대충 쌓은 모래성이 얕은 물결에도 흔적을 잃는 것처럼 무식하게, 묵묵하게, 해야 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 적어도 내가 원하는 완성의, 성공의 둑을 견고히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화끈거리는 등이 말한다. 너는 내일도, 모레도 운동을 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 이 통증이 사라지고 잃었던 근육을 되찾는 날, 다시 느끼겠지. 결국 무식이, 또 다른 말로는 성실이 너를 빛나게 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