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초_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새로운 부서 발령 이후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인사를 겸해 사외의 관계기관에 실장님과 방문을 시작했다. 새로운 부서는 인바운드 추진실이라는 이름이었다.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전에 한국과 중국 같은 이웃국가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어마 무시한 소비에 열도는 깜짝 놀랐다. SNS에서 반응이 좋으면 한적한 시골이 북적이는 관광지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고 주요 도시의 도심가에는 양손 가득 쇼핑을 즐긴 외국인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관광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인바운드(외부에서 들어오는)와 아웃바운드(내부에서 나가는)의 구분은 유행어 랭킹에 등장할 만큼 일본 사회에서는 흔하게 사용되었다. 도쿄의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고 몇십 년 만에 도쿄로 돌아온 올림픽이자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던 일본 열도의 건재함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일본의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공식 스폰서 기업이 아니어도 ‘2020 준비실’ 같은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당시 올림픽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일본 사회의 기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관광업계의 폭발적인 성장과 이로 인한 재개발 혹은 지역사회의 활성화였다.
나도 도쿄에서 후쿠오카로 이사하고 가장 놀랐던 게 바로 한국인 관광객을 거리에서 엄청 자주 마주쳤다는 점이다. 도쿄는 상대적으로 관광지라고 할 만한 곳이 정해져 있어 일반 주택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후쿠오카는 도시 자체가 콤팩트해서 주택가와 관광지의 경계가 애매했고 직장이었던 돔 주변은 후쿠오카 타워와 바닷가가 있어 관광객으로 붐볐고 살고 있던 오호리 공원 근처 역시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언어가 들려오는 관광지였다. 그런 후쿠오카의 거리에서 NO JAPAN의 영향으로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후쿠오카의 관광업계에는 예상치 못한 타격이었다. 부서 이동 후 함께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있는 지자체를 비롯한 관광재단, 항공업계, 커다란 쇼핑몰과 같이 관광객의 방문이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곳에 인사를 다녔는데 먼저 한국인인 내가 새로운 담당자라는 사실에 모두들 반가워하셨고 다음은 한국에서의 여론은 어떤지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에 대해 많이 알려달라는 말도 빠짐없이 더해주셨다. 학부에서 관광학을 전공했던 나는 학창 시절에 친한 선배들과 관광 관련 공모전에 나가 장관상을 수상을 할 만큼 한 때는 어떤 분야보다 열정적이었는데 이런 나에게 앞으로 함께 일할 파트너가 관광 관련 부처와 업계라니 이루지 못 한 꿈을 이루는 것처럼 신이 나서 안 그래도 많은 말이 더 많아지곤 했다.
사내에서도 다른 부서와의 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놀라기도 했지만 회사의 민낯을 보고야 말았던 순간이 있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광고대행사 D사와 연간 계약으로 인바운드 PR 안건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들어서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바로 그 D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한다는 생각에 내심 기대를 했다. 기대를 안고 들어간 첫 미팅에서 나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우리가 돈을 지불했기에 그쪽에게 성과품을 받아야 하는데 나에게 한국의 커뮤니티 정보며 현지 사정을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해 들어 본 적 없는 브랜드나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거액의 견적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 생활이 오래되어서 잘 모르는 건가 싶어 다시 한번 초록창에 검색을 해봐도 애매한 검색 결과뿐이었다. D사로 선정된 경위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회사 브랜드를 담당하는 부서가 인바운드 PR 역시 브랜드의 PR 중에 하나니까 선정한 업체라고 들었는데 그게 큰 실수였지 않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했던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잘 된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회사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나갔던 지자체와 다른 업체들은 직접 외국인 고객을 맞이하는 것도 있고 대부분 외국인 직원이 조직 내에 있어 우리처럼 뜬 구름 잡는 이야기는 없어 보였다. 덕분에 나도 이야기가 빠르게 통해서 오히려 사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배우는 게 더 많을 정도였다. 관광학의 영원한 연구주제 중 하나일 관광지 선택요인은 단일 변수보다는 복합적인 변수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극대화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업의 관계자들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연쇄적으로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꾀하고는 했다. 여러 곳과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에도 친구와 친구를 소개하거나 작은 공통점이 있으면 이야기가 잘 통하겠네 하며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주변 사람들을 많이 엮었던 나였다. 출장으로 도쿄에 왔던 선배 H는 나의 소개병으로 우리 연구실 뒤풀이에 참석해 통하지 않는 일본어로 레몬 사와를 연거푸 마시기도 했고, 회사 동기 N군과 대학원 동기 T군은 나의 주선으로 야끼토리 회동 후 내가 없는 후쿠오카에서 출장으로 방문할 때마다 친목을 쌓아가고 있다. 사람을 연결하는 습관은 여기에서도 불쑥 나왔는데, 마침 운 좋게 정부지원사업으로 돔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 프로그램 개발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주변 관계자들을 공식적으로 만날 이유가 생겼다. 조만간 열릴 도쿄 올림픽 관광객들을 후쿠오카까지 부를 방안도 함께 생각하자는 대의명분도 함께 말이다. 먼저 돔 옆에 있던 개발 당시에는 같은 회사였지만 현재는 다른 법인으로 운영되는 호텔을 시작으로 랜드마크인 타워의 담당자님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 부서에서 부동산 개발업무를 하며 친목을 쌓았던 후쿠오카 시내의 큰 쇼핑몰 담당자님들과 우연히 연락을 받아 알게 된 공항과 지자체 관계자들 모두 반갑게 참여해주셨다. 그간 생각은 했지만 공식적인 관계가 없거나 접점이 없어 함께 할 자리가 없었다며 첫 시작을 끊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실장님 역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는 물론이고 그 교류를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를 대환영이라 해주셨다. 나에게 후쿠오카 반상회 크게 한 번 열자며 추가로 함께 하면 좋을 곳을 연결해 주시기도 했다.
하나 둘 늘어나던 멤버들과 딱딱한 일 이야기는 물론이고 퇴근 후에는 한 잔 기울이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곳에서도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단골 질문인 왜 일본에 왔는지, 왜 이 회사에 입사했는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모두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든든한 응원의 말을 전해주곤 했다. 아무래도 관광분야에서 직접 외국인을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문화 차이나 다양한 지역에서 경험했던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는데 지금껏 공감받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여기에서는 끄덕여지는 이야기들이라 일로 만난 사이였지만 큰 힘을 얻고는 했다. 이렇게나 마음도 잘 맞고 하고 싶은 기획도 무궁무진했던 모임이었는데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라는 더 큰 타격으로 모두가 많이 힘든 상황을 맞이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작은 목표를 이루기도 했다는 거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잠자코 볼 수만은 없었기에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콜라보 기획을 실현시키기도 했고 어느 한 곳만의 단독 기획으로는 예산도 준비도 힘들었겠지만 함께 준비하며 해외에서 온라인으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예상치 못했던 공습에 맞서 싸웠던 동료애가 생겼는지 오히려 연락도 자주 하면서 사이가 돈독해졌는데 이 중에 몇 분은 내가 퇴사 후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송별회를 기획해주시면서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주시기도 했다. 글을 작성하며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와중에 ‘만약’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를 자주 떠올리곤 한다. 만약 코로나19 없이 우리가 계획했던 기획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그것도 그대로 즐거운 상상이지만 코로나19로 더 돈독해진 시간도 있었기에 아쉬움은 접어두기로 하자. 머지않은 미래에 만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