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시장에 있는 작은 한식당에서 바쁜 새 일상에 적응하고 있던 무렵.
노엘과 연말등으로 시장 사람들은 모두 다 들뜬 표정이었다. 남들은 빨리 퇴근하고 싶어 난리인데 나는 퇴근시간이 두려웠다.
오늘은 집에 가서 남편에게 이 얘길 들려줘야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오늘은 남편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현관에서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 아닐까 기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나를 맞아주는 것은 차가운 어둠 속에서 마지못해 걸어 나오던 무스카델뿐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소파에 누워서 밤과 낮을 보냈다.
한때 나는 그런 남편에게 엉덩이에서 뿌리가 자라겠다며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남편은 내 대화를 전혀 받아주지를 않고 있었다.
남편의 우울증은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도 어느 정도 감지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나를 만난 후 세상이 달라졌다며 처음으로 결혼이 하고 싶어 졌고 매일 어제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주어서 고맙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긍정의 힘으로 남편을 어둠 속에서 구제해 내는 중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건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을까. 하지만 남편은 그것만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10년 만에 복귀한 직장에 다시금 적응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외벌이로 나와 무스카델까지 부양해야 하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날마다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했고 남편이 퇴근해 오면 세게 안아주고 지친 발과 종아리를 주물러주며 '넌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어', '오늘도 수고했어.' 등의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은 쉴 때마다 내 무릎을 베고 눕는 것을 좋아했고 귀청소를 해 달라고 하거나 내 무릎 위에서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하지만 남편의 우울증이 심해지고 결국 병가로 2년간 출근을 못할 지경이 왔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행복했다. 고양이들과 시부모님 그리고 블로그 등 내 일상에는 재미난 일들이 가득했다. 시부모님께서는 식물인간처럼 24시간 누워있는 남편을 대신해 내 일상을 흥미로운 일들로 채워주셨다. 시댁에 가서 배꼽이 빠져라 웃고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오면 누워있는 남편에게 종알종알 그날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나에게 있어 남편은 내가 원할 때마다 달려가면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내가 외출을 할 때면 어김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 현관에서 나를 안아주며 배웅해 주던 남편이었다. 남편과 나는 여전히 서로에게 안식처였다.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구체적으로 노후를 계획하던 시절 남편에게서 조금의 활기가 다시금 느껴졌다. 비록 인공수정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고양이들과 남편과 함께 내 소박한 행복은 멈추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결혼 생활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이더라. 서로를 향한 애정에 의심이 없더라도 파탄이 나고야 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남편은 결국 이혼을 고집했다. 본인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큰 듯했다. 피해자였던 나는 오히려 남편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어떻게 내가 너랑 이혼을 하니...
부모님과 심하게 다퉜다고 해서 남이 되지 않는 것처럼 너는 내 가족이란 말이다. 너 없는 내 삶은 상상할 수가 없는데. 이거 봐 내가 쓴 이 책 좀 봐봐. 내가 너랑 얼마나 행복했는지 좀 보라고. 아기가 없어도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잖아.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려봐. 넌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내가 널 용서한다니까...
내가 다 용서하겠다고 말했을 때 남편은 말했다. 용서하지 말라고.
결국 나는 그 추운 겨울 최대한 빠르게 집을 구해서 독립해야만 했다. 그 사이 남편이 마음을 바꾸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때 내 삶이 너무나 원통했고 신을 원망했다.
중2 때부터 자취를 해야 했고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이어오던 30대 중반까지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만 했던 내가 이제야 정착을 하고 가족이 생겨 얼마나 행복했는데 이 행복을 빼앗아가야만 하냐고... 10년간 가족으로 지냈는데 하루아침에 이 타국에서 혈혈단신이 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괴로움을 잊기 위해 명상에 매달렸다.
위빠사나 수련 때 내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냈다. 심장이 쥐어짤 듯이 아파올 때면 나는 의식적으로 이 괴로움은 내가 거절하겠다고 단호히 선언했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괴로운 생각들을 밀어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눈물이 그쳤다.
명상과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어느 책에서 크게 위로를 받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체험을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온갖 종류의 경험과 감정들을 모두 겪어보아야만 윤회의 고리를 끊고,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생에서 나에게 시련을 주는 사람들은 사실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라고 한다. 그들 덕분에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을 체험하며 우리는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비록 남편은 나를 속였고 겪어본 적 없는 큰 상처를 남겼지만 우습게도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냥 그릇이 유난히 작은 그 사람의 최선이었다고 막연히 느낀다.
유년시절부터 유독 내 인생만 순탄치 않은 것 같아 오랜 세월 동안 서러웠는데 이제는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친구 중에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기복 없이 지금까지 순탄하게 살아온 케이스가 있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하곤 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 친구가 참 부러웠는데 이제는 내 인생이 더 좋다.
최근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를 재미있게 읽었다. 싯다르타는 부다의 제자가 되어 타인이 이룬 깨달음을 배우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이 세상에 부딪히고 도박에 빠지고 창녀와 실컷 사랑을 나누는 등의 타락을 경험하고 아버지로서의 무게와 고통까지 몸소 체험한 후 뱃사공이 되어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에 이르렀다.
사는 동안 다양한 체험과 감정을 경험하는 것. 나는 그것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니 서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울적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변에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쁘고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잘 알게 되었다.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잘 될 것이라고 억지로 자기 체면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은 이미 완벽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아침마다 나는 소리 내어 "오늘도 즐거운 하루!"하고 나 자신에게 인사를 하며 벌떡 일어난다. 매일 나를 반겨주는 직장으로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들이 가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도 최선을 다해서 그 친구들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고 싶다.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했던 너도 나처럼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