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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Aug 19. 2021

엄마 무티쓔 주세요

편리함을 줄이다#1

엄마 무티쓔- 무티쓔 주세요


아이가 4살이던 어느날 두유를 쏟고는 자연스럽게 물티슈를 달라고 했다. 얼결에 물티슈를 급히 몇 장 빼서 닦아주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언제부턴가 물티슈가 오염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있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서 물티슈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물티슈를 사 본 적이 없었다. 출산준비물 목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빠지지 않는 물티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산 후 아이가 신생아 집중치료실에 8일간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물티슈가 준비물이었고, 조리원에서도 물티슈가 준비물이었다. 3살에 들어간 어린이집도 준비물에는 개인 물티슈가 있었다. 물티슈는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일회용 기저귀만큼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아이가 뭘 먹다 흘릴 때도, 대소변 처리할 때도 밖에 나가 놀다 손 씻기가 마땅치 않을 때도 물티슈는 너무나 유용했다. 70매짜리 물티슈 한 개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다 썼고, 박스 째 사서 곡간 채우듯 차곡차곡 채워놓아야 안심이 됐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물티슈가 있으니 식탁도 물티슈로 닦고 손에 뭔가 묻어도 물티슈를 썼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 아빠가 뭔가를 닦을 때는 늘 물티슈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니까 아이가 물티슈를 찾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득 우리 아이들에게 물티슈 사용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는 것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 세대에는 걸레나 행주, 손수건 등의 단어는 국어사전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습관이란 것이 무서운 거니까.



결혼 전에도 내 생활에 물티슈는 없었고, 결혼 후에도 6년 동안은 물티슈 없이 잘 살았다. 우리 대부분은 물티슈 없이 몇십 년을 잘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땐 물티슈 없이 어떻게 지냈는지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행주를 썼을 것이고, 걸레를 쓰고 휴지를 썼겠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했지만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이제는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고, 전만큼 음식을 많이 흘리진 않으니 가능할 것도 같았다. 쟁여놓은 마지막 물티슈를 다 쓸 때쯤 이제부터 집에서 물티슈를 쓰지 않겠노라 남편에게 선언했다. 당연히 잡음이 조금 있었지만 남편은 대체로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참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행주를 삶아봤다, 걸레를 빨아 쓰고, 손수건으로 아이의 입과 손을 닦아줬다.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외출할 때가 젤 문제였다. 손수건을 챙기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물티슈도 손수건도 없이 외출하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럴 때면 늘 아이는 주스를 쏟거나, 손에 뭔가 묻어 닦아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물티슈를 구매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시간이 제법 흘러 어느 정도 몸에 배었는지 이제 외출할 때면 스텐 빨대 2개와 핸드타월 두 개, 손수건 하나를 챙긴다. 그렇지만 여전히 까먹을 때도 있다. 이제 5살이 된 아이는 입에 뭔가 묻으면 욕실 앞 서랍장으로 가서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는다. 손에 뭔가 묻으면 "엄마~ 손 씻을래요~" 하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화장실 앞으로 간다. 아이의 입에서 물티슈라는 단어가 나오는 일은 이제 없다. 나의 결단이 결실을 맺었다.


갑자기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며칠 전 올라오신 친정엄마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오신 엄마는 내가 마트에 간다고 하니 집에 물티슈가 없다며 물티슈를 하나 사다 달라고 하셨다. 오셔서 아이도 봐주시고 며칠 살림도 도맡아 해 주러 오셨는데 물티슈를 쓰라 마라 하기가 그래서 아무 소리 않고 사다 드렸다. 그렇지만 옹졸한 나는 엄마가 계속해서 물티슈를 사용하시는 것이 눈엣가시였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께 물티슈 말고 그냥 휴지를 쓰시라고 말씀드렸다.

“물티슈도 휴지 아니야?”

“엄마 물티슈는 플라스틱이야- 휴지는 물에도 녹고 땅에 묻으면 썩지만 물티슈는 썩지 않아.”

우리 엄마처럼 물티슈가 천연펄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닦는 물티슈를 통해 입 안으로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매립이 되어도 썩지 않고 연소가 될 경우 독성가스를 만들어낸다. 하수로 흘러갈 경우 합성섬유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오염까지 유발한다. 환경적인 이유 말고도 물티슈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방부제다. 순수한 물과 원단은 젖은 채로 하루 이상 있으면 세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젖은 채로 세균이 안 생기려면 방부제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티슈로 아이 입을 닦고, 식당에서 손을 닦는 행동들은 차곡차곡 우리 몸에 방부제를 쌓는 것인 셈이다.



최근에는 환경 이슈가 커지면서 대나무나 유칼립투스 나무와 같은 천연펄프 소재 물티슈도 많이 나오니까 꼭 써야 한다면 미세 플라스틱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이런 제품들로 잘 찾아보고 구매하면 좋을 것 같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작은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다운 변화를 일으킬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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