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래서 카페도 엄청 많이 다녔다. 직접 로스팅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편과 공방 창업을 하면서부터 생두를 사서 가정용 로스터기에 직접 원두를 로스팅해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직접 질 좋은 생두를 사다가 로스팅을 해서 내린 커피맛이 좋다 보니 신혼 초에 사용하던 캡슐 커피머신은 잘 사용하지 않게 돼서 처분했다. 이 캡슐 저 캡슐, 이름은 분명 다 다른데 맛은 큰 차이가 없었던 캡슐 커피는, 맛보다도 쓰레기 때문에 사용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포일, 종이 등이 결합된 캡슐에 커피찌꺼기까지 들어가 있는 것이니 이건 누가 봐도 일반 쓰레기인데 수거봉투를 만들어놓고, 리싸이클의 냄새만 풍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2014년 이 캡슐커피의 폐기량이 지구를 10.5바퀴 돌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업체는 캡슐커피가 BPA free 소재라고 주장하지만, 고온, 고압으로 추출되는 과정에 과연 환경호르몬이 검출이 안될 수 있는지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집에서는 또 다른 커피머신을 들이지 않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원두그라인더에 원두를 넣어 갈아준다. 부엌은 이미 커피 향으로 가득해진다. 드립포트에 물을 받아 끓이는 동안 유리로 된 드립서버에 드리퍼를 놓고 커피필터를 얹는다. 물이 끓으면 커피필터를 뜨거운 물을 떨어뜨려 전체적으로 한번 적셔준다. 그리고 잘 갈라진 원두를 드립필터에 담는다. 얇은 물줄기를 이용해 원두 표면을 골고루 적시고, 30초간 뜸을 들인다. 30초 후 원을 그리며 원두에 물줄기를 떨어뜨린다. 보글보글 부풀어 오르는 원두와 드립서버로 떨어지는 갈색 물줄기를 보며 잠시 멍을 때리기도 한다. 직접 로스팅하고 직접 내리는 커피의 맛은 남편이나 나나 커피 전문가가 아님에도 너무도 훌륭해서, 공방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은 나름 커피 맛집이다.
사실 핸드드립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처음에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것 도 아니다. 우리가 집에서 쓰고 있는 드립포트는 15000원이고, 드리퍼는 10000원 정도였는데, 두세 군데 이가 나갔지만 사용에 큰 지장이 없어서 계속 사용하는 중이다. 드립서버도 다양해서 10000원대부터 다소 고가까지 있으니 처음부터 비싼 도구들을 장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요즘엔 핸드드립 하는 방법도 유튜브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어서 핸드드립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텐데, 코로나로 홈카페문화가 유행하고,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독 더 많아진 것 같은 커피 드립백이 사실 조금 신경 쓰인다.
커피드립백은 일단 개별로 포장이 되어 있고, 드립백 부분도 PET소재와, PP소재가 복합적으로 쓰이고, 원두찌꺼기가 발생하니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다. 가차 없이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게다가 보통 핸드드립 커피에서는 한잔에 15g 정도의 원두를 사용하는데 일회용 드립백 커피에는 보통 7~10g의 원두가 들어있어서 사실 하나로는 부족한 느낌이다. 이 말은 1인이 2개의 드립백커피를 소비할 가능성도 많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한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포장 기술이 발달해서 향을 잡아준다 해도, 원두는 로스팅을 했을 때부터 산화가 시작되고, 그라인드를 하고 나면 가차 없는 속도로 산화된다. 향이 날아가는 시간도 더 빨라진다. 그러니 분쇄되어 여과지에 담긴 상태로 포장된 커피는 커피를 내리기 직전에 분쇄한 원두의 향과, 맛과는 비할 수가 없다. 커피드립백 패키지 디자인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디자인을 한 패키지이니 몇 개 사서 가족들이나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나도 캠핑장에 가져가 커피 마실 때 이용해보긴 했지만 그렇게 한 번의 경험을 한 후에는 원래대로 스테인리스 드리퍼를 챙겨간다.
진짜 맛있는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동네 로스터리커피점에 용기를 들고 가서 원두를 사 오자. 요청하면 분쇄된 원두를 받을 수도 있는데 이왕이면 집에서 커피를 내리기 직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핸드밀이나, 전동 그라인더는 3~8만 원대에도 구매 가능하다. 커피는 향이 진한 기호식품이다. 커피의 향은 원두를 갈아낼 때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나는 이미 커피를 향으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쓴맛이 우려날 수 있으니 너무 많이 물을 떨어뜨리지 말고 추출된 커피액에 뜨거운 물을 첨가해서 진한 정도를 조절한다. 나는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 원두를 좋아하는데 정말로 커피에서 과일과 꽃향기가 난다. 삼키고 난 뒤 혀 끝에 남는 달큰한 카라멜 맛도 좋다. 진하게 로스팅된 원두가 있을 때는 물을 적게 내려 오트밀크로 비건카페라떼를 만든다. 최근에 소창으로 된 다회용 드립필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종이필터로 내렸을 때보다 좀 더 진한 고소함이 있어서 라떼를 만들기에도 좋은 상태이고 스테인리스 드리퍼에 비해 미분도 적었다. 종이이긴 해도 분리배출이 안되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스테인리스 드리퍼를 샀는데 미분이 많이 나오고 2겹의 미세망 사이가 잘 세척이 되는지가 의문이라 집에서는 잘 안 쓰고 캠핑 갈 때만 가져가고 있었다. 소창 드리퍼를 알게 된 덕에 작지만 쓰레기 한 가지를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맛도 더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커피캡슐도, 커피드립백도 아기 주먹보다 작아서, 지나치기 쉬운 환경문제 일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런 수요 때문에 너도 나도 이런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으로 무장해 계속해서 또 다른 소비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또한, 아기 주먹만 한 쓰레기도 일 년 치를 모으면 한 포대는 나올 것이다. 일상을 풍요롭게 더해주는 나의 커피 타임이 지구에 또 다른 문제를 남기지 않는다면, 더 맛있는 커피타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