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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Apr 29. 2024

단편소설 같은 삶 <웬만해서 아무렇지 않다>

정말 짧은 소설(2024.04.06. 토)


안녕하세요. 글로 상담하는 상담사 아가다입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이기호 / 박선경 / 마음산책 / 한국소설 / 252p


이 책의 첫 단편 소설 제목은 '벚꽃 흩날리는 이유'입니다. 소설 내용은 이래요. 50대의 남자는 검도 도장 사범이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시대 '태연'을 험담한 남학생을 폭행 및 폭언, 협박했다는 협의로 고소됩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형사는 남자에게 사과를 하고 합의를 보라고 말합니다. 형사의 말에 남자는 '아니죠. 그러면 누굴 사랑하는 게 아니죠.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말합니다. 형사는 남자의 대답을 듣고 중얼거려요. 진짜 사랑은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창밖에선... 중략...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이러고는 소설이 끝나버려요.



첫 소설을 읽고 '이건 뭐지? 뒷 내용이 어디 갔어?' 밥 먹다가 만 느낌, 화장실 갔다가 뒤처리 안 한 느낌적인 느낌. 한참을 뒤적였어요. 이 요사스러운(?) 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책 표지에서 발견한 한 문장 '웃음과 눈물의 절묘함. 특별한 짧은 소설'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 독서모임에서 추천된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끝까지 읽지 않았을 거예요. 자기 계발서 같은, 뭔가 생산적인? 부류의 책을 즐겨 읽는 저는 뭔가 생산적이지 않은 책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하튼 독서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 일단 읽었습니다.


어?! 이거 뭐지?!! 읽을수록 단편소설 한 편 분량이 3~4장인 것에 비해 여운은 묵직합니다. 책 252p에 총 40편의 단편 소설이 있어요. 뭔가 뒷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열린 결말(=결론을 내리지 않고 열린 끝맺음)'이라서 소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마무리되지 않은 소설 뒷 이야기를 제가 계속 쓰게 됩니다. 책을 읽고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읽고 나도 몇몇 소설은 기억에 남네요.


기억에 남는 한편은 한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고속도로 '졸음 쉼터'로 갑니다. 자살 시도를 하려는 순간 트럭한대가 졸음 쉼터로 들어와요. 트럭운전수는 그 남자가 자살시도를 하려는 순간마다 창문을 두드리며, 라이터를 빌려달라고 하거나 자신이 납품하는 고등어를 싸게 줄 테니 사라고 하죠. 트럭운전수의 방해로 자살을 하지 못한 남자가 화가 나서 트럭운전수에게 '도대체 왜 이러냐'라고 소리칩니다. 그때 트럭운전수는 어차피 라이터도 자신에게 빌려줘서 번개탄 불 피우기도 어려울 테니 자기랑 고등어나 구워 먹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끝나요. 그 사람이 자살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죠.


또 한 소설은 16년을 함께 산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어머니를 지켜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죽은 개를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굳이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아버지 산소에 개를 묻으려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들은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하지만 어머니에게 표현하지 않고 강아지를 묻을 구덩이를 파고 있는데 어머니가 말합니다. '사흘 전쯤에 말이다.. 봉순이가 눈감기 사흘 전쯤에... 자고 일어났더니 얘가 내 베개 옆에 가만히 엎드려서 빤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중략... 봉순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 중략...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다가 봉순이가 엎드려 있던 곳을 보니까... 거기에 내 양말 두 짝이 얌전히 놓여 있는 거야...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테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




앞표지에 나온 글귀처럼, 웃음과 눈물의 절묘함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내용은 짧지만 사유는 길고 굵었습니다. 결말이 없는 소설, 참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네 삶도 그렇잖아요. 쓸 수 있는 건 오늘뿐,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쓸지는 우리 몫인 삶. 참 닮았어요.


책을 추천한 선생님이 이 책을 다른 독서모임에서도 추천했다가 '욕'을 한 바구니를 들었데요.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주시더라고요. 우린 너무 결론에 익숙한 삶을 사는 것 같다고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 한마디로 나만에 판단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요? 이미 정한 결론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잘못된 것처럼, 실패한 것처럼, 낙오한 것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너무 많은 결론들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이 더 힘들 수도 있어요. 결론 내지 않고, 정해놓지 말고 그냥 지금_여기를 사는 건 어때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단편하나를 선택해서 뒷 이야기를 내가 직접 써보는 작업을 해봐도 참 재밌을 것 같아요!


너무 엔딩? 결론? 정해진 삶 속에 익숙해져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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