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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Aug 13. 2020

한 도시에 전염병이 퍼진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주제 사라마구 작가가 묘사한 수용소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나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 더 끔찍한 곳이지 않을까. 수용소의 굶어가는 사람들은 재앙의 시대에 직면한  꼬리 칸의 사람들의 <설국열차>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죄 없는 눈먼 자들에게 무차별 사살했던 군인들의 모습을 보며 옛 우리나라의 군사정권의 폭력이 겹쳐졌다. 국가적 위기의 상황에 냉소적인 정치인들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눈먼 자들이 수용소에서 빠져나와 먹을 것을 구하는 모습은 비참하다. 마치 팬데믹 현상으로 생필품 사재기로 인한 미국 어느 마트의 빈 선반대가 떠오른다. 눈이 멀게 되는 이상한  전염병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처럼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수용소에 있는 눈먼 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여자와 돈을 '판다'.  여러 문학작품과 우리의 현실은 이 소설과 겹치면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다.



© omgitsyeshi, 출처 Unsplash






<책의 간략 내용>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신호를 기다고 있는 차 안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안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런 이유가 없이. 전염병처럼 빠르게 '눈이 멀게 되는 병'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퍼져나간다.  도시 전체가 공포로 휩싸이게 되고 눈이 안 보이는 이들은 정신병원에 수용 조치된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수용소에서 철저하게 격리된 생활을 하고 제한된 음식을 제공받는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오물이 뒤범벅되어 부패한 냄새로 견딜 수 없다.  지옥과 다름없는 곳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 오로지 의사 아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




© devintavery, 출처 Unsplash


책을 읽으면 내내 나의 눈이 괜찮은지 점검하게 되었다. 왠지 뻑뻑한 느낌도 들고 침침해지기도 했다. 각종 오물, 쓰레기 더미, 곰팡이와 부패한 냄새가 나는 수용소와 도시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닌지 확인을 해 보기도 한다. 나도 수용소에 있는 눈먼 재소자들처럼 후각이 둔해지는 것 같았고 왠지 몸이 간질 거리기도 했다.   읽는 내내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몰입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특히 작가가 문장부호를 생략하고 마침표와 쉼표만 썼기 때문이다.  번역도 매끄러워서 부담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잘 보이던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실명에 대해 연습을 한 적도 없는 사람이 말이다. 돌봐줄 가족도 모두 눈이 멀어버린다. 혼란과 공포만이 남아있다. 공포와 불안이 밀려오자 옳다고 믿었던 것들은 전부 다 뒤집어진다.   도덕적 해이와 이기적인 인간 본성이 드러난다. 등장인물은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 '안과 의사' 그리고 '의사의 아내'처럼 모두 이름이 없다는 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오직 번호로 불려지는 죄수처럼 팬데믹 현상에서 '이름'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책 속의 문장>


'의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기에 온 세상이 다 들어와 있어요' (143쪽)

'이 맹인 제소자들의 문제는 사이비 인도주의적인 고려 없이 그들 가운데 다수를, 이미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올 사람들 가운데 다수를 물리적으로 없애버림으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148쪽)

'저기 병실 끝에 있는 의사가 조직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사실문제는 조직이다. 첫 번째가 먹을 것이오, 그다음이 조직이다. (155쪽)

'안과 의사 부인인 이 여자는 지칠 줄 모르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완전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적어도 동물처럼 살지는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합시다. ' (168쪽)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420)



<우리는 어쩌면>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이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463쪽)

마지막 장에 의사 아내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외면해 버리는 눈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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