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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젠더... 애매한 순간들

by 혜연

시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배꼽이 빠져라 웃게 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우리 가게에서는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다. 세 명이서 같이 온 손님들을 SK가 응대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웬만한 일에 당황하지 않는 SK가 주문을 받다 말고 어버버 하고 있었다. 한 명의 주문을 매끄럽게 끝낸 후 다음 손님의 주문을 받기 위해 SK가 말을 건네던 참이었는데-

"무얼 주문하시겠어요 무슈... 마담...?"

나는 무슨 상황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손님을 보았다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간신히 붙들어 잡느라 혀를 깨물어야 했다. 앞에는 긴 머리의 여장 남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보통 프랑스어로 말할 때는 문장 끝에 마담 혹은 무슈(신사)를 붙이는데 무심코 호칭을 붙이려던 내 친구의 회로가 순간적으로 버벅거린 것이다. 이럴 땐 마담인가 무슈인가...

아... 웃으면 안 돼. 내가 지금 웃으면 저 남자는, 아니 그녀는? 감정이 상할 거야...

손님들은 다행히 별 반응이 없었고 SK는 그 후로도 습관적으로 붙이던 무슈나 마담을 말 끝에 붙이지 않으려고 혀를 삼키는 소리를 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겨서 결국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급하게 그 자리를 잠시 떠나야 했다.





우리 가게에 자주 놀러 오는 고등학생 소년이 있다.
아무래도 나와 SK가 그 소년의 베프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학교를 마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몇 시간 동안이나 우리와 수다를 떨다 간다. 고민상담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려줘서 우리는 그 소년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 SK가 늦게까지 일하는 날엔 그녀의 퇴근길을 함께 걷기도 하고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엔 우리 집 앞까지 함께 걷는다. 파리에서 살다가 작년에 낭시로 전학을 왔는데 아직 친구가 많이 없다고 했다. 그 소년의 어머니는 우리랑 동갑인데(!) 우리 가게에 가끔 소년과 함께 와서 음식을 사 먹고 우리에게 아들과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고 거듭 말하곤 한다.

그 소년은 충격적 이게도 본인이 레즈비언이라고 했다.

넌 남자잖아! 어떻게 레즈비언이 될 수 있지? 혼란하다 혼란해.

자신은 남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2년 전 레즈비언 관련 영상을 보다가 바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나도 혼란하다... 그러니까 소년은 외모를 여자처럼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애는 여자와 하는 게 좋다는 거다.


넌 아직 어리니까 뭐든 단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 사춘기 때는 별별 생각이 다드는 법이야. 나도 여중, 여고를 다니고 연극을 하면서 남자역할을 하느라 머리가 항상 짧았었는데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꽤 좋았어. 그때 잠시 혼란을 느낀 적이 있기도 했고. 하지만 졸업하고 나니 남자가 좋더라고. 사춘기 때 판단은 믿을 게 못 돼.

소년은 내 조언을 귓등으로 듣고 있는 듯했지만 내가 여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좋았다는 말을 들을 때만큼은 두 눈이 반짝반짝했다.

아, 소년의 말에 의하면 그 여장남자 손님에게는 마담이라고 불러주는 게 맞다고 한다. 자신 역시 마담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 그르셔요...? 하지만 넌 마담으로 불러주지 않을 거다. 그냥 네 얼굴을 보면 마담 소리가 안 나오는 걸 어쩌겠니.




저녁때 나는 버거씨와 전화통화를 하며 여장남자 손님에 대해 들려주었다. 버거씨는 프랑스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만큼이나 크게 웃었다.

"나라도 당황했을 것 같아. 그런데 그 사람들은 특정 성별로 자신들이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마담인지 무슈인지 아예 안 부르는 게 맞을 거야."

"하지만! 공중화장실을 갈 땐 선택해야 할 거 아니야? 남자 화장실이냐 여자화장실이냐..."

"아,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그건 애매하네. 아마도 여장을 하고 있을 땐 여자화장실이겠지....? 그렇다고 남자화장실을 절대 안 가는 건 또 아닐 것 같고. 그러니까 그때그때 다르게...?"

"나는 프랑스에서 성교육을 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어린 학생들에게 굳이 성소수자에 대해 교육하고 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가르칠 필요가 있나? 분명 존중받아야 할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 나도 그들을 지지하고. 하지만 말이야 어린 시절부터 내 성별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오히려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싶어. 프랑스 학교에서 서류를 작성할 때 성별을 선택하는 항목에 제3의 항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

내 말에 버거씨는 강하게 공감을 했고 꽤 긴 시간 우리는 이 내용으로 토론을 했다.

애매하다. 프랑스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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