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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Nov 09. 2022

특별한 카페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이 많아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예상 시간보다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닷길이 열려야 갈 수 있었던 제부도는 언제든지 오갈 수 있게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었다.


 남편과 함께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커피를 사 들고 바닷가로 향했다. 소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맞게 데워진 모래의 감촉과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기분 좋게 다가왔다. 우리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며 연신 깔깔거렸다. 추석이 내일인데 한가하게 바닷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시댁은 종갓집으로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달마다 제사가 거의 있다시피 했고, 거기에다 시부모님 생신과 시할머니 생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댁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고 마련해야 할 제수 음식도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하루종일 쉴 틈도 없이 전 부치고 반찬을 만들다 보면 몸도 마음도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고, 서투른 일솜씨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래도 그득히 차려진 제사상 앞에 나란히 서서 예를 갖추고 절하는 모습을 보면 형언키 어려운 뭔가가 가슴을 꽉 채웠다. 


 그러나 가사는 물론이고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제사와 명절은 즐거움보다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로 다가왔다. 어머님도 직장 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달려오는 우리를 보고 안 되겠다 싶었는 지 오래된 제사는 시제(時祭)로 모시고 음식도 간소화했다. 하지만 맏며느리에게 주어진 무게는 줄지 않고 여전히 버거웠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동생들을 불러 놓고 제사와 명절에는 제사상에 음식 대신 꽃을 바치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것은 선언이 아니라 일종에 변혁이요 개혁에 가까웠다. 그동안 남편은 싫은 내색 없이 정성껏 제사를 지내며 장남의 도리를 해왔고, 제사를 지낸 다음 날이면 끙끙 앓은 소리를 낸 나에게 말없이 약봉지만 내민 그였다. 뜻밖이었다. 수십 년 동안 지켜왔던 철옹성 같은 관습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했는지 방안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일 먼저 환영하고 기뻐해야 할 사람이 나였다. 제수 음식을 만들 때마다 힘들어했고 제사 며칠 전부터 머리가 무거워 끙끙거린 사람도 나였다. 그 일이 해결됐는데 정작 내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고 더 무거웠다.

 어머님과 제수 음식 만들던 일이 떠올랐다. 일이 서툴러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친척들 몰래 밖으로 데리고 나와 사주시던 아이스크림이 생각났다. 실수로 음식을 태웠을 때도 슈퍼맨처럼 나타나 해결해 주셨던 일도 떠올랐다. 제사상 차리느라 고생했다며 등을 어루만져 주시던 시할머니의 손길도 그리웠다. 생각다 못해 나는 오래된 제사는 꽃으로 대신하고 생전에 같이했던 분들만이라도 간소하게 지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남편도 내 의견에 동의해 주었고 동서들도 흔쾌히 따라주었다. 


 우리는 재작년부터 고인들이 즐겨 드셨던 음식 서너 가지와 다과를 준비해 형제들끼리 차례대로 돌아가며 산소에서 지내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막내동서가 준비할 차례다. 어제 제부도에서 여유로움을 한껏 즐기고 온 나는 빈손으로 가기가 미안해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 목적지로 향했다. 코로나 이후 처음 지낸 명절이라 차가 많이 밀렸다. 그곳에 도착하니 캠핑용 버너 위에서는 커피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부모님이 잠들어 계신 곳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커다란 소나무가 왼쪽에는 밤나무가 서 있고 뜰에는 이번 여름에 심은 백일홍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평소에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를 생각해 시동생이 심은 것이다


 우리는 간단히 예를 올리기 위해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차렸다. 술잔에 막걸리를 따르던 시동생이 "와따, 맛나다. 캬하" 하며 시할머니 흉내를 냈다. 그 모습이 너무 똑같아 우리는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생전에 술을 즐겨 드셨던 시할머니는 내가 죽으면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막걸리 한 잔이면 족하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제사가 끝나고 우리는 돗자리에 빙 둘러앉아 커피와 함께 음식을 먹었다. 어김없이 생전에 함께했던 분들과의 추억이 등장했다. 할아버지가 사이다라고 주셔서 얼른 받아먹었는데 소주였다는 아들의 이야기, 여름이면 할머니가 쪄주시던 옥수수가 생각난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함께 탁 트인 카페에서 커피 향이 바람을 타고 노닌다.


 하늘에서는 하얀 낮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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