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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Feb 11. 2022

특명, 돔 최고의 미식가가 되어라!

4회 말_돔에서 먹방 찍게 만드는 두 번째 부서

이전 부서에서는 시합 전 그리고 시합 후가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이라 오후 2시 혹은 6시 시합이 있는 날에는 끼니를 제 때 챙겨 먹을 수 없었는데 새로운 부서는 우리가 직접 손님을 대하거나 판매를 하는 것이 아닌 돔에 입점한 점포를 관리하는 입장이라 이전보다 밥은 잘 챙겨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업무 스타일이 바뀐 것뿐만 아니라 업무 자체가 돔에서 판매되는 식음료 상품을 관리하는 일이라 정규리그 중에 진행되는 다양한 이벤트 시즌에 맞춘 이벤트 메뉴를 기획하고 시식하고 상품화해서 프로모션까지 담당해야 해서 기본적으로 돔에서 판매되는 메뉴를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한국의 야구장에는 식음료 점포의 수가 적기도 하고 치맥이라는 강력한 간판 메뉴가 있는데 반해 일본은 각 지방의 지역요리를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음료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가 다른 NPB 구단에 비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선수 메뉴라고 불리는 선수의 출신지 혹은 이름이나 별명, 좋아하는 식재료와 관련한 메뉴가 많은 것과 구장에서 판매되는 도시락의 종류와 판매장소가 많다는 점이었다. 야구장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일본의 전통 스포츠 중에 하나인 스모는 경기장에서 호화스러운 도시락을 먹으며 관전하는 게 하나의 문화라고 하기도 하고 워낙 도시락과 주먹밥을 사랑하는 나라여서 경기장에서도 든든히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나 싶다. 1군을 시작으로 3군까지 있는 팀이라 소속되어 있는 선수도 매우 많았는데, 매 시즌 우승후보로 꼽히던 팀이라 실력과 인기를 모두 자랑하는(마케터 입장에서 잘 팔릴) 선수들의 도시락이 많이 팔렸다. 대량으로 판매되는 상품이다 보니 시합 일주일 정도 전에 발주를 해서 당일에 돔으로 납품이 되었는데, 그 일주일 사이에 팀 혹은 선수의 성적이 하락세거나 부상으로 출장이 무산된 경우에는 예상했던 발주 수량이 대량으로 남게 되었다. 위생문제로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눈물의 폐기를 해야 해서 그런 경우에는 회사 사람들이 끼니를 도시락으로 때우고는 했다. 물론 도시락뿐만 아니라 점포의 식재료도 마찬가지였는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 손님이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을 때에는 사무실을 돌며 오늘은 위에서(콩코스) 식사하시라고 대신 호객행위를 하곤 했다.


세이브 수와 로스트비프의 양이 연동되어 증량하던 메뉴는 시즌이 끝날 무렵 고기밖에 안 보이게 되었다.

겨우 콩코스의 각 매장과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운영회사들 그리고 게이트와 위치, 메뉴가 익숙해질 무렵 과장님은 시합 날만 되면 먹어 본 적 없는 메뉴가 없어야 한다며 시식용 혹은 품질검사용 메뉴를 맛보게 해 주셨다. 일본에서 갈색 음식이라 불리는 소위 남성들에게 인기 많은 메뉴가 돔에서도 인기가 많았는데, 고기를 튀기거나 굽고 맛은 간장 혹은 돈까스 소스 비슷한 달고 시큼한 맛인 소스를 중심으로 하는 메뉴가 대부분이었다. 호쾌한 플레이와 일반인보다 1.5배는 큰 야구선수들과 어울리는 당시 유행하던 표현으로는 '메가' 메뉴들이 가득했다. 거기에 열심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팔고 있던 신선한 맥주는 여성들에게도 갈색 음식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개인적으로 음식이나 요리에 어렸을 적부터 관심이 많았고 해외여행을 가면 쿠킹클래스를 찾아서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다양한 일본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즐거웠는데 하루 이틀 지나 업무가 되니 조금씩 힘들어졌다. 특별히 가리거나 못 먹는 식재료도 없어서 대부분 입에 잘 맞았기는 했지만 맥주와 함께 잘 어울릴 만한, 간이 강한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이라 조미료 맛에 질리기 시작했다.



나) (해당 시즌 음식 라인업 팸플릿을 들이밀며) 과장님, 저 이제 절반 정도는 다 먹어본 것 같아요...

과장님) M, 우리가 경쟁해야 하는 건 하카타역이나 텐진역에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가게들이야.

돔 밖의 음식도 많이 먹으면서 사람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야 팔리는 걸 만들지.

나도 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야.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도 힘들어~



사실 과장님은 회사에서도 소문난 미식가로 사내에서 중요한 접대나 회식이 예정되면 가장 먼저 과장님의 가게 리스트에서 추천을 받는 게 관례였다. 개인적인 취미도 있겠지만 업무가 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기획하는 것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혹자는 먹고 마시는 업무라서 편하고 부럽다고 하기도 했지만 많고 많은 후보들을 추리고 그중에서 더 잘 팔리도록 수정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손님들에게 손 보이는 것은 매우 빠른 속도와 함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같은 과 사람들이 업무이기도 했던 미식 탐험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시장조사라는 목적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후쿠오카 시내의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녔다. 덕분에 짧은 기간에 후쿠오카 시내의 요식업 업계 동향이나 중요한 인물들을 빨리 파악하고 네트워크를 넓혀갈 수 있었고 그중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해서 돔으로 입점을 시킨 사례도 있었다. 약간은 뻔뻔해지고 거절받는 것에 무뎌지니 나도 점점 내 취향에 맞는 그리고 내가 보기에 잘 팔릴 것 같은 상품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푸드트럭을 유치하여 영업을 했을 때 많이 뿌듯했다.


미각은 일상 속에서 그리고 특별한 비일상 속에서 잊히지 않는 한 순간이자 어느 감각보다 뇌리에 깊게 박히는 것 같다. 우리 돔을 찾은 수 만 명의 입맛을 사로잡고 싶은 우리의 왁자지껄 미식가 여정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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