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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moon Apr 15. 2024

언제쯤 영어가 편해질까?

밥 한번 먹기 힘들다.

 생각한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표현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집 밖으로 나가면 영어를 해야 한다. 다니는 직장은 한국어 한마디 들어볼 수 없는 환경이다. 이러면 당연히 영어가 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일상적인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 쇼핑을 하거나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서 주문하는 정도는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업무 관련 내용이나 일상적인 대화 또한 큰 무리가 없다. 문제는 내 생각과 느낌을 좀 더 정확하고 쉽게 영어로 말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로 인한 답답함은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거였다.


 'Hi, How can I help you?'  'Are you ready to order?'

'Can I get ~?'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문할 때 늘 쓰는 말이다. 이민 초창기에는 쉬운 주문임에도 가끔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어서 다시 얘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주로 카페에서는 상대가 못 알아듣고, 식당은 상대방은 잘 알아듣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게 문제였다. 쉬운 단어와 표현임에도 상대방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어보는 경우 순간적으로 '내 발음이 틀렸나?'  '문법이나 단어가 틀렸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도 못 알아들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마쳤다 싶으면 다시 속사포처럼 빠르게 이어지는 질문들. 말하기 문제에 이어지는 듣기 평가 문제들. 어떻게 조리해 줄까? 사이드는 A, B, C, D가 있는데 어떤 걸로?  그냥 알아서 가져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꼬치꼬치 묻는다. 드디어 서버가 주문한 내용을 확인해 주고 메뉴판을 들고 시야에서 사라지면 '휴우~'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밥 한번 먹기 힘들다.


 우선 발음의 문제.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퀘벡주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영어를 주로 사용한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비중이 높고 전 세계에서 매년 많은 이민자들이 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주로 들었던 미국식, 영국식 영어 이외에 각 나라별 영어가 섞여서 사용된다. 가장 흔하게 인도, 필리핀, 중국식 영어를 듣다 보면 '지금 영어 하는 거 맞아?'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국식 영어는 그나마 익숙해서인지 잘 들린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native English speaker를 제외한 이민자들의 발음은 천차만별이다. 그럼 다른 나라 이민자들의 발음도 못 알아들을까? 내가 듣기에는 나 보다 발음도 더 부정확하고 단어 사용도 잘못된 것 같은데 상대방이 용케도 다 알아듣고 응대를 한다. 동양인이라고 차별을 하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들은 일단 큰 목소리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맞던 틀리던 자신 있게 말한다.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다시 얘기하고, 그래도 모르면 다른 단어를 쓰거나 손짓발짓 얼굴 표정까지 동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내 말을 왜 못 알아듣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발음이 틀려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내 경우는 대부분은 목소리 자체가 너무 낮고 조용조용하게 말을 하는 게 문제였다. 발음이 틀렸다기보다는 실제로 잘 안 들렸을 가능성도 있는 거였다. 틀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잠재적 불안감이 자신감 없는 작은 목소리에 배어 나오고 있었다. '틀려도 괜찮다. 난 이민자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이런 마음으로 말을 해야 한다. 밴쿠버에 사전 답사를 왔을 때 A&W에 들러서 햄버거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음료로 Root beer를 주문했는데 김이 다 빠진 걸 알아채고 카운터로 무작정 갔다. '탄산음료에 김이 빠졌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할지는 몰랐지만, '음료수가 시원하지 않다.' '음료수 안에 bubble을 볼 수가 없다'는 둥 이렇게 저렇게 한참을 얘기했다. 그제야 종업원이 알겠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Flat' 탄산 음료수에 김이 빠졌을 때 쓰는 표현이다. 평평하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다는 뜻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 표현은 평생 잊지 않을 것 같다. 결국은 탄산이 있는 Root beer가 없어서 다른 음료를 받아 들고 왔는데 그것 또한 'Flat' 했다. 원하는 탄산을 얻지는 못했지만 영어 표현 한 가지와 자신감은 얻을 수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무모할 수 있지만 내가 공부해서 아는 표현이나 단어라면 자신감을 가지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 한다. 모르더라도 상황을 피하기보단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말을 해봐야 한다.


 두 번째는 듣기의 문제. 앞서 말한 식당에서 주문할 때 메뉴판을 자세히 보면 해당 메뉴별 추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 대부분 설명이 쓰여 있다. 그래서 메뉴판을 좀 자세히 본다면 서버가 어떤 걸 물어볼지 사전에 알고 미리 정해놓으면 당황하지 않고 주문을 할 수 있다. 간혹 메뉴판에 없는 선택사항이 있는 경우에도 어떤 게 있는지 물어보고 정하면 된다. 여러 번 가서 주문하다 보면 식당마다 거의 비슷한 패턴이니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어떤 식당을 갈지 정할 때 평점이나 메뉴 등을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고르기에 좀 더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변수는 있다. 내가 생각하는 범주 밖에 있는 말을 불쑥 물어볼 경우다. 방심하는 틈에 허를 찔린 느낌이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겠지?' 하고 대비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범위에서 시험문제가 하나 나온 것 같은. 이럴 때에도 역시 당황하지 말고 '주위가 시끄러워서 못 들었다'는 생각과 표정으로 다시 물어봐야 한다. 그래도 안 들리면 천천히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너흰 내가 영어 하는 만큼 한국어 못 하잖아'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워 말고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듣기 실력도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처음 캐나다 와서 외식 한번 해 보겠다고 나가서 겪었던 일들과 가장 기본적인 영어 입문 과정 정도의 얘기였다. 입문과정은 주로 내가 주문하는, 손님인 경우였다. 아쉬운 건 주문받는 쪽이니 내가 손해 볼 건 딱히 없다. 이런 경우 상대방은 어떻게든 알아들으려고 노력한다. 간혹 가다 못 알아듣는 척하고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절하다. 이 정도도 못하면서 무슨 이민을 갔냐고 하실 수도 있다. 학창 시절 영어 공부를 꾸준히 했고 영어회화도 일정 수준은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지만 '책'으로 보던 영어와 실전 영어는 다르다. 요즘은 전화영어, 인터넷영어, 유튜브, ChatGPT 등 영어 및 다른 외국어 배우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다. 영어권 이민을 생각한다면 각종 영어시험을 위한 공부도 중요하겠지만 실생활에서 쓰는 표현을 익히고 직접 입으로 말하고 듣는 연습을 많이 하시길 바란다.


'음료는 어떤 걸로? 물은 탄산수, 일반 물, 얼음물? 빵은 어떤 걸로? 계란은 어떻게 요리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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