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어느 여름 17일의 해를 넘겼다.
모든 순간을 축제처럼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있다면 아마도 여행일 것이다. 살아가는 메시지로 담아둔 문장이지만 극히 일부의 순간에 유효한 나의 메시지. 17일의 해를 넘기며 올해 여름 나의 축제가 열렸다.
ICN > DOH
10시간의 비행 끝에 DOH 공항에서의 경유. 공항에서의 체류임에도 불구하고 타국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긴 충분하다.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여정을 안고 움직이는 도하에서 언제 내가 다시 중동 지역에, 언제 내가 다시 카타르에 오려나 하며 지렁이 글귀로 가득한 스타벅스의 메뉴들을 연신 찍어댔다.
DOH> BUD
여행 메이트 P는 지독한 J의 인간이다.(J-계획형, 통제형) 지독하다니 뭔가 고약한 것만 같지만 지독하게 사랑스러운 그녀가 아니면 2018년의 이를리 여행은 없었다. 더구나 마치 서울, 부산, 제주도를 찍고 다시 대구, 서울을 도는 루트 같았던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친퀘테레에서 로마로 하루살이 열차 여행에 가담하게 된 것 또한, 그녀 덕분이다. 루트와 계획을 모를수록 열정이 넘치는 고약한 P의 인간인 나는 이번 여행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녀의 PLAN에 포크를 살포시 얹고 시작했다.
2022. 07. 18. mon
여행에 대해 여러 번 정의한 적이 있다. 여행 중에는 맛있는 것을 먹고 물장구치고 일상과는 다른 감상에 빠져버리면 그만이지만 물음표 살인마(여행 메이트 K는 더 이상 질문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마저도 무한하다. 일례로 스무 살 여름방학 전국을 여행하던 중 몸살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물었다. 여행을 하면 뭔가 깨달을 수 있냐는 요상한 질문에 깨달음은 평생의 과업이라고 꽤 진지하게 답을 주셨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또한, 적절한 답을 찾아 주었다.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에서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낯선 이들과의 대화와 여행의 과정 속에서 ‘나’를 찾았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가족과 떠난 CEBU에서 여행에 대해 처음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내가 본 저들의 삶, 저들이 본 나의 삶. 여행에서는 유일하게 두 삶이 접점을 이룬다.
오랜 시간 내 사전의 여행 소제목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같은 시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여행이니까. 그로부터 몇 년 뒤 나의 '여행'을 크게 뒤흔든 건 보름간 미국에서의 거주였다. 보스턴에서 내 일부의 삶을 두고 주말마다 서부, 뉴욕을 여행하며
살아가는 것.
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저 그곳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나에게 여행이라는 두 번째 정의가 탄생했다. 같은 맥락으로 하노이가 유독 평화로운 여행이었고 언젠가는 내 삶의 거처를 송두리째 어딘가로 데려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가 떠났던 삿포로와 하와이의 여행은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사랑스러움의 연속이었고, 파리, 이탈리아, 발리를 거쳐 언제부턴가 여행은 일상을 살게 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BUD
부다페스트의 야경에 환상이 있었다. 2017년, 친구와 방콕 여행 중 내려다본 야경을 보고 ‘우리 다음 여행은 부다페스트로 가자!’라고 얘기했던 것. 뜻밖에도 다음 여행은 하노이였고 그녀는 얼마 전 결혼식을 올렸다. 부다페스트 밤의 빛나는 국회의사당보다 황홀한 모습의 신부가 된 친구, 직접 그 밤을 보러 떠난 나. 둘 다 더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것으로 되었고 야경에 대한 환상은 피사체가 되어 나와 함께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