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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Sep 23. 2021

곶감과 생리컵

편리함을 줄이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말했다.

“자꾸 울면 호랑이가 잡아간다~~~”

“으아아아아아앙 ㅜㅜ”

할머니의 말에 무서워진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뚝! 할미가 곶감 줄게 “

그러자 울음을 뚝 그치는 아이

마침 배가 고파 내려온 호랑이가 바깥에서 얘기를 듣고 있다가 자기보다 분명 더 무서운 존재일 거라 생각한 ‘곶감’ 때문에 돌아갔다는 이야기.



 곶감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 본 호랑이에게는 호랑이 얘기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은 아이가 울음을 그치게 만든 ‘대단히 무서운 미지의 존재’였다. 한 번도 본적 없는, 경험해본 적 없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나에게도 이런 ‘곶감’ 같은 물건이 있었다. 지금은 그 물건이 곶감처럼 달콤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 전래동화 속 호랑이와 다르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우연하게도 온라인상의 지인과, 공방 수강회원 한분이 각각 나에게 ‘생리 팬티’라는 것의 신세계에 대해 전파하는 일이 있었다. 블로그로 친해진 오랜 이웃 언니가 최근에 생리 팬티를 사서 입고 있는데 장시간 앉아서 일하는 본인에게는 조금 아쉽지만 그렇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괜찮은 것 같다고 추천했다. 그리고 바로 이틀 뒤 공방에서 수업 중에 한 회원분께서 생리 팬티를 쓴 지 얼마 안 됐지만 정말 추천한다고 자신이 쓰고 있는 브랜드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실제 써 본 사람의 후기가 있고 브랜드까지 정해졌으니 곧바로 구매할 법도 한데 생리를 하는 기간 동안 돌려 입을 걸 생각해 구매하려니 초기 비용이 적지 않아 3개사의 생리 팬티를 열심히 비교하던 중이었다. 검색어 ‘생리 팬티’로 여러 블로그의 후기들을 찾다 보니 우연찮게 생리컵을 추천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쓰는 브랜드 소개와 더불어 생리컵 사이즈를 찾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고, 본인도 생리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막상 써보니 너무 좋다는 후기였다.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의 여성들 중에는 생리컵이라는 것을 일회용 생리대 대신 사용한다는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를 보는 것에 약한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나와 상관없는 물건쯤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영화 [박쥐]를 보다가 기절한 이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컵’이라는 것을 몸에 넣고 다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플 것 같고 이물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생리컵에 대한 후기는 그저 호기심에 한번 진지하게 읽어 본 것으로 그쳤고, 다시금 생리 팬티 검색에 열중했다.


내가 고른 생리 팬티는 겉은 면이고 속에 방수가 되는 원단도 자연섬유를 이용한 것이었다. 혈의 양에 따른 사이즈와 모양도 꽤 다양했고, 안쪽은 다 검은색이었지만 겉은 검정이나 회색, 스킨색 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생리를 시작하는 첫째 날이나 둘째 날에 이불에 까지 새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오버나이트형을 포함해 6장의 생리 팬티를 구매했다. 택배 상자에서 꺼낸 생리 팬티는 내가 알고 있던 면 생리대의 두께보다 훨씬 얇았다. 정말 이 정도 만으로 생리혈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처음 생리 팬티를 착용했던 날은 왠지 모르게 불안해서 화장실에 자주 가서 확인을 했지만, 우려와 달리 그리 두껍지도 않은 생리 팬티는 아주 잘 커버를 해주고 있었다. 잠을 잘 때도 생리 팬티를 사용한 이후로는 한 번도 이불에 샌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 커버를 해주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착용할 때의 이물감도 느껴지지 않았고, 일회용 생리대만큼 자주 갈아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생리를 갑자기 시작했는데 집에 생리대가 마침 하나도 없을 때의 당혹스러움 같은 걸 느낄 일도 없었다. 생리 팬티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단 딱 하나의 단점은 모두가 예상하듯 손 빨래, 그거 딱 하나였다. 바로 빨 수 없고 물에 몇 시간 담가놨다 빨아야 했기 때문에 사실 좀 번거로움이 있었다. 게다가 생리 팬티를 담가 둔 물은 빨갛기 때문에. 다른 가족이 보면 다소 놀랄 수 있다. 조금 불편함이 있지만 내가 여자로서 사는 동안 사용한, 내 피가 묻은, 썩지도 않는 일회용 생리대가 언젠가 거대한 쓰레기산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손빨래가 나은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생리팬티 그림


그러니까 다들 생리 팬티 같이 쓰자는 마음에 인스타그램에 생리 팬티 그림을 그리고 피드를 올렸다. 피드 내용에는 생리 팬티 다음에는 생리 컵도 도전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남겼었고, 피드에 올린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진짜로 생리컵을 사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하면 다시 생리 팬티를 쓰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생리컵을 사이즈 별로 2개를 주문했다.



