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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Mar 07. 2022

돔에서 나보다 맥주 잘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

5회 말_최종면접에서 말했던 하고 싶은 일을 내 손으로

십 년도 전에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두려웠는데 그중에 최고는 OT와 MT 그리고 선배들에게 둘러싸인 술자리였다. 요즘에는 문화가 많이 바뀌어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나 때는' OT의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면 초록 참이슬 병이 가득 찬 방으로 바뀌어 있었고 나라사랑에 버금가는 동기사랑을 위해 다양한 시련(?)을 추가한 동기주를 꿀꺽꿀꺽 마셔야만 했다.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막연히 술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고 쓰디쓴 그리고 알코올 냄새밖에 나지 않던 소주를 마셔야만 하는 당시 상황이 매우 무서워서였는지 시간이 지나 술에 취해 결국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게 되었고 그나마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선배 언니를 껴안고 엉엉 울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술자리에서는 취하면 우는 애라는 유명세와 함께 선배들에게 소주잔 패스를 얻게 되었다. 이후에 개강총회를 시작으로 때마다 생겨나는 술자리로 필사적으로 술을 피하고 싶어 어쩌다 보니 나는 게임 마스터가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술자리는 유쾌한 시간보다는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이런 내가 술자리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게  계기가 있는데 바로 1년간 일본에서 지냈던 교환유학  이야기다. 물론 일본도 술을 강요하거나 많이 마시는 사람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당시 한국의 대학생 술자리처 누가 쓰러질 때까지 마시는 분위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마실  있는 술의 종류가 다양했다는 점이다. 보통 일본의 대학생들은 이자카야라 불리는 한국의 이자카야보다는 더 대중적인 분위기의 술집에서 인당 2~3 엔의 노미호다이(飲み放題)라는 시간이 정해진 각종  리필 코스로 술자리를 갖곤 하는데 한국에서 선배들이 맥주는 비싸니 시켜주지 않았고 오직 참이슬(심지어 과일소주도 없던) 마시던 나에겐 거품이 찰랑찰랑한 생맥주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달달한 칵테일이 무한리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일본 친구들은 오히려 소주를 그냥 원샷으로 쭉쭉 마시는 한국의 술자리 문화를 신기해했고 한편으로는 무서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종류를 알아가는 즐거움과  마시면  마시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잔을 즐기는 시간이 좋아졌다. 술을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즐길  있게 되면서 일본에서 많이 마시는 일본 맥주에 관심이 생겼는데, 지인들  자신은   브랜드만 마신다고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어 브랜드 별로 맛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 여러 개를 사서 시음하며 맥주의 매력에 빠지게   같다. 그와 동시에 일본의 맥주회사들은 전국의 맥주공장에서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침 공부하던 전공과도 관련이 있어 다양한 곳에 견학을 가보니 맥주회사마다 공정도 다르고 견학  마시는 맥주 맛의 차이를 알게 되면서 맥주 애호가라고 말할  있을 만큼 나만의 취향도 생기고 누군가에게 설명도 해줄  있게 되었다.


군만두 먹을 때 우리 연구실 공식 소스는 식초와 흰 후추의 조합이었다.

졸업  일본의 대학원에 진학을 하게 되면서 나의 맥주사랑은 더욱 커져만 갔는데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은 매주 각자의 연구 진행상황을 보고하고 스터디하는 세미나가 끝나면 약속하지 않아도 항상  같이 학교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군만두와 차가운 생맥주를 마시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겼던 것이다. 학교 내에서도 매우 드문, 조금은 한국의 술자리 문화와 비슷했던  같기도 한데 방금 서빙된 겉바속촉의 군만두와 차가운 맥주잔을 양손에 쥐고 밤이 깊도록 즐거운 학문의 탐구를 함께 했다.


