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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Mar 23. 2022

진심으로 세계 최고를 이루고 싶다면

7회 초_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들어 이동한 부서

일본 생활을 하며 신기했던 명절문화가 있었는데 바로 달력은 평일인데 전 국민이 쉬던 일본의 큰 명절인 오봉(お盆)과 연말연시 시즌이다. 우리의 추석과 설날과 비슷한 명절인데 달력에는 평일이라 관공서나 은행은 대부분 정상영업을 하지만 암묵적으로 모두가 쉬는 시즌이라 가게들이 문을 닫기도 한다. 한국도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쉬는 시즌이 가장 바쁜 게 야구장인지라 여름의 오봉 시즌에는 한창 바쁜 때라 세상 사람들이 쉬더라도 우리와는 상관이 없었고 그나마 연말연시가 시즌이 끝난 후라 다른 회사보다 연휴가 조금 더 긴 편이었다. 회사가 정하는 연휴도 일반 회사보다 긴 데다가 회사에서는 연차 소진을 장려해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는 한에서 다들 빠른 연말연시 휴가에 들어갔다. 나도 길게는 보름을 넘게 쉬면서 1년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대타로 투입된 스포츠 펍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물론 장기휴가는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휴가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고 일하는 데 있어 큰 원동력임을 알고 있던 과장님은 나에게 연말연시 휴가가 없는 대신 프로젝트가 끝나면 원하는 대로 장기휴가를 약속해주셨다. 과정은 너무나도 힘들고 버거웠지만 끝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목적지까지 꼭 가야만 했기에 조금씩 참고 조금씩 힘을 내며 겨울을 버텨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프닝 파티가 무사히 열렸고 나는 시원한 맥주로 건배를 하자마자 돔을 뛰쳐나왔다. 그 길로 바로 집에 가 짐을 챙겨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게 다 끝난 나는 일본어도 야구도 돔도 다 잊고 싶었다. 마침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던 친구와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친구도 만날 겸 동남아 여행을 함께 하기 위해 도망 아닌 도망을 쳤다.


후쿠오카 도착 비행은 항상 오른쪽에 돔이 보였다.

확신 없던 프로젝트가 점점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회사 임원들께도 칭찬을 받으며 무사히 첫 발을 뗀 것만으로도 내 소임은 다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몇 개월간 눌러왔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낯선 곳에서 즐거운 수다도 떨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잊고 싶은 건 다 잊고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즐기며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만 싶었다. 일주일이 아닌 하루와 같던 친구와의 여행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어가 들려온 순간 깊은 한숨이 절로 내뱉어지고야 말았다. 규슈섬이 보이고 후쿠오카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유난히 파란 바다와 그리도 좋아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동그란 돔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쿠오카에 돌아올 때마다 오른쪽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돔은 반가우면서도 현실을 일깨워주는 풍경이었는데 유난히도 더 힘겨웠던 착륙과 함께 돔으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스포츠 펍은 큰 문제없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우리가 셀링포인트로 밀고 있던 큰 창문 카운터 자리도 거의 매 시합 매진이 되며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게 번아웃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재밌던 일이 심드렁해지고 어떤 일에도 흥미를 갖지 못했다. 너무나도 큰 짐을 한 번에 덜어버린 것이 탈이었는지, 긴 시간 홀로 싸워온 피로감이 너무 깊게 박혀있었던 건지 새롭게 맡게 된 신빌딩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실 이건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혼자 스포츠 펍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 후배 T군의 휴직에 대해 내 직속 상사인 과장님과 부장님 사이에 책임소재를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혼란한 부서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살얼음판과 같은 상황에서 부족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매듭지어야 하는 입장에서 결정권이 없는 나는 사소하게는 매장에서 사용하는 냅킨부터 크게는 거래처와의 계약내용을 하나하나 확인받으며 진행해야 했다. 바로 위의 결재라인인 과장님께 보고 후 결정한 이야기가 다음 날 그 위의 결재라인인 부장님의 다른 지시로 달려도 모자란 시간에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게 되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제대로 터진 적이 있었는데, 발주까지 너무 촉박하여 빠른 결정을 부탁드렸지만 예상대로 두 사람 사이에서 내가 말 전하기만 계속하게 되어 양해를 드리고 셋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먼저 빠르게 결정해야 할 안건을 보고했고 과장님이 자신의 결재 안을 왜 안했냐고 나에게 물었고, 바로 부장님이 그 결재 안을 자신이 막았다며 이야기에 불이 붙었다. 직속 상사의 말을 들어야 하지만 가장 윗 상사의 말을 들어야 하기도 하는 난감한 입장이라 해결을 부탁드렸는데 두 분의 날이 선 대화에 정말 그 자리에서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 비슷하게 있었고 오프시즌을 지내며 알게 모르게 우리 부서는 과장님파와 부장님파로 분열되고야 말았다. 이런 상황을 우리뿐만 아니라 타 부서 사람들도 눈치챌만큼 조직으로서의 생명을 다 해가고 있을 무렵, 인사부와 본부 윗선에서 개선을 위한 칼을 꺼냈는데 조직원들 개인, 관리직인 과장님과 부장님 셋의 개별 면담을 진행케 한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듣고 하루빨리 조직의 개선안을 찾기 위한 시도였는데, 다들 후련하다는 소감과 동시에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좋아질 거라는 기대는 안 한다며 너무 많이 늦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나는 업무에 대한 의욕 자체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기에 기대는커녕 이번에야 말로 퇴사를 해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 하며 매일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갖게 된 면담에서 두 분은 나에게 혼자 큰 일을 무사히 끝낸 것에 대해 고맙고 잘해주었다고 칭찬과 격려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와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려웠던 점을 다시 이야기해주기를 바라셨고 이미 그 프로젝트에서 탈출한 나는 제 3자의 이야기를 하듯 가감 없이 생각을 뱉어냈다. 현재 나의 모티베이션이 바닥이라는 것도 함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으셨다.



