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단기 계약직, 7년을 만난 남자 친구와의 이별,
뇌경색으로 갑자기 반신마비가 된 엄마.
2017년 4월.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살았나 하고 느낄 정도로 힘든 일은 동시에 찾아왔다. 나는 억울했다. 특히 엄마의 병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남의 얘기였지 내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하루아침에 아플 수 있듯이 하루아침에 내가 아니면 사랑하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답을 찾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음을 이해해야 하는지.
‘4일 뒤에 죽는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나온 질문이었다.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질문에 대답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나의 답은 “하루는 가족들과 하루는 친구들과, 또 하루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낸 뒤 마지막 하루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야지.”였다.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기준으로 하니 삶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죽을 때 후회할 일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봤을 때 “일을 더 했어야지, 공부를 더 했어야지, 돈을 더 벌었어야지.” 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감사함을 전하기로 했다. 고마운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과 감사함을 담은 손편지를 써서 줬다. 친구들에게는 오히려 쉬운데 가족들에게는 마음을 전하는 게 더 어려웠다. 무뚝뚝한 둘째 딸이라 부모님께 어릴 때 학교에서 써본 것 이외에는 편지를 쓴 적도 없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카드를 쓰기로 했다. 키워주셔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어려웠지만 글로라도 마음을 전해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카드를 써서 엄마, 아빠한테 주고서 부끄러워서 집 밖을 나갔다. 그래도 주고 나니 뿌듯하고 좋았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카드를 써서 줬다. 이제까지 잘 살아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하고 나니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정말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죽음에서부터 생각하니 오히려 삶이 단순해졌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알게 됐고, 삶을 조금 더 가볍게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 행복의 기준은 '오늘' 이 됐다. 계획 세우는 게 취미일 정도로 실천보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던 나는 이제 무계획이 인생계획이다. 여전히 바라는 소망들도 있고, 꿈꾸는 삶도 있다. 하지만 간절하지는 않다.
“되면 좋지만 아님 말고.”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 삶의 원칙은 ‘행복하게 살자’였지만 그 정의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면서 살았다. 좋아하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고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스펙을 쌓고 취업준비를 하고 취업 후에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다. 하지만 그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누가 정한 걸까? 사실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은 보너스 게임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태어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다 했기 때문에
나머지 보너스 게임 동안 신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십니다. 행복하세요.”
故신해철이 생전 마지막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해야 할 것을 다 했으니 남은 인생은 게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면 된다. 각자 자신만의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나만의 행복을 계속 찾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마음껏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