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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Nov 08.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19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19 룸메이트 J 마지막화




놀랍게도 J의 첫마디는 사과가 아니었다. 신호등에 불이 켜지고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J는 나를 보더니 피식하고 지나갔다. 나는 횡단보도 중간에서 적잖은 충격에 빠져있을 때, J는 이미 저 멀리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른 뛰어가 그를 잡았다. J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어도 옛정이 남아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지만, J는 여전히 적반하장이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J는 내가 어린 나이에 타지에 유학 와 처음 의지했던 사람이었고 그만큼 실망감도 컸기에 필요 이상으로 J에게 쏘아붙였다. 


J는 한국말이 서툴기도 했고 나도 영어공부할 겸 평소에는 그와 영어로 대화했다. 일상 대화를 하는 데엔 영어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화가 나니 기본적인 의사표현도 영어로 못하게 되자, 나는 무턱대고 한국어로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J의 태도가 변했다. 아무래도 한인타운 한가운데서 큰소리가 나니 주변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였나 보다. 평소에도 J는 한인타운에서 오랫동안 살아 주변인도 꽤 되는 것처럼 보였다. J는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오해를 풀자고 했다.




J는 간단한 음식을 시키고 나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나는 우선 핸드폰에 녹음기를 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녹음이 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주는 바람이었다. J는 모든 상황을 꼼꼼히 설명하려 했으나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나를 이용해 공짜로 인터넷을 사용하려 했을 뿐이다. J는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아니면 내가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거듭되는 사과에 마음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J와 엮이기 싫었으므로 지금까지의 피해금액만 보상받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J는 눈물을 보이며 알았다고 했다. J는 주문한 음식을 손 한번 대지 않고 우리는 음식점을 나섰다.


근처 ATM으로 갔다. J는 한 번에 줄 수 있는 돈이 없다며 반만 준다고 했다.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몇 번이고 부탁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며칠인지 몇 주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 나는 J에게 연락했다. 그의 마지막 답장은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반성하는 모습 또한 전혀 없었다. 고작 몇 달치 인터넷 비용이니 애초에 큰 금액도 아니었지만, 또 한 번 크게 상처 받은 나는 이 모든 일을 잊기로 홀로 결심했다. 


그러고 머지않아 나는 시내로 이사 오게 되면서 옛 동네에 갈 일이 현저히 적어졌고, 상처만 남은 내 기억도 점점 흘러가는 듯했다.





그 이후로 몇 차례 J를 마주친 적이 있다. 나는 웃으며 인사한다. J는 당황하지만 내 인사를 받아준다. 그렇게 매번 J와 나는 모든 게 좋았던 척 웃으며 서로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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