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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Jul 04. 2020

희옥의 이야기 #대학을 못 간 여자


희옥은 공부를 잘했다. 17 소녀 시절,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학교를  만큼 공부에 열정이 있었다.  반에 60여 명 아이들  3,4등을 했다고 한다. 공부 욕심이 있었던 희옥은 대학을  가고 싶었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해에 경찰로 근무하시던 외할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셨다.  경찰의 비리가 심했던 당시에 경찰생활 2,3년이면  한 채를 산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는데, 나의 할아버지-희옥의 아버지는  강직하고 깨끗해서 털어서 먼지 한 톨 나지 않는 청렴한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셨다고.

손에  퇴직금으로는 이층 연립주택의 1층에 작은 구멍가게를 열면 끝나는 돈이었다.

하필 고등학교를 졸업할 해에 맏언니는 시집가고, 셋째는 고등학교를 올라가야 하고, 막내는 중학교를 올라가야 하는 타이밍이었어.  엄마는  대학 가고 싶다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지.  학기만 등록금을 대주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대겠다고, 한 번만 해달라고 말했었는데.. 뒤늦게 알았어. 손아래 동생에게 엄마가 “ 고등학교 이번에 가지 말고  1 꿇을래?”라고 했다는 ... 그 애는  “언니, 그렇게 대학 가고 싶어? 그럼 내가 1 꿇을래.”라고 했고, 열아홉의 나는 그게 그렇게 충격이었다. 어린 동생이 고등학교를 못 갈 정도로 우리 집이 가난하다면, 나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그렇게 대학을 포기했던 희옥. 사실 희옥의 집안이 내가 보기에 그렇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세면대와 좌변기는커녕 널빤지로  ‘뒷간 마당에  집이 흔했던 시절, 희옥은 어릴 적부터 일본식 현대 가옥에 살았다. 서양식 화장실엔 좌변기가 있었고, 마당에는 암탉과 돼지를 키웠으며, 다달이 들어오는 할아버지의 월급봉투를 모아 착실한 할머니가 작은 연립주택  채를   있었으니까. 그러나 맏딸을 시집보내고 동시에 중고등학교를 들어가는 딸들과 함께 4년제 사립대에 둘째 딸을 보내기엔 부담이었나 보다.

마찬가지로 똑똑했던 희옥의 오빠는 서울대 떨어져서 고려대를 갔다. 공부만 했지 순진하고 막연했던 희옥은 유명한 대학밖에 몰랐고, 최소 이화여대나 숙명여대 정도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방 국립대나 보건대를 갔으면 4 내내 장학금을 받을  있었던 성적이었는데 불구하고 대학을 포기한 것이다. 그렇게 인생  커다란 절망을 맛본 그녀는 방황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9월에 집을 나가, 부잣집 동갑내기 학생 집에 입주가정교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한 데다가 가르치는   잘했던 희옥의 다음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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