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피자 포장해 오길 정말 잘했지요?"
저녁이 되자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시어머니께서 미리 봐두셨던 레스토랑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긴 줄은 없었지만 바로 뒤에 설치된 야외콘서트 무대에서 공연이 한창 진행 중이라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위해 시부모님께서는 소음 따위는 개의치 않으시는 듯했다. 뭐 저도 신나고 좋습니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시아버지께서 음료를 주문하셨다.
"까바 한병주 세요."
까바가 뭔가 했더니...
"까바가 샴페인이었군요!"
"그래. 하지만 엄밀히 이건 그냥 스페인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샹빠뉴에서 제조된 게 아니니까."
시원한 까바 첫 잔을 기분 좋게 부딪혔다. 친친!
시아버지께서 들뜨신 표정으로 까바를 가장 먼저 외치신 것처럼 시어머니께서도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먼저 외치신 음식이 있었다. 바로 이 감자요리, 파파스 아루가다스 (papas arrugadas).
"이건 꼭 먹어봐야 해. 바닷물에 삶아서 요리하는 감자란다. 껍질에 하얗게 묻은 건 소금이야. 그리고 이 예쁜 색깔의 모호에 찍어먹는 거야. 모호는 그냥 소스라는 뜻이란다."
"요즘에는 바닷물대신 소금물에 삶겠지요?"
"그렇겠지. 그래도 바닷물에 삶으면 더 맛있을 텐데."
"왜요?"
"물고기들의 배설물이 섞여있으니까! 호호"
감자도 해치우고 따끈따끈한 식전빵도 모호에 찍어먹으며 까바를 마셨더니 벌써 배가 불러버렸다. 메인 메뉴도 아직 안 나왔는데 말이다.
"저 어쩌죠... 벌써 배불러요. 아무래도 주문한 피자는 못 먹을 것 같아요."
"걱정 마, 피자는 작은 사이즈니까."
아버님께서는 새우와 오징어 요리를 주문하셨는데 사이즈가 딱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내가 각자 주문한 피자는... 라지였다! 엄니... 피자 작은 거라면서요...
우리가 앉은자리 바로 뒤편에서 진행되고 있는 콘서트는 아주 큰 행사였다. 우리 테이블 바로 옆은 무대의 뒤편이라 방송국 촬영팀도 보이고 스테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도 보였다.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손님들은 음악소리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는 등 흥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시끄럽기는커녕 흥이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며 우리도 같이 웃었다.
식사를 먼저 끝내신 시아버지의 접시 위로 우리는 각자 피자 한 조각씩을 얹어드렸다. 안 드시겠다던 아버님도 결국에는 드셨다.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반밖에 못 먹었네... 어머님의 피자도 반이나 남았다. 아까워라... 둘이 합치면 온전한 하나의 피자가 남은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직원을 불러서 포장해 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흔쾌히 상자에 담아서 갖다주었다.
"너 그거 언제 먹으려고?"
"내일 저녁에요. 그러니 내일은 두 분이서 저녁 드세요."
"너 방에서 혼자 그 식은 피자를 먹겠다고? 그랬다간 내가 너 방에서 못 나오게 가둬버릴 거야."
"저 방에서 안 먹고 테라스에서 먹을 건데요."
"안돼 안돼.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미슈, 얘 좀 말려줘요."
아버님도 그건 안된다고 나에게 고개를 저으셨다. 두 분이 말리시건 말건, 나는 식사를 마친 후 커다란 피자상자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나왔다.
"저는 이 멀쩡한 피자가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걸 용납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우리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를 내며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우리는 떨어지는 폭죽의 잔해를 맞으며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고 아름다운 불꽃들을 구경했다. 주변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우와! 와! 함성도 맘껏 지르면서.
그런데 문제가 있었으니... 불꽃놀이가 끝나자마자 야외공연장에 있던 수많은 관객들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가 걱정이 된 나는 두 분께 비장하게 말씀드렸다.
"제가 앞장설 테니 어머님은 아버님과 함께 제 뒤를 따라오세요. 피자상자를 이렇게 들고 걸으면 사람들이 피해 갈 거예요."
나는 피자 상자를 앞세우고 천천히 걸었고 다행히도 사람들은 알아서 우리를 피해 주었다.
"피자 포장해 오길 정말 잘했지요?"
무사히 인파들을 헤치고 나왔을 때 시부모님께서는 웃으시며 피자상자의 활약을 인정해 주셨다. 그래도 여전히 내일 저녁에 나 혼자 피자를 먹는 건 안된다고 하셨다.
"낮에 봤던 난민소년을 다시 만난다면 주고 싶네요."
아버님께서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어머님은 단호하게 도리도리 하셨다.
"걔는 안돼."
바로 그때!
"저 사람은 어떠니?"
아버님의 말씀에 고개를 돌려보니 길가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내가 환한 얼굴로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어머님께서는 내 피자상자를 들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셨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스페인어로 말씀하셨다.
"돈은 아니지만 혹시 피자도 괜찮나요? 아직 따뜻해요."
그 맹인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더니 바로 두 손을 내밀어 상자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즉시 상자를 열어서 피자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뭉클한 감정이 올라와서 그 사람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다.
"니 피자 줘서 아깝냐?"
이보다 재미있는 시어머니가 또 계실까요.
"그게 아니라 기분이 너무 좋아서요. 저 피자는 훌륭하게 인파를 뚫고 나오는데 활약을 해 주었고 그 직후에는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갔어요."
낮에는 난민소년 때문에 기분이 좀 언짢았었는데 하루의 마무리가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 밤거리를 걸으며 호텔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감동의 여운을 느끼며 계속해서 떠들고 있었다.
"혹시 모르죠. 저 남자가 배가 너무 고프다고 신에게 기도를 드렸는데 바로 그때 우리가 피자를 들고 짠 나타난 걸지도 요!"
"그럼 내가 신이구나!"
아... 네...
밤에 잠이 들 때까지도 이 충만한 기분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