나) 저는 언제 이동하나요?

부장님) 무슨 말이지? 이동? 가고 싶은 데 있어?

나) 인바운드 추진실이요. 제가 언젠가는 갈 곳 아닌가요? 가고 싶어요.

부장님) M짱, 그래 언젠가는 갈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갈 수는 없지.



당시 회사에서는 야구뿐만 아니라 회사 소유의 돔구장 그리고 새롭게 개발하는 신빌딩 프로젝트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었고 이를 담당하는 부서가 반 년정도 전에 새롭게 생겼다. 그 안에는 후쿠오카로 쏟아져 오던 한국과 대만 관광객을 타깃으로 해외 비즈니스를 담당하는 부서도 생겼는데, 그 부서가 생기고 나서 회사 사람들은 왜 내가 그 부서로 이동하지 않냐며 인사부는 네가 한국어 잘하는 걸 까먹은 거 아니냐고 농담으로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처음에는 식음부서의 업무가 즐겁고 멤버들과도 합이 잘 맞아 굳이 그 부서에 내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후에 상기와 같은 이유와 더불어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직원이 거의 없어 종종 한국 구단 혹은 외국인 대응 업무가 생기면 내가 대타로 나가고는 했는데, 전담 부서가 생기며 그 빈도가 더 많아지면서 그 업무에 대한 흥미도 생겼고 무엇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느껴졌다. 일본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돔과 팀을 알릴 수 있는 일이니 더 멋져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부서에는 얼마 전에 경력직으로 새로운 사람이 막 입사했고 나 역시 이 부서에서 어느샌가 꽤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어 이동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던 때라 정말 솔직하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다가 나온 말이었는데 부장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꽤 충격을 받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로 균열이 가득했던 우리 부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조직으로 바뀐다는 것, 그리고 나의 부서이동. 과장님에게 조직명이 바뀐다는 이야기는 구두로 들어 알고 있었고, 심지어 새 조직하에서의 업무분장도 함께 이야기했었기에 내가 이동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뒷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내 이동에는 나의 첫 부서에서부터 계속 상사였던 부장님의 결정과 동시에 새롭게 이동한 조직에서의 오퍼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장님은 내가 첫 배정을 받았던 부서부터 계속 상사로 나와 함께 일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첫 부서에서 힘들게 생활했던 것도 알고 계셨고 나에게 새로 이동하는 본부가 쉽지는 않겠지만 하고 싶다고 했으니 멋있게 잘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우리 팀 그리고 회사의 슬로건은 '세계 최고를 향해서'였다. 진짜 세계 최고의 팀 그리고 구장을 만들 수 있을 유능한 동료들과 복 받은 환경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그렇지 못 한 행보를 접할 때마다 마음속이 답답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무력함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불평불만도 할 수 없는,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두려움과 동시에 돔에서 쌓아왔던 내 능력을 드디어 선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바닥을 쳤던 모티베이션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거짓말 같이 다시는 마주할 일 없을 것 같던 일하는 즐거움을 다시 맛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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