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먹는 꿈별 Oct 05. 2021

02. 서평 중 희비쌍곡선(비悲)

비悲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책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셜록 홈스에 푹 빠져 추리소설 작가가 되고 싶었고 동생들을 모아놓고 등골 오싹한 이야기를 즉흥 시전 하곤 했다. 문과 지망의 꿈은 저지되고 이과 선택 후 눈물의 수학 시간을 보냈다. 개천을 개천이라 부르지 못하고 세느강이라 불렀던 나의 여고시절은 학교 앞 즉석 떡볶이처럼 때론 맵고 많이 즉흥적이었다. 수학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 직장 생활 20년간 계산은 필수였고 뒷목은 늘 뻣뻣해 있었다.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어서 ‘글을 써봐, 그러면 책을 줄게’로 요약되는 서평단 활동은 은혜로웠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병이 된다고 심심치 않게 생각 의자에 앉아 반성해야 했다.    

 

비(悲) 1

미션은 현재 진행형. 미션이란, 책이 거할 곳 내어주기다. 


한 번 들어온 책은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다. 이사 후 5단 책꽂이 3개가 추가 입장했지만 바닥에 책이 깔리고, 탑이 되고, 쓰러지는 일은 계속되었다. 비뚤어진 책탑이 옆구리를 찔렀다, 무너지는 책에 맞았다는 가족들의 불평이 속출했다. 

글쓰기 강좌 때 교수님께 손들고 질문했다. 

책을 어떻게 정리하시는지, 중고서점에 파는 것도 선정부터 가능성, 방문일정이나 온라인 개시 등 생각보다 

수고롭다, 선물하는 것도 받는 사람을 잘 고려해야 해서 까다롭다··· 그러자 명쾌한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그냥 버리세요!”

“책을···요?”

“버리세요, 그냥! 아파트에서는 감당 안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자르기처럼 통쾌하지 않나! 그럼에도 해답이 정해졌다면 버리느니 머리 위에라도 이고 있자···『장서의 괴로움』까지는 아니잖아, 목재 건물도 아니고! 아직은 알렉산드로스의 단칼을 휘두르지 못하는 중이다.     


비(悲) 2

일정 조율은 필수, 이번 서평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북카페 서평단, 출판사 서평단을 고루하고 있던 열정 서평기에 열흘간의 미국 방문 일정이 잡혔다. 나름대로 서평 마감날자를 고려해서 서평단 신청을 했다. ‘서평 지각!’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단어이기에 모든 치밀함을 동원해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습니다.’ 여유만만이었다.

그런데 깊은 밤 도착해 들른 경비실에서 침착할 수 없는 현장을 목격한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가져가세요.” 


보관돼 있던 책이 착오가 분명하다 싶을 만큼 많았다. 욕심과 호기심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 숙제의 날들을 보냈고 특히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다섯 권은 각 권당 서평이었기에 정녕 욕심은 패망의 지름길인가 자문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추억, 재발은 금물이다.     




그때 그 서평>


① [서평]쥐포 스타일-네 친구의 흥미진진 성장이야기(20150815)      


100명의 어린이 심사위원들이 직접 읽고 선택하는 스토리킹 수상작은 기다려지고 믿고 보는 책이되었다. 올 여름 미국방문계획이 있었는데 떠나기 하루 전에 받은 책을 들고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내에서 즐겁게 읽으며 10시간 비행의 지루함을 달래주었으니 내게는 또한번 특별한 책이 된 셈이다.     


‘쥐포스타일’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반 친구들 나영재, 장대범, 봉소리, 그리고 주인공 구인내가 그 구성원인데 방귀 사총사를 영어로 줄여서 G4라고 이름붙힌 것이다. 탐정의 꿈을 가진 11살 소년, 그러나 학교가 원하는 인재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교실 안의 천덕꾸러기, 선생님의 골칫거리 구인내의 발상이다. 첫번째 이야기 ‘돌연변이 말굽자석’에서는 과학수업 실험도구인 공업용 자석이 문제를 일으킨다. 민망하게도 방귀를 뀐 아이의 엉덩이에 철썩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말굽자석의 성질을 추측하고 안전하게 포획하기 위한 구인내의 발상에 따라 G4친구들은 힘을 합하게 된다. 방귀를 모으는 헌귀소를 구상하여 설치하는 장면도 기발하고 재미있다. 늘 핀잔을 듣던 구인내가 선생님께 인정을 받게 되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자석은 서로 다른 극끼리 잡아당긴다고 했지? 번개가 치던날, 우리는 서로 다른 극을 가진 자석이 된게 아닐까? N극, S극, A극, B극, Z극….우리는 다양한 극이 되어, 지금 서로를 미치게 잡아당기고 있다.(65쪽)”   

