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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May 12. 2021

호야 꽃나무가들려준 이야기


하루 중 오전 나절은 베란다 꽃밭에서 대부분을 보낸다. 지금 꽃밭에는 분홍빛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캔디, 하얀 꽃잎에 빨간 방울을 감추고 언제든 '또르르 또르르' 방울소리를 울릴 것만 같은 덴 드롱과 꽃잎이 나비처럼 생긴 만천홍등이 한창이다. 겨우내 잎이 누렇게 변해 걱정을 하게 했던 꽃기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연녹색 잎사귀 위에 하얀 꽃들을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다. 그런 화분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물을 줘야 하는 화분은 없는지, 영양분이 필요한 꽃은 없는지 점검한다. 등 뒤에선 오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게 노닌.


며칠간 제주도를 다녀오느라 잠깐 소홀히 했더니 여기저기서 "나, 좀 봐달라 아우성"이다. 제일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은 뱅갈 고무나무다. 그사이 또 끈적끈적한 잎이 여러 장 눈에 띈다. 잎 뒷면을 들쳐보니 생각했던 대로 응애가 잔뜩 붙어 있다. 나도 모르게 징그러워 '까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 야멸차게 걸레로 응애를 닦아냈다. 이렇게 해도 응애는 사라지지 않고 또 생길 것이다. 한 번 병이 든 식물은 약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식물이 병이 든 경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 과습으로 잎이 짓무르거나 병충해가 생기기 쉽고, 영양분을 많이 주고 과잉보호를 할 경우 웃자라거나 꽃이 피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뱅갈 고무나무와 호야가 그랬다.


작년 6월, 꽃이 피기 힘들다는 호야는 꽃을 보고 싶다는 내 소망에 호응이라도 하듯 3년 만에 꽃송이를 맺었다. 그 꽃송이가 신기해서 영양제를 주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서 보며 어서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가자, 꽃망울이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꽃을 피우지 못하고 쪼그라들고 말았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과다한 영양공급과 햇볕을 좀 더 많이 쬐게 하려고 화분을 이리저리 옮긴 것이 원인이었다. 이것을 경험 삼아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으려고 꽃나무마다 물을 준 날짜와 비료 주는 날짜를 기록해 두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꽃과 나무에게 되도록이면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함부로 만지거나 이리저리 옮기는 일도 자제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꽃나무들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호야 덩굴에 이상한 것이 매달려 있다. 자세히 보니 꽃송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송이었다. 나도 모르게 '이야'하며 탄성을 질렀다. 되도록이면 거리를 두고 충분한 물과 비료를 주었더니 대견하게도 꽃망울을 맺은 것이다. 지금 호야는 날마다 바나나 과육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으며 예쁜 꽃을 하나, 둘 피우고 있다.


그런 호야나무를 보니 문득 며칠 전 딸이 볼멘소리로 "엄마, 언제까지 '나한테 밥은 먹었냐? 문단속은 잘했냐? 묻을 실 건데요.'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저도 어엿한 성인이자, 사회인이란 말이에요. 이젠 저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자제하시고 저를 좀 믿어주시면 안 돼요. 제발요."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딸,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문자를 보내며 작은 발걸음부터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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