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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Apr 03. 2023

사람이 집이 될 수 있다면

아주 오래전, 나의 먼지 쌓인 집에게


내가 참 좋아하던 집이 있었어.


모든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고, 어느 구석이 햇볕이 잘 드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그 집이 좋았어. 지루하도록 느리게 흘러가는 주말 그 집에 폭 안겨 있는 나른하고 포근한 기분이 참 좋았어.​


잘 돌봐주진 못했어. 청소에 그리 능한 편은 아니라, 먼지도 많이 쌓이고 정리정돈도 되어 있지 않았을 거야. 찾아올 손님은 딱히 없었으니까 괜찮았어. 창 밖으론 벚꽃도 지고 녹음도 청량하고 낙엽이 떨어졌다가 함박눈도 오는데 유리창에 하얀 손자국이 묻어나 풍경이 흐려지는 건 왜 몰랐을까. 왜 그저 그 자리에 있어줄 거라 생각했을까. 집이니까, 집이란 당연히 그런 존재니까.​


사랑한 만큼 지루했어. 이 집에 평생 머무르겠다는 마음은 대체 어떻게 먹는 걸까? 저기 언덕 너머 저 집은 더 좋아 보이는데. 얼마나 완벽한 집이어야 그런 결심이 서는 걸까? 너는 왜 그만큼 내 마음에 꼭 들지 못해? 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기만 해? 왜 매번 똑같은 풍경만을 보여줘? 지루해, 너무 지루해.​


수많은 질문 끝에, 나는 먼지 쌓인 집을 떠났어. 그 집을 사랑한 만큼 그 집을 견딜 수 없었어. 더 이상 머무르면 나도 병들 것만 같았어. 이 너저분함에, 이 지루함에 말이야. 청소를 할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어쩌면 그건 핑계였을지도 모르지.​


그 집에 처음으로 손님이 찾아온대. 깨끗이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어내고, 커튼을 빨래할 수도 있겠다. 내 손때가 묻은 모든 것들을 돌봐주겠지.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살진 않지만, 가끔 그 집에 들러보는데, 말끔해진 집을 보게 되면 나 역시 홀가분해질까 상상하곤 해. 혹은 그 집에 다시 살고 싶어 지려나. 나보다 더 집을 잘 관리해 줄 사람이 나타났으니, 기꺼이 당신의 집으로 삼으세요- 하고 말할 깜냥이 되려나.

이제야 알게 됐어. 청소를 하지 않은 건 나였다는 걸.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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