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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Mar 14. 2022

시즌 첫날, 음식 무한리필 이벤트를 담당하다.

6회 초_카오스라 불린 전례 없던 전례가 된 돔

한국에는 새해 목표를 세울 수 있는 기회가 3번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가 1월 1일 새해이고 두 번째는 진짜 설날인 음력설 그리고 마지막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작심삼일이라도 일주일 넘게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 우리 집 공식 용두사미인 나에겐 마음 넓은 한국의 새 출발이 기쁠 따름이다. 일본도 비슷하게 봄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새 학기가 4월에 시작한다는 것과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의 새로운 회계연도 그리고 커다란 인사이동, 공채 신입사원의 입사일 모두 4월 1일이라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보통 3월 중순 이후의 졸업식 시즌에 벚꽃이 만개하는 경우가 많아 벚꽃과 그즈음의 시즌은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의 대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일본인들의 벚꽃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쉽게 공감할 수 없었는데 일본에서 졸업과 입사를 경험하니 따뜻한 햇살과 아름다운 벚꽃 그리고 헤어지고 새롭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절로 떠오르기도 하고 첫 시작이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봄 꽃이 피기 시작하면 구단의 진짜 새해가 시작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4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는 반면 야구 구단인 우리 회사는 일반 세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으로 1년을 지내왔다. 거의 1년을 함께하는 리그 일정에 맞춘 스케줄이었는데 회사의 회계연도는 다른 회사보다 한 달 빠른 3월이었고 본격적인 새로운 시즌 모드는 2월부터 시작되는 스프링캠프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픈전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시범경기 기간은 약 한 달 정도로 3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돔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리그가 두 개로 나뉘어 있어 6월의 교류전과 포스트 시즌을 제외하고 만날 일 없는 팀들과 경기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규리그 개막에 맞춰 정예 멤버 후보를 추리고 선발 로테이션을 맞추기 위한 각 팀의 다양한 테스트가 이뤄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팀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파트도 오픈전은 하나의 테스트 베드로 새로운 시스템이나 상품 그리고 티켓을 테스트해보고 정규리그 개막 전에 수정하고 보완하여 제대로 된 시작을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그중에 하나였던 것이 바로 돔에서 음식 무한리필 이벤트였다.


