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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몽 Dec 26. 2020

별 보러 갈래?

같이 살아가자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다고 하지만 나의 정신은 너무도 멀쩡했으니까.


23살 겨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첫 직장을 다니던 그 해 겨울, 회사에서 워크숍을 떠났더랬다. 겨울연가의 배경이 되었던 그곳. 용평스키장이었던가. 스키를 타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스키장 옆으로 줄 서있던 숙소들이 꽤나 멋들어지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전라도 지방에서 막 올라온 나는 스키장이 처음이었다. 스키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새로웠을 테다. 다섯 살 터울이 나는 언니와의 나 사이 큰 갭이 있어 나는 항상 부모님의 품 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중학교 때부터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에 다녔던 언니와는 달리 대학생이 되어서야 혼자 고속버스를 타본 나이다. 엄마의 과잉보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성향이 원래 그랬던 거 같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전한 곳인지 재고 있는 나를 보면 엄마 탓이 아니다. 나와 똑같은 성향을 지닌 둘째 녀석을 보면서 더더욱 느끼고 있다. 둘째 아이는 나보다 더 심해서 내가 옷 갈아입는 것조차 변화라고 생각한다!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처음 경험한 것들은 처음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스물세 살 그 해 겨울은 내가 엄마에게서 도망치듯 나와 처음 혼자 세상을 알아가던 때였다. 엄마 몫만큼이나 나를 감시(?)하는 언니가 있었지만 엄마보다는 나았다. 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언니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기에 서울에서 혼자 산지 4년이 되었었나 보다. 어린 동생이 취업하겠다고 서울로 왔으니 엄마 아빠 대신 자신이 보호자가 되었어야 했다. 내가 첫 직장에 취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영식 겸 회식을 하던 날이었다. 술도 곧잘 마시던 나였는데 대학 시절엔 엄마가 술 마시던 대학로 앞에서 대기 중이었기에 맘껏 술을 마셔봤던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첫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첫 직장에서 회식을 했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니 마지막까지 남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 시간까지 회식하는 회사가 어디 있냐며 2580에 신고하겠다고 노발대발. 12시가 가까워졌던 시간이었던 듯하다. 언니의 반협박에도 끝까지 자리에 남아 회식을 끝마치고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12시를 거론하는 언니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애주가였다.


나의 첫 직장은 광고를 편집하는 회사였는데 유난히도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이 많았다. 어느 청춘드라마를 찍기라도 하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재의 직업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런 이들과 처음 맞이하는 외부에서의 첫날밤이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부족한 술을 더 채워놓느라 근처 마트에 가려고 나왔던 나는 밤하늘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별별별.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내게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거 같았다. 어쩜 저리 큰 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거리였다.


지방에서 자랐던 나는 그래도 별을 자주 보며 살아온 편이다. 그런 내가 서울에 올라와 별을 볼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 날 보았던 별에 대한 잔상이 너무도 강하게 남아 여전히 나는 그날 밤의 기억을 갖고 산다. '그 날 내가 얼마나 큰 별을 봤냐면 말이야~ '하며 시작되는 나의 별에 대한 무용담은 '내가 술에 취해서'로 결론이 나지만 말이다.


나에게 별은 아픈 청춘의 잔상일지도 모르겠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고된 하루를 버텨왔던 그때, 독버섯과의 인연이 끝이 나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던 그때, 앞으로 이 험한 서울살이를 어찌 견뎌야 할지 고민이었던 그때의 잔상이자 추억이다.





“이른 아침의 고요와
한낮 태양의 찬란함과
깊은 달밤의 온화함이
살며시 다가와 속삭입니다.

천 일을 기다린 별
바로 너야 “

그림책 『바로 너야』에서는 광활한 우주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작은 별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첫 페이지의 QR코드를 찍으면 명상하기 딱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며 우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반짝이던 작은 빛이 자라고 자라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이 되기까지 온 우주는 숨을 죽이며 기다린다.


하나의 작은 별이 나라는 꽃으로 피워낼 때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찬란한 우리인 만큼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견뎌내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날의 별은 나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유난히도 지치고 힘이 든 날 혼잣말처럼 '별 보고 싶어'라고 읊조리는 것은 나에게는 살아가겠다는 의지이자 다짐이다.


우리 같이 별 보러 가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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