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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May 03. 2021

타협을 모르는 기획자

절대 물러서지 말아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기획자의 필수 덕목은 소통, 그에 따른 능력치는 융통성이다. 기획자는 모든 업무의 초석을 닦는다. 기획이 잘못된 일은 뒤에서 아무리 잘해봐야 소용이 없다. 이미 그른 일을 억지로 붙들고 있을 뿐. 예전에 타협을 모르는 기획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잠깐 언급했던 적이 있다. 협업의 측면에서 대부분은 그렇지만 절대 타협을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타협을 몰라야 할 때

고객(End-User)의 사용성에 연관된 부분

기획적으로 반드시 맞다는 확신


간단하게 말해, 위 2가지의 경우에 기획자는 절대 타협해서는 안된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나가는 개선점 협의가 아니고서는 물러날 수 없는 지점이다.


기획 의도가 부딪히는 지점은 의외로 내부에서 더 많이 일어난다. 다들 자기의 시야에서만 업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저렇게 되면 개발 공수가 늘 텐데, 일하기 귀찮아지는데. 처음에는 휘둘리기 쉽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일하는 사람들은 고객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불편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 방향을 받아들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은 결과적으로 무조건 틀리다. 고객의 입장에서 내부 사정은 알 바 아니다. 평가는 냉철하고, 한 번 외면받은 서비스가 다시 인정받는 일은 신규 서비스를 세상에 알리는 일보다 훨씬 힘들다. 내부의 불만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서야(사실 불가피하다 해도) 고객의 사용성을 저해한다면 무시해야 한다. 전혀 타협하지 않고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본인들도 사실은 다 알고 있다. 그게 맞다는 걸. 잠시 편하자고 돌아가는 서비스에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망해서 서비스 종료하는 거지 뭐



기획자는 반드시 이 기획만이 맞다는 생각으로 기획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의 기획자들은 항상 내가 보지 못하는 블랙박스를 염두한다. 상대적으로 결함이 없는 기획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뿐, 완벽한 기획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기획적으로 반드시 맞다는 확신이 생기는 경우에는 기획자가 연관된 범위의 업무를 충분히 알고 있고, 대응 경험도 있기 때문일 거다. 기획자에게 그 정도 확신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확신을 믿어보는 일도 중요하다. 확신을 가진 일이면 한 번 끝까지 주장을 해보자는 거다. 내가 그 정도 얘기하는데도 충분한 근거가 있었을 테니까, 그 근거를 믿고.





타협을 모르면 안 될 때

협업하는 단계에서 다른 직무를 존중하는 마음



하지만 대부분, 기획자의 일은 타협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획이 모든 일의 근간이기는 하나 구현은 동료들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인사이트와 전문성을 믿고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충돌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마찰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 우리의 감정에도 한계가 있다. 날마다 유관 부서나, 개발자나, 디자이너나, 외주 업체와 부딪히기만 하면 기획자가 어떻게 살겠는가. 안 그래도 가뜩이나 전 영역에 걸쳐 들들 볶여야 하는 직무인데.


그래서 기획자가 다른 직무를 어느 정도 알아야 업무를 하기가 수월한 거다. 우리 서비스의 디자인 정책과 위배되지는 않을지, 이 기능은 퍼블리싱에서 처리가 되는 건지, 개발단에서 해결해야 하는 건지, 우리 DB는 이 구조로 짜여 있지 않은데 이런 정보를 추가하거나 삭제했을 때 기존 데이터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 다른 범위를 아는 만큼 보인다.


기획은 일단 하고 보는 업무가 아니다.(때로 일단 지르고 봐야 할 때도 있지만) 하나의 요소를 만들 때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범위를 검토하고서야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작품에 가깝다. 타협을 몰라야 하는 사례가 아니고서는, 이 기획이 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른 직무 담당자의 말에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좋은 서비스가 나온다. 기획 리뷰는 어렵고, 길고, 피곤한 자리지만 그래서 꼭 필요하다. 누구도 혼자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는 없다.






AI가 없앨 직무 설문조사마다 비율을 살펴보면 의외로 기획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됐다. 다소 의아한 결과였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은 사고가 끼어들 수 없는 분야에 한정된다고 생각한다. 딥러닝에도 아직은 한계가 있고, 기획은 생각보다 다양한 요소를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업무적으로 전혀 엮여있지 않을 것 같은 파트부터 사내 분위기, 의사결정권자의 성향, 사회의 흐름 같은 것들도. AI는 아무래도 한 분야에 맞게 설정되어 있을 텐데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서 방향을 설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정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직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질 것이다. 기획자는 시야를 넓히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때로는 굽히고, 때로는 절대 굽히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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