12월 아이돌 콘서트가 있는 돔의 콩코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기줄

도전정신도 강하고 조금은 특이한 생각을 많이 했던 우리 부서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고 하는데 고객 입장에서는 물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 즐겁겠지만 현실적으로 각 점포와의 계약내용도 다르고 이익구조도 다르니 어느 한 거래처에 맞춰서 진행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원 관중일 때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돔인데 12월 아이돌 콘서트 할 때는 화장실 줄로 돔 한 바퀴가 절로 채워질 정도였으니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우리뿐만 아니라 티켓 부서 쪽에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좌석에서 앉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그중에 만족도가 높은 일부는 시즌티켓을 구매하거나 조금 단가가 높은 좌석도 추후 로스 없이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의 음식 무한리필 이벤트와 함께 진행하기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평소 도전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응원이 두터운 사내 문화도 한몫을 했는데, 덕분에 실무를 담당했던 나와 선배는 매일 같이 십 여개의 거래처와 연락하고 전산이며 경리 그리고 티켓, 당일 운영 플로우를 포함해 다양한 최악의 케이스를 염두해가며 준비에 준비를 더해갔다. 최종적으로 채택된 운영방식은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처럼 당일 티켓은 단 한 종류이고 그 티켓 안에 음식도 포함되는 방식이었다. 티켓 가격은 일반 오픈 전보다는 비싸지만 리그 전보다는 저렴했고 판매수도 정원의 절반 정도로 줄여서 판매했다. 오픈전은 예행연습 같은 느낌이 강해 진짜 야구를 기다려 온 코어 팬이 아니고서야 돔 까지 오는 사람의 수가 적었는데 회사 입장에서는 약 한 달 정도 되는 그 시기의 매출과 동시에 미디어 노출을 늘리면서 정규리그 예산 달성에 안착하고 싶어 했다. 음식 무한리필이기는 하지만 돔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이 다 양도 많고 간이 세서 많이 먹어도 3개 이상은 먹지 못할 거란 계산과 시내의 무한리필 음식점보다는 비싼 가격이니 굳이 먹을 걸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고 그렇다면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면 돔에 온 이상 야구경기를 보러 자리에 앉을 테니(실제로 경기가 접전일수록 혹은 점수차가 클수록 매출이 떨어짐) 생각보다 여러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적겠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좌석과 음식을 맛보고 또 오셨으면 하는 마음도 컸기에 진행이 결정 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전 점포의 담당자가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실제로 직원들을 모아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해봤고 트러블이 일어났을 때는 어떤 대응을 할지 등 정말 꼼꼼히 준비했다. 다른 사람들이 퇴근할 즈음에 야식을 사러 나갔고 일몰보다 일출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모두의 봄과 바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일본 프로스포츠 업계 최초의 시도이자 돔 오픈이래 첫 시도. 미디어를 비롯해 다른 11 구단의 담당자들에게도 연락이 많이 왔다. 심지어 견학으로 오겠다는 곳도 있었는데, 시합 전의 소정의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았다. 그리고 디데이가 다가왔고 마치 전쟁에 나서는 장수가 된 듯 다들 결연한 얼굴로 무전기를 챙겨갔다. 평소에는 시합 운영을 위한 상황실의 한쪽을 임시 작전본부로 만들고 돔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던 굿즈샵에서 소리를 지르며 계산대 앞을 정리해냈던 나에게도 본 적 없는 대혼란이 찾아왔다. 애초에 돔이 음식점을 위한 건물이 아니니 일반음식점보다 설비가 열악했는데 쉬지 않고 계속 조리를 이어가도 당초 우리가 계산했던 수량을 맞출 수 없었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생기는 클레임으로 과장님과 사원들은 돔을 돌며 문제를 해결하고 사과하기에 바빴고 시간이 지나도 콩코스의 인파는 줄어들지 않고, 결국 시합은 종료되었는데 음식을 받지 못한 고객이 나오기도 했다. 가까스로 영업이 끝나고 녹초가 된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게 현장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지옥 같던 하루가 지나고 본부 회의를 위해 회의자료를 작성하면서 과연 이 이벤트를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당일 운영뿐만 아니라 각 점포의 손익계산을 함께 리뷰하면서 생각보다 적자가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은 금액도 아닌 문제였기에 각 점포의 담당자들은 매우 곤란해했는데 다행히도 회사에서 보조를 해주는 방안으로 결론이 났지만 실무를 담당하며 여러 번 보고했던 이야기들이 제대로 매듭지어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상사인 과장님에 대한 실망과 거래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 회사에서도 카오스였던 그 이벤트에 대해 조롱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고 없이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지 않냐며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과 사람들은 큰 사고 없이 끝난 것에 대한 짧은 안도감과 기대를 갖고 와주신 고객과 적자를 떠안게 된 거래처에 대한 큰 미안함 그리고 뒷수습을 하느라 찾아온 현타에 멘털이 너덜너덜해졌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구체화시키며 실현시킨 것에 대한 격려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결과로 보면 실패한 이벤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번 이벤트를 통해 반대로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처리량의 최대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후 실행될 이벤트는 그 어느 곳도 펑크 나지 않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각 점포들도 자신들이 대응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경험했기에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판매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실패로 인한 자신감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한 번 터질 만큼 해본 경험이 있기에 어떠한 과제가 생기더라도 나를 포함해 모두 '그때보다 더 힘들지는 않겠지'하고 새로운 장애물을 조금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힘든 상황을 겪으며 생겨난 묘한 전우애는 보너스였다. 덕분에 서먹했던 각 점포 관계자들 사이에는 경쟁이 아닌 협력하는 분위기가 흘러갔고 한 곳이 장사가 잘 되어 식자재가 부족하면 빌려주기도 하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오히려 문제없이 지나간 소위 성공한 이벤트보다 더 얻은 게 많지 않을까? 다시 돌아봐도 두 번 더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고 후회도 없기에 한 번으로 충분했던 좋은 성장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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