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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Feb 21. 2022

돔에서 치즈 닭갈비를 외치다.

5회 초_작은 즐거움을 모아 맛으로 전하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한국의 치즈 닭갈비가 일본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치즈 닭갈비라는 메뉴보다 그냥 닭갈비에 치즈를 올려 먹었던 것 같은데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K-매운맛이 열도의 입맛을 고려해서 매운맛을 중화시킬 수 있게 퐁듀처럼 찍어먹을 수 있는 치즈를 가운데 두는 독특한 형태로 변한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자주 먹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고 일본도 가라아게(唐揚げ)라고 하는 닭튀김을 자주 먹기에 주재료인 닭고기며 채소들도 쉽게 구할 수 있어 나도 종종 만들어 먹기도 했었다. 유명한 예능프로에서 새로운 인기 음식이라고 치즈 닭갈비가 언급될 때면 도쿄나 오사카처럼 한인타운도 없고 지금처럼 한국음식점이 많지 않았던 후쿠오카의 지인들은 치즈 닭갈비가 궁금하다며 어떻게 만드냐고 많이들 물어봤는데 마침 신입 공채 모임에서 결혼을 앞둔 선배 S가 큰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축하파티를 하기로 하고 메뉴는 뜬금없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던 치즈 닭갈비로 정하고 내가 만들기로 했다. 유학생일 때는 졸업이라는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런지 친구나 선후배를 자주 집에 초대해서 불고기와 떡볶이, 김밥과 같은 일본에서도 인기 많고 실패하기 쉽지 않은 메뉴를 선보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명색이 회사의 미식을 담당하는 부서의 일원으로 진짜 한국 맛을 회사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매콤한 닭갈비를 쭉 늘어나는 치즈와 함께 먹는 게 일본에서 유행하는 치즈 닭갈비였다.

다행히도 K팝을 좋아하거나 서울 혹은 부산여행을 자주 갔던 사람들이 많아 회사에서 오가며 본고장의 치즈 닭갈비를 기대한다는 말로 나에게 부담 아닌 부담을 주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에서 고속페리로 부산항까지 3시간이면 도착하고 비행기로는 1시간도 안 걸릴 만큼 매우 가까워서 나보다 부산을 더 자주 가본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묘한 책임감에 이제는 익숙해진 표현인 인스타 먹방용 사진을 위한 플레이팅도 연구해가며 홀로 모의고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리고 맞이한 결전의 날. 일본에서는 대학생들이 자취방에 모여 함께 타코야끼를 만들어 먹거나 겨울에는 나베라고 불리는 전골을 함께 만들어 먹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식탁 위에서 만들며 먹을 수 있는 전기 플레이트가 있어 가게에서 먹는 느낌으로 만들 수 있었다. 큰 마트에서는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던 상큼한 과일 참이슬도 판매를 시작해서 후쿠오카의 주택가에서 각자의 한국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화끈하고 중독성 있는 매운맛도 한국음식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겠지만 예전부터 인기였던 비빔밥을 비롯해 직접 쌈을 싸 먹는 삼겹살, 원하는 소스를 마음껏 뿌려먹는 치즈 핫도그까지 한국음식은 손님이 마지막 방점을 찍음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 매력으로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쉽지만 고구마와 떡을 넣은 닭갈비로 수정해 판매했다.

신오오쿠보 부럽지 않은 치즈 닭갈비에 간단히 만들 수 있지만 항상 인기 많은 부침개와 다양한 이야기로 즐거운 밤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M짱 닭갈비가 맛있었다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회사의 맛있는 이야기를 다 꿰고 있는 우리 부서 사람들 귀에도 이야기가 들어갔고 마침 돔에 새롭게 문을 연 아시아 요리 전문점에서 요즘 인기 있는 치즈 닭갈비를 신메뉴로 개발한다는 이야기로 돌아왔다. 돔에서 판매하는 모든 메뉴는 우리 부서의 마지막 시식을 포함한 최종 협의를 거쳐 판매가 시작되는데 이번 치즈 닭갈비는 특별히 현지인인 내가 개발단계부터 함께 이야기도 하고 수정을 하며 만들어갔다. 첫 시식 날에 먹었던 닭갈비는 일본 현지화가 된 닭갈비라 닭갈비라기보다는 닭볶음의 느낌이 강했었다. 먹으며 한국 닭갈비 집에는 기본으로 들어가는 고구마나 떡볶이 떡을 넣어보기를 권유했고, 마침 후쿠오카가 있는 규슈지역이 고구마로 유명한 곳이라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고 하여 조리법이 수정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식을 맞이했는데 더 욕심을 내서 제대로 한국 맛을 내고 싶었지만 기존 메뉴와 식자재도 활용해야 하고 최대한 빠르게 제공해야 하는 운영방식도 고려해야 하기에 치즈는 아쉽지만 체다치즈를 토핑 하는 것으로 변경하여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개발단계부터 함께 해왔던 첫 상품이다 보니 두근거리며 틈틈이 판매실적을 확인하였다. 천 엔이라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맥주와도 잘 어울리는 매콤한 맛에 든든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첫날부터 조금씩 팔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판매 전단에 한국 출신 스태프가 감수했다는 문구를 적어주셨는데, 이 사진을 본 대학원 동기는 거의 선수급 대우 아니냐며 빵 터지는 코멘트를 보내줬다. 내 학창 시절 추억의 맛이 바다를 건넌 낯선 이 땅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인기를 얻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 맛을 더 현지에 가깝게 하는 과정에 내가 함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내가 돔에서 치즈 닭갈비를 외치는 날이 올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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