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조각 글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 현재]
5분 대기조는 군대에서 나온 용어로, 긴급상황에 투입되는 초동대응부대를 가리킨다. 보통 대기하다가 5분 이내로 출동한다고 해서 5분 대기조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주에 사는 희옥이 그녀의 본가이자 우리 집 근처인 수원에 올라왔다. 평소에 제주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엄마가 옆 도시에 있으니 자주 가게 된다.
이번 주말도 친정에 와서 -엄마가 있는 곳이 곧 친정- 희옥이 낮잠을 자는 사이 그녀의 핸드폰을 대신 맡아 놓고 있던 2시간 동안 든 생각.
희옥이 주말엔 무조건 핸드폰을 못쓰게 해야겠다는 것. 아니 전화가 왜 이렇게 많이 오는 것인가!
우선, 희옥은 상담 전화를 받아야’만’ 하는 사업을 한다.
그녀가 하는 사업 자체가 아웃소싱, 즉 고객의 전화를 받고, 알맞은 사람을 연결해주려고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평일엔 정말 전화가 많이 온다.
사업을 시작할 때 사업용 핸드폰 번호를 따로 쓰시겠냐고 물어봤었는데, 그냥 개인 휴대폰 번호와 동일하게 쓰고자 하셨다.
그 마음도 이해한다. 가뜩이나 피곤한 인생, 핸드폰이 두 개면 신경 써야 할 폰이 두 개,
어딜 가나 핸드폰을 두 개 들고 다녀야 하니 그게 더 성가셨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 사업용 핸드폰을 개통해드렸어야 했다.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한다.
오늘은 일요일, 사업 관련 전화보다는 엄마를 사랑하는 지인, 친족들의 전화가 더 많은 날이다.
2시간 동안 문자 2통, 전화 1통, 카톡이 몇 개 왔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사업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이모들에게도 인기 최고인 ‘인싸’ 인 것이다.
온화하고 잘 들어주는 성격의 희옥은 이런저런 한탄도 잘 들어주므로, 전화로
온갖 이야기보따리를 듣는다.
주말에도 전화기를 붙들고 별일도 아닌 일 - 왜 미자가 나에게 그렇게 대했는지 좀 찜찜해, 그냥 원래 약간 퉁명스러워서 그런 거겠지? 내가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물어보기는 애매해. 그런데 자기도 밤 살 거지? 그때 먹었던 거 통통하니 맛있더라고, 3킬로에 얼마였더라? 어휴, 쌀도 사야 되는데, 요즘은 추워서 나가기가 싫어, 아참, 자기 요즘 건강은 어때? 좋은 음식 먹어야 하는데, 약은 계속 먹고 있고?-로 엄마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그녀의 친구들이 조금쯤 얄미운 게 사실이다.
게다가 희옥은 몇 년 전부터 치매를 걱정하며 치매보험을 들까 말까 고민하지 않던가!
치매 예방은 음식과 스트레스 관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 뇌에 적절한 휴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핸드폰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서 의식적으로 깊은 사색에 잠길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을
희옥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종이에 직접 펜으로 엄마에게 적어준 원칙들.
1번. 주말엔 핸드폰을 진동으로 한다.
2번. 일요일엔 사업전화가 와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친족과 친구 전화만 받는다.
3번. 핸드폰의 5분 대기조가 되지 말자!
그녀는 과연 내 말을 들을까.
어렸을 때부터 잔소리 하나 하지 않고 길러놨더니, 이렇게 다 크고 나서 희옥에게 잔소리를 할 줄이야 알았을까.
존경하는 어머니이자 현명한 그녀에게 치매보험만은 들고 싶지 않은 딸의 마음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