  

두번째 이야기 ‘책무덤’에서는 영재와 영재 엄마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책을 거의 신성시하는 분위기가 ‘책무덤’까지 비약될 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구인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놀 수 있는 남자라고 자부한다. 책 게임들이 등장하는데 의외로 신선했다. 구인내는 이번에도 영재와 엄마의 보이지 않는 상처와 벽을 녹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빛나는 거지’에서도 한 뼘 성장하는 우정을 그린다. ‘방귀 정복자’ 역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한참을 푹 빠져서 책을 읽다보면 우리 아이들의 좌충우돌 성장하는 모습과 반짝이는 우정을 만나게 된다. 재미는 기본이다. 친근한 강경수 작가의 그림도 상상력을 자극하며 빛을 발한다. 책을 덮으며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구인내는 나중에 커서 진짜 탐정이 될 것 같아~~!”라고.     


우리 아이들의 발걸음을 힘껏 응원해본다.    


(쥐포스타일/김지영, 김경수/비룡소)(출판사 도서 제공) 




②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4, 풍자 편 - 감탄의 연속, 풍자 편 읽기

(20150830)


포는 계절에 비유하면 여름에 더 어울리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를 떠올리면 공포소설이 먼저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올 여름 포의 소설들을 최신 원전 완역으로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특별하고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의 네 번째 작품, 풍자편에는 21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문학 비평용어사전에 의하면 단편 소설의 정의를 가장 먼저 내린 사람이 바로 포라고 한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30분에서 두 시간 동안에 읽을 수 있고 모든 세부사항을 통괄하는 특이하거나 단일한 효과에만 국한되어 있는 설화의 일종"이라고 정의하였다. 그가 단편에서 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려움에 떨면서 읽어나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작품 '사기술'을 읽으며 설마, 그 '사기'를 말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사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잘 생각해보면 사기는 섬세함과 흥미, 끈기, 정교함, 대담함, 태연함, 독창성, 건방짐, 소리 없는 웃음이라는 재료가 만들어낸 복합체다.(10쪽)" 그가 내리는 사기의 정의다. 각각의 특징을 다시 부연설명한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사기를 분류하고 대표적인 예를 제시하여 이해를 돕는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한계 없이 무한하고 그저 그의 의지와 선택만이 필요한 것 같다. 두 번째 이야기 '비즈니스 맨'은 '사기술'의 또 다른 버전같다. 주인공 '나'의 열혈 사업 도전기를 읽다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인생이 치졸하고 비루하고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뻔뻔하고 구차하고....익숙한 감정이 떠오른다.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안쓰러우면서도 민망하기도 했던 등장인물들이 교차된다. 포는 후대의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안경'에서도 극도로 나쁜 시력이지만 단호하게 안경 착용을 거부하는 주인공과 그가 급작스럽게 열렬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야기 말미의 반전은 이미 앞에서 복선으로 보여주었음에도 예상치 못했다. 이렇게 당황스러울수가.. 재치있는 문장과 표현들이 주인공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곤경'이었다. 한 편의 적나라한 잔혹동화같았다. 단순하면서도 과장되어 보이는 이야기를 침착하고 태연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그려보이는 내내 섬뜩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목 또한 딱 들어맞는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이게 말이 될까...'라고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지는, 잔인하고 놀랍지만 이야기하고싶은 인간 본성의 한 면을 자극한다.    

 

치밀하고 우아하고 아름답기도 한 문장들에서 지침없이 분석하고 구체화시키는 성실함도 엿보며 그의 역량에 감탄하게 된다. 끝없는 상상의 바다, 그의 이야기 속 세계에서 포는 또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코너스톤)(출판사 도서 제공)




서평 8년 차 시점> 


2014년에 독서지도사 자격 공부를 했기에 단락 개념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문단 분량의 불균형이 계속될까. 과제 포화로 인한 소화불량에 한 표를 주겠다. 비슷한 시기, 폭풍 서평을 제출하던 때의 두 편이다. 몇 군데는 빨간 펜 들고 첨삭하고 싶다. 


주인공인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했던 열렬한 현장의 분위기가 스민 에너지 가득한 동화, 강경수 표 그림도 감상할 수 있었던 『쥐포 스타일』은 함께 비행을 했다. 


마감 압박에 눈에 모터를 달고 싶었던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쫓기는 독서 와중에도 포를 다시 보게 했던 멋진 경험이었다. 이렇게 쓸 수가 있나, 사람이? 나의 다양한 감탄사들이 들리는 듯하다. 

딸들아, 이런 책은 읽어둬야 하느니라. 그는 그냥 천재다.  


기내에서도 서평단 과제는 계속된다!


   

이전 01화 01. 어쩌다 서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