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moon Mar 31. 2024

이민은 우연인가 운명인가?

영화 Past Lives를 보고

 이민은 단순히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사와는 다르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해도 매일 마주하게 되는 여러 장벽들에 부딪치다 보면 심신의 피로도는 극에 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민생활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왜 이민을 결심하게 됐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모든 건 사소한 선택에서 시작됐다. 퇴사를 하고 남미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 캐나다에 사는 친구네를 들르려고 했다. 그런데 캐나다 경유 비행기 티켓이 일정과 맞지 않아 포기하고 유럽을 경유해서 가는 걸로 예약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항공권을 조회해 보니 캐나다 경유가 가능했고 바로 항공권을 다시 예약했다. 그렇게 남미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길에 2주간 머물렀던 캐나다에 대한 느낌이 좋았다. 당시 밴쿠버의 겨울 답지 않게 비가 오지 않고 맑은 날씨에 따뜻하기까지 했다. 약간 쌀쌀하기는 했지만 야외에서 바비큐를 해 먹었을 정도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 동안 캐나다는 잊고 지냈다. 그러면서 제주도로 이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사전 답사 겸 여행도 다녀왔다. 그러던 중 오래전에 예악 했던 이민 박람회를 바람이나 쐬러 간다는 기분으로 갔다. 이민 박람회를 가면서도 이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러 부스를 둘러보면서 캐나다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한번 알아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다음 해에 밴쿠버로 이사를 했다. 영주권을 받고 떠난 게 아니라 아이의 유학 비자를 받아서 무작정 온 것이었다. 그때 딸이 12살이었다. 딸아이는 캐나다에 가서 산다는 것,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해했다. 하지만 매년 큰 금액의 학비와 렌트비를 포함한 생활비는 많지 않은 통장 잔고의 바닥이 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려 할 때,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가 생겼고 다행히 영주권을 받고 제대로 정착하게 된 순간이 왔다. 이민이나 유학 등 장기간 해외에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비자나 영주권 등의 신분이 필요한데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노심초사했던 긴 시간들을 뒤로하고 비로소 이민 생활이 시작됐다는 안도감. 영주권을 받았다는 기쁨은 현실적인 문제를 다시 마주하며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영주권만 받으면 뭐든 다 될 것 같았는데. 산 넘어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른들의 문제와는 별도로 아이는 캐나다 생활에 빨리 적응했다. 흔한 얘기로 애들 걱정보다는 부모들 자신 걱정이나 하라는 얘기는 틀리지 않았다. 영화 'Past Lives' 중 막 이민을 가서 학교에 간 여자 아이가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바라보면 혼자 서 있는 장면이 잠깐 나왔다. 우리 아이도 저런 시간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실제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아이는 매일 친구를 새로 사귀었다고 얘기했다. 하교 시간에 라이드를 가서 기다리면서 보면 다른 아이들과 항상 떠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적응을 못할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그쳤다. 아이는 빠르게 캐나다 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영화 "Past Lives'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서, 여자 주인공이 이민 오기 전 초등학교에서 좋아했던 남사친을 24년 만에 실제로 뉴욕에서 재회하고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얘기를 한다. 'He's so Korean. He's Korean-Korean.' 당연한 얘기였다. 태어나서 쭉 한국에서 살아온 남자는 말 그대로 완전 한국인이다. 반면 여자는 Korean-American, Korean-Canadian이 되어 있다. 아니 그냥 'so American'이나 'so Canadian'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와이프와 난 죽을 때까지 절대로 Korean의 정체성을 잃을 수 없을 것이다.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한국인의 정서를 잃고 싶지도 않다. 현실은 캐나다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마인드는 한국에 가깝다. 반면 아이는 반반인가 싶다가도 어떨 때는 '얘는 캐나다 사람이네'하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나마 12살까지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다. 가끔 한자어나 어려운 단어는 잘 몰라도 한국어 소통에 문제는 없으니.


 세상에 모든 게 다 좋은 조건은 없다.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거나, 때로는 하나를 얻고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 이민이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다. 다만 어린 나이일수록 다른 문화나 언어를 받아들이고 적응할 가능성이 커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이민을 한다는 건 어쩌면 도박에 가깝다. 물론 개인의 경제적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건 당연하다. 다른 사람이 힘들었다고 아니면 쉬웠다고 해서 나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이민을 생각한다면 나처럼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사전에 준비를 좀 철저히 하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먼저 준비할 것은 '영어'다. 영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할 얘기가 너무 많다.


작가의 이전글 어떻게 살고 싶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