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다
퇴사라는 선택지가 생긴 순간, 인생의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을 할지 끝도 없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나날이었다. 이 안락한 시스템을 박차고 나와서 다시 내가 모든 걸 만들어 가야 하는 세계로 뛰어드는 일. 내게도 최소한의 확신이 필요했고, 스스로 그 믿음을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웠다. 내 삶의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한 나의 기준은 아래와 같았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어느 정도 만들어놓은 후에 도전하는 게 아니었으니, 이미 나에게 기반이 있는 아이템을 고르려고 했다. 기반이 있다는 말은, 일이 아닌데도 좋아서 오랜 시간 꾸준히 해왔다는 말이었다. 좋아하는 것과 일은 별개라고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건 정말 최고다. 일을 하면서 즐겁고, 몰입할 수 있고, 그 자체로 시너지가 나는 경험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10년이나 해 온 일을 내려두고 아예 새로운 분야로 가려면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너무 많이 돈이나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짜이를 오랫동안 혼자 끓여 왔다. 주말 아침에 눈을 뜨면 짜이를 한 잔 끓여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안온한 주말을 보내곤 했다. 몇 년 정도 됐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이사를 2번 다닐 세월 동안 SNS에 남겨둔 짜이의 흔적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내 곁에 오래 있어왔던 거다.
사실 사업의 영역으로 온 이상 잘 해내야만 한다. 절대적인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내게 그보다 중요한 건 마인드셋이었다. 막연히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성공 경험, 증명된 공식, 발전 가능성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있어야 나부터 설득할 수 있었다. 사업을 한다는 건 내가 만들어내는 제품이 남들에게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해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산하는 사람이 스스로와 자신의 제품에 자신이 없으면 티가 난다. 자기 자신도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이 누굴 설득할 수 있을까.
짜이를 끓이면서 우유와 홍차와 설탕, 향신료를 이렇게 저렇게 배합도 해보고, 이미 나와있는 블렌드도 사용해 봤다. 그 과정이 퍽 재밌고 즐거웠다.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면 늘 짜이를 끓여줬다. 그걸 먹고 맛있어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의 반응으로 조금 자신도 있었다. (이 글을 부디 인도 다녀와서 이불킥하면서 발행 취소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는데, 짜이 전문점이 없다. 서울에 사는 동안은 짜이 전문점이 꽤나 많았어서 그 허전함을 몰랐다. 짜이 붐은 올 텐데, 짜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산에도 분명히 있을 텐데. 찾아보니 부산에서 짜이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가 한 군데 있었는데 오래전에 폐업하고 없어진 것 같았다. 짜이 가게를 기다린다는 말은 너무 수동적이다. 없으면 내가 만든다. 짜이 붐은 반드시 온다.
사실 뭐 지나다니면서 짜이 좋아하시냐, 짜이 가게가 생기면 드실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고 다닌 건 아니다. 사업을 이렇게 감으로 시작하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이번만큼은 내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 이만큼 좋아하는 걸 해서 망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짜이 가게가 없어서 차려봤다가 망했다? 오히려 좋아. 여기서 결정이 났다.
나 짜이 해봐도 진짜 후회 없겠구나.
그래서 내 커리어의 넥스트 스텝은 짜이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인도 한 번 안 가보고 짜이 가게를 내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도가 짜이의 본고장이니까 최대한 많은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짜이를 마셔보고 곁들임을 연구하려고 한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 보면 내가 어떤 짜이를 원하는지 조금 더 뾰족한 수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현지의 맛을 부산에서 제대로 끓여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