 사실 생리컵을 고르는 가이드에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포궁 길이를 측정해서 포궁 길이에 맞는 생리컵을 고르라고 나와 있었지만 왠지 포궁 길이를 재는 게 민망해서 그냥 하나의 브랜드에서 사이즈별 2가지를 모두 다 사본 것이다. 드디어 생리컵이 도착했다. 몸에 넣고 다니는 그 ‘컵 ‘은 내 생각보다 아주 아주 작고 말랑말랑 했다. 사이즈가 큰 것은 작은 것에 비해서는 조금 더 단단하기는 했다. 컵을 몸에 넣으면 아프거나 이물감이 느껴질까 봐 걱정했던 내 마음은 이제는 이 작은 걸로 과연 다 커버가 될까? 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1년 전에 봤던 생리컵 후기 중에 생리하는 동안 흘리는 피의 양이 생각보다 적다고 한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생리컵을 구매하고 나니 생리하는 날짜가 기다려졌다. 37년 아니 아니 25년 생리 인생 중 처음 있는 일이었다. 포궁 길이를 제대로 재고 주문한 게 아니라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나는 첫 착용부터 제대로 성공을 했고 생리컵의 달콤한 신세계를 알아 버렸다. 생리컵은 질 속에 들어간 순간 이물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불어 하루에 흘리는 피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회용 생리대를 하루에 5~6개씩 사용하던 때에는 이 정도로 피를 흘리다가 내가 쓰러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은 제대로 된 오해였던 것이다. 생리컵은 12시간까지 착용이 가능해서 양이 아주 많은 날만 아니면 생리 중인 것을 잠시 잊을 수 있다. 1년 정도 사용한 결과 생리컵은 거의 완벽하게 커버를 해주었지만 혹시 모르니 기왕 사둔 생리 팬티와 세트로 사용하고 있다. 생리컵 덕분에 생리 팬티를 물에 담가놓고 세탁하지 않아도 되고, 세탁기에 바로 넣고 세탁 가능해서 손빨래를 하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정말이지 생리컵과 생리 팬티의 조합은 생리기간이 훌쩍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최고의 하모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생리 기간이면 진통제도 듣지 않아 배를 부여잡고 병든 닭처럼 아무것도 못하거나, 언제라도 화장실에 뛰어 들어갈 수 있게 화장실 앞에서 엎드려 있어야 했던 심한 생리통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건 생리 팬티만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회용 생리대가 생리통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이제는 그냥 평소보다 컨디션이 조금 떨어지는 정도이지 통증이란 것은 거의 없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생리컵 그림


진짜 내 주변 여자들에게 백번 천 번 추천해주고 싶은 아이템이다.

너무 늦게 알아서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10년은 더 생리를 해야 할 테니 열두 달 곱하기 10년만 해도 120번, 5일 한다고 치면 600일 이상 생리를 해야 한다. 600일 이상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됨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 감사한 일은 600일 동안 하루에 일회용 생리대를 4개만 교체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사용 후 버리게 될 2400개의 일회용 생리대 쓰레기를 줄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25년간 내가 버린 약 6000장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책임은 못 진다 해도, 앞으로에 대해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 생겼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다. 생리컵이야말로 사람에게도 좋고, 지구에게도 좋은 일회용 생리대의 완벽한 대체품이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좋은 걸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다. 예전에는 직구를 해야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3만 원대로 국내 제작 생리컵을 구입할 수 있다. 나도 해외 브랜드 제품을 사용해오다가 조금 더 잘 맞는 컵을 찾고자 알아보다 ‘티읕컵’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되었다. 사용해 본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부드러운 경도와, 커버되는 용량이 크고, 생리컵을 제거할 때의 아픔도 거의 없을 정도라서 첫 사용자가 시도해보기 좋은 제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독이나 보관을 위한 폴더블 컵도 함께 들어 있어서 전자레인지로  간편하게 소독도 할 수 있다. 단돈 3만 원이면 내 몸속 바디 버든도 줄이고, 생리할 때의 찝찝함도 없앨 수 있고, 지구 상에 더 생겨날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자 이제 검색창을 열어 ‘생리컵’을 치거나, ‘생리 팬티’라도 검색해보자. 호랑이처럼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곶감은 달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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