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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아 Aug 10. 2020

오늘의 라떼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늙어서 잘 살려고 오늘 먹고 싶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왜 참아야 하죠?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면 뭘 하고 싶으세요? 여러분의 아름다운 젊음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미래 때문에 혹사시키지 마세요.”     


 가수 요조가 청춘페스티벌에서 했던 강연 중 일부다. 몇 년 전 동생이 천공기 전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 가슴에 꽂혔다. 처음 이 영상을 본 건 백수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3년 반 동안 근무했던 회사를 그만뒀다.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이었지만 정년이 보장된 회사였다. 취업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내 발로 나왔다.     


 일이 덜 바쁠 때도 야근했고, 많이 바쁠 때는 밤을 새우면서 일했다. 새벽 4시에 퇴근하던 날,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의 통화가 들려왔다.

“이렇게 밤새 일하면서 돈이라도 많이 벌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그 순간 그만둬야 하나 고민됐다. 그러나 집에 가서 뻗은 후 다시 출근을 하니 고민할 시간도 사라졌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하다 몸이 나에게 대신 말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부정출혈에 머리가 빠지고 몸이 점점 안 좋아졌다. 그래도 쉽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에 계셨다. 가족들과 한 번 찾아뵌 것이 전부였다. 내가 사는 곳과 너무 먼 지방에 계셔서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 대신 외할머니가 나를 키워주셨다고 착각했었다. 그럴 정도로 나는 외할머니와 애틋했고 추억이 많았다. 그래서 첫 해외여행 때도 외할머니 선물만은 빠트리지 않고 챙겼었다. 그래서 항상 외할머니를 찾아봬야 한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고, 결국 나는 할머니를 뵙지 못하고 보내드려야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이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내 마음이 말했다. 책임감이라는 족쇄로 일을 최우선으로 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리고 다시는 이렇게 일개미로만 살지 않기로 했다.     


 요조의 말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내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고생한 나를 위해 백수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렸다. 평일 낮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호사를 누렸다. 직장인들은 생각하기 힘든 월요일에 제주도 여행을 가고, 휴가 신경 안 쓰고 스페인 여행도 갔다.      


 일개미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베짱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다시 조급해졌다. 돈은 떨어져 갔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베짱이 같은 베짱은 없었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시 일개미가 됐다.

    

 하지만 예전의 일개미가 아닌 베짱이 탈을 쓴 일개미다. 더 이상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애쓰면서 살지 않는다. 야근을 하지도 않고, 퇴근 후 여가 생활을 즐긴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여전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전보다 행복한 날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오늘도 아이스 라떼를 미루지 않고 나에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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