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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Aug 07. 2020

60대 여성 킬러 이야기

파과, 구병모

구병모 소설의 4번째 만남. <파과>

날카롭고 깔끔한 마무리로 방역(살인)을 처리하는 65세 살인청부업자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파과' 의미는 부서진 과일, 즉 흠집 난 과실이라고 한다. 흠집 난 과일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버려져야 할 것이다. 주인공은 ' 조각 (爪角)'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뜻은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작가는 왜 제목을 '파과'라고 짓고 주인공의 이름을 '조각'이라고 지었을까. 아마도 작가는 65세 노인과 여성이라는 약자(흠집 난 과일 = 파과)를 킬러(발톱, 뿔 = 조각)로 변신시켜 세상과 맞서 싸운다. 매력적인 설정이다. 끌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방역(살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병적인 습관이나 중독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마약과 도박과 닮았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를 상당히 흥미롭게 보았다. 왠지 모르게 드라마가 연상이 된다.


주말 오후, 한강에서

구병모는 필명이고 본명은 정유경이라고 한다. 공모전 때 본명을 사용하면 불리한 현실 때문에 남성 이름으로 출품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출판계 현실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들

'조각이 헬스클럽에 가지 않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남자 강사가 다가오더니 누워서 덤벨을 든 그녀의 팔다리에 솟은 근육을 보고 놀라워하며 할머니 정말 예순 넘은 게 맞으세요.' (30쪽)

나는 그쪽 어머니가 아니에요.

>> 조각이 제일 싫어하는 표현. 나는 당신 어머니가 아닌데 왜 어머님이라고 부르냐고 하는 장면이다. 나이 든 여성은 다 싫어하는 표현 아닐까요.

상한 복숭아를 발견했을 때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집어 올리자마자 그것은 그녀의 손 안에서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220쪽)

>>작가가 냉장고에 흠집 나고 문드러지는 과일(파과)을 보았을 때 바로 이 소재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때는 아름답고 빛났을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고 시들한 복숭아처럼 누구에게나 노화가 찾아온다. 그 무너져내리는 복숭아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가 이와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름답고 섬세한 표현으로 조각의 쓸쓸한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 구병모식의 언어이다.

조각의 과거 이야기

>> 주인공이 어렸을 적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묘사하는 장면이 참 좋았다. 너무 가난해서 둘째 딸인 자신이 당숙의 집에 식모살이로 팔려가듯 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아직 겪지 않아도 수많은 일들을 겪게 되는 과정은 점점 어두운 세계로 빠질 수밖에 없다.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껴지는 고독

피 한방을 흘리지 않을 것 같던 그녀는 나이가 들자 변하기 시작한다. 유기견(무용)을 데려다가 키우면서 가족애를 느끼고 폐지를 줍는 힘없는 노인을 도와주기도 한다. 지키고 싶은 게 없었던 조각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마음을 주었던 강 박사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지켜준다.





작가는 킬러의 내면의 이야기, 즉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마치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이야기꾼, 구병모의 이번 작품은 내용이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영화로 나온다면 꼭 보고 싶네요. 어떤 여배우가 주인공에 적합할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추천>

이유 없는 고독을 느낄 때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을 때

여성 킬러가 어떤 생을 살았을까 궁금할 때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에 맞서고 싶을 때


(블로그의 독후감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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