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에발상생 좀 합시다
도무지 여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프로젝트만 전담으로 하다가 쇼핑몰 운영 업무 일부도 같이 맡게 됐다. 사실 아직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고 적응도 덜 됐다. 적응을 유난히 할 수 없게 하는 빌런들이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운영으로 바뀌었다고 일이 대단하게 바뀐 것도 아니고, 일하는 사람들도 엇비슷한데 유형은 꽤나 바뀌었다. 허덕이는 와중에 나름대로 정리해보는 그들의 유형과 대응책.
- 난이도 : ★
- 특징 : 무슨 수단으로, 어떤 내용으로 연락해도 답을 주지 않는다. 어쩌다 연락이 된다면 자기가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만 뽑아간다.
- 대처 방법 : 다면적인 대처가 필요한 유형이다.
1) 바로 윗 상사를 참조로 요청하기
2) 대면해서 언제 무엇을 요청했고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데(받지 못했는데) 그에 대한 답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론화하기
3) 그쪽에서 요청이 들어오는 건은 답이 오기 전에는 모두 받아주지 않기
- 난이도 : ★★
- 특징 : 내 업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당장 처리되지 않으면 천지가 개벽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전화나 메일, 메신저를 폭탄 수준으로 보낸다.
- 대처 방법 : 100이면 100 진짜 급한 건은 없으니 무시하거나 다른 일 먼저 처리해도 무방. 대신 둘러대기 스킬은 조금 필요하다.
- 난이도 : ★★★
- 특징 : 무슨 주제로 어떤 얘기를 해도 주제와는 맞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겨우 돌고 돌아 주제로 돌아오면 다시 논점을 흐리며 회의 시간을 늘리는 능력이 탁월하다.
- 대처 방법 : 딴 길로 샐 때마다 논점을 다시 짚는 게 중요하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경향까지 있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싶을 때는 말을 끊기도 해야 한다.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면 그 부분은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는 제안이나 그 점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
- 난이도 : ★★★☆
- 특징 : 일정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회의 때 정해진 방향을 수긍하는 제스처를 보내기도 한다. 수없는 피드백 요구에도 회신이 오지 않기 때문에 얼핏 무응답 빌런 같아 보이지만 기획이나 정책을 확정한 이후에 갑자기 뭔가를 마구 보내기 시작한다.
- 대처 방법 : 아주 가벼운 요청도 기한이 지나면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제스처를 몇 번은 취해야 한다. 별 거 아닌 건은 사실 들어줄 수도 있지만, 거절의 경험이 있어야 그쪽도 고민이라는 걸 한다. 일정이든, 개발이든 타당한 사례와 그에 맞는 증거를 들이밀고 수용 불가를 외치자.
- 난이도 : ★★★★
- 특징 : 아무것도 공유해주지 않는다. 아무런 협의 없이 일이 진행되고 나중에서야 결과를 받아 들게 된다. (좋은 방향이면 다행이지만 보통의 경우...) 가서 물어봐도 얼버무리거나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정도의 중증 빌런도 있다.
- 대처 방법 : 이 유형은 몇 번 뒤통수를 맞은 후에야 알게 된다. 업무를 진행하며 끊임없이 챙기는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문의하고, 진행상황을 확인하고, 그도 안 된다면 모두 모아놓고 앞에서 말하게 시켜야 한다. 협의되지 않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을 때의 책임소재가 본인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 난이도 : ★★★★☆
- 특징 : 분명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오로지 자신의 시야만 맹신하는 경향이 있어 당당하게 나오면 되려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진 쪽에서 정말 그런가? 하고 착각하게 된다. 잡스럽게 일정을 지연시키고 업무에 혼선을 빚는다. 이해되기 전까지는 자신의 생각만 밀어붙인다.
- 대처 방법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중요한 사항까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시키며 일을 사정없이 꼬아버린다. 몇 시간에 걸친 회의도, 사고를 방지하고자 적은 회의록도, 몇 달에 걸친 눈높이 맞추기도 다 소용없다. 어떻게 똑같은 얘기를 저렇게 이해했나 싶겠지만 어쩔 수 없다. 본인의 기억만을 믿기 때문에 증빙을 철저히 준비하고, 답답하겠지만 몇 번에 걸쳐 설명해야 한다. 특히 몇 번이고 설명해준 부분이 있다면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계속 서로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족스럽게 끝난 회의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과정을 중간중간 계속 체크해야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 난이도 : ★★★★★
- 특징 :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말을 걸면 그건 안돼요가 돌아오는 특성이 있다. 일단 거절하고 보는 타입으로 어떤 상대의 의욕도 꺾을 수 있다.
- 대처 방법 : ...사실 잘 모르겠다... 보통 저 유형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짬이 차 있고 상당히 비협조적인 관계로 짬이 딸리면 대응책이 없다. 더 높은 짬이 찍어 누르는 수밖에... (그래도 안 되는 경우가 태반)
빌런은 한 가지 유형이기도 하지만 복합적으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직급에 상관없이 분포해 있지만 당연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위에 매긴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사실 빡치욱한 마음에 스트레스 풀이용으로 써 본 글이라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어차피 부딪혀봐야 알게 되고, 바리에이션은 다양해서 사람마다 특징도, 대처 방법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힘든 업무를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작은 공감이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나는 유형이 지금은 더 없는데 제발 추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운영 업무 빌런이라고 썼지만 프로젝트에서도 있을 수 있고, IT가 아니더라도 있을 수 있다. 다들 상대방을 조금만 생각하고 상생합시다. 다 같은 회사 다니는데 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