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비움과 다가가려는 마음

by 문수인


무기력에 잠식되던 어느 날, 불쑥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순간, 진실의 반대말이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던 이어령 선생님의 말이 마치 내 안에서 메아리치듯 울렸다.

부지런함을 망각했고, 해야 할 일은 어느새 쌓여 있었다. 마음을 돌보는 일도 미뤄진 채 잊혀졌고, 그렇게 나는 하루에도 수차례 길을 잃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감정이 나를 뒤덮거나 삼키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채움보다 비움이 왜 더 필요한 것인지 온몸으로 체득하며 지금까지 '비움'과 '채움'을 겉핥기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음의 공간을 주기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어떠한 형태로든 남았다.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가기도 하고, 서늘한 행동을 하기도 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시간에 빚진 채 무기력함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이전에 읽었을 때 눈여겨보지 않았던 문장에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어쩌면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던 진실이었던 것 같다. 나는 무슨 이유로 진실 앞에서 머뭇거렸던 걸까. 나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은 맞닿을 수 없는 무력함과 안타까움이 나를 붙들고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는 자주 나 자신과 겹쳐서 해석하곤 한다. 나를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사람도 나와 같길 바라는 마음― 그 두 감정은 얽히고설켜 때론 이기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건 결국 깊고 오래된 쓸쓸함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마음을 투영한다는 건, 내 감정을 타인의 몸에 새기는 일이다. 그 투영을 말과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우리는 종종 낯설고 불편한 감정에 부딪힌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이제는 조금 멀찍이 서서, 타인을 타인으로 바라보려 한다. 타자의 절대성을 인정하고도 다가가려는 것은 그저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마음의 힘과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문득 묻게 된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가닿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각자가 겪은 아픔의 경험이 있기에 측은지심이 생기는 거라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공감하려는 마음이 온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인다고 믿는다. 이해보다 중요한 건, 다가가려는 마음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