그런 생활을 2년간 보내고 후쿠오카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후쿠오카가 위치한 규슈지역은 증류주인 소주가 유명한 지역으로 소위 술이  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그렇게 무서웠던 참이슬로 시작되었던 나의 음주생활도 시간이 지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한 것인지 한국사람들 만큼  마시는 후쿠오카 사람들이, 그리고 오랜만의 한국 술자리와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반가웠다. 게다가 육해공의 식재료가 풍부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끼토리 집이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동네였던 후쿠오카라 어느샌가 시내의 유명한 이자카야를 줄줄이 꿰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식음파트로 이동을 하면서  관심이 더욱 커져만 갔는데, 선수 메뉴와 같은 음식을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 부서가 주력했던 사업이 바로 우리코(売り子)라고 불리는 스탠드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통해 판매되는 맥주였다. 유명한 우리코가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사례가 있을 만큼 인기도 많았는데 실제로 담당해보니 콘텐츠로서의 우리코 뿐만 아니라 매출 자체가 어마무시했다. 그리고  매출은 회사의  시즌 스폰서십의 가격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데이터이기도 했다. 연간 목표 중에 하나인 맥주의 출하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모션도 진행하고 우리코를 주목받을  있게 미디어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NPB에 구단 오리지널 맥주 붐에 불을 지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사이에 일본에서는 지비루(地ビール)라고 불리는 지방의 작은 양조장들이 만들어내는  지역의 맥주가 붐을 이루기도 했고  넘김이 시원한 라거 맥주뿐만 아니라 에일을 시작으로 다양한 맥주의 종류를 메이저 회사들도 앞다투어 론칭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팀도 구단 오리지널 맥주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맥주를 좋아했던 나는 우리 팀만의 맥주를 만드는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고 대단해 보였다. 야구팀에서 자신들만의 맥주를 만들다니! 이런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니 과장님이 너도 해보면 되지 않냐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 맥주회사가 판매하는  시즌의 매출액을 알고 있기에 우리가 만들어 직접 팔면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이유는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술을 판매하기 위한 면허를 포함해 맥주를 만들 공장이며 품질관리, 유통에 주류세까지 넘어야  벽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팀들도 하는데 우리가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담당자인 내가 맥주에 진심이니까 일단 움직여보기로 했다.


후쿠오카의 크래프트 맥주를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거래처이자 일본 크래프트 맥주 붐을 이끌던 담당자님과 함께 출장지에서도 크래프트 맥주를 공부했다. 취미 반 업무 반.

맥주를 론칭하기 전 어떤 콘셉트로 상품을 기획할지 스토리라인을 시작으로 디자인을 포함해 상품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가면서 행정절차와 사내 물류와 경리 시스템 상의 처리를 정리해보니 대략적으로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알 수 있었다. 사내 보고용으로 손익계산을 여러 로직으로 맞춰보고 현실적으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찾기 위해 기존의 거래처를 포함해 다양한 방법으로 양조장을 수소문했다. 정말 다행히도 우리가 생각했던 스토리라인과 상품 콘셉트에 부합하는 양조장이 있었고 그쪽에서도 우리와의 협업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었기에 일이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우리가 의도한 상품의 이미지는 있었지만 결국 손님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에 양조장과 어떤 맥주를 만들까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시장조사를 핑계로 후쿠오카 시내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하는 모든 가게를 다 방문하였다. 요즘 후쿠오카 사람들의 취향이며 크래프트 맥주 업계와 세계의 트렌드에 대해 묻기도 하고 우리의 계획을 들려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다양하고 좋은 의견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를 참고로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우리 팀 오리지널 맥주의 레시피를 완성하였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이나 라인업에 아쉬운 마음은 컸으나 0에서 1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시작이라 생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개발과정부터 고객에게 판매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맥주의 숙성이 끝나 드디어 돔에서 판매를 개시하던 , 저녁 시합이었는데 홍보부서와 고심 끝에 팀의 마무리를 맡아주고 있는 선수와 함께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우승을 하면 비루카케(ビールかけ)라고 하는 맥주를 잔뜩 뿌리며 우승의 기쁨을 맞이하는 세리머니를 하는데 우승해서  맥주로 비루카케를 하고 싶다는 멘트와 함께 멋지게 소개를 해주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은 시간 판매를 준비했고 돔의 문이 열리고 드디어  손님이  순간, 감사하고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어  채팅방에 전송하였다. 사내를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해 기존의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가면서 우리의 비즈니스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첫걸음을 내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컸다.


드디어 크래프트 맥주 가게에 우리 맥주의 라벨을 붙일 수 있었다.

구단 오리지널 맥주를 준비하면서 단순히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만드는 입장에서의 맥주에 대해 많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신나는 일이자 공부였다. 단순한 맥주 덕후에서 직접 만들기까지 하면서 덕분에 회사에서 나는 맥주 박사로 통하게 되었고 이후 스포츠 펍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도  능력을 마음껏 펼칠  있었다. 처음엔 마냥 두려웠던 술이라는 존재가 내게 처음으로 잔업을 해도 힘들지 않고 일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다니 아이러니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점들의 연결이 이렇게 이어져 재밌기도 하다. 입사 최종면접에서 당시 전무님이 입사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해보고 싶냐고 질문을 하셨는데, 면접비로 후쿠오카 관광도 하고  투어  것에 만족해했던 나는 시켜주실지 모르겠지만 맥주 우리코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한국에는 없으니까, 그리고  인기가 많은지도 궁금하고 우리코를 통해 사는 고객들이 궁금해서. 면접전략도 없던 막무가내 입사지원자였던 나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 우리코를 관리하는 업무를 했고 정말 맥주를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내가 만든 맥주를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단 올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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