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몽 Jan 26. 2021

봄이 온다

설레임

3개월여 만에 아침이 분주하다. 이른 시간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낯설기까지 하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을 3개월 만에 등원하면서 덕분에 나도 강제로 외출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천성이 게으른 나는 사실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아 더 편해진 게 사실이다. 밤늦은 시간에 잠이 들어 아침 늦게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랬던 우리가 다시금 하루를 아침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조금은 낯설고 불편한 힘든 하루의 시작이지만 남들과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큰 아이를 깨워 간단한 아침을 먹여 등원을 시키고 나면 둘째는 쉽게 집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걸음마를 시작할 돌 때쯤 코로나가 시작되는 바람에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나가지 못한 채 1년을 보내왔다. 한창 세상을 알아갈 나이에 바깥바람을 맞게 되었으니 집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첫째는 이맘때쯤 하루에 3번씩 외출을 했더랬다.


언니가 어린이집에 들어가면 둘째는 잠깐 언니와의 헤어짐에 울부짖다가 자연스레 놀이터로 방향을 틀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여기저기 탐색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엄마 손을 이끌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산책을 하며 까르르 웃음 짓는다. 지난날 함박눈이 쏟아지고 몇 날 며칠을 녹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그 사이 따뜻한 봄 날씨가 되었다. 아이들이 등원한 이후의 단지는 조용하고 위험 요소가 줄어들어 이제 두 돌이 된 둘째를 데리고 놀기에도 딱 좋다. 가끔 요만한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놀이터에 나와 잠깐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코로나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평온하고 변함없는 일상이다.


평소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넘어선 나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웬만하면 외출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출근을 해야 하는 신랑에게 바깥일은 모두 떠넘기고 나와 아이들은 철저하게 집 안에 숨어들었다. 놀이터 죽순이었던 큰 아이조차 놀이터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우리는 바깥세상과 서서히 멀어져 1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세상의 금기를 깨버리듯 사람들은 깜깜한 밤에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눈이 눈앞을 가릴 정도로 너무 많이 내려서 하늘에 구멍이 난 건 아닐까, 눈에 파묻혀 지역이 사라진 경우가 있었나? 걱정이 불안으로 넘어갈 때쯤 눈은 거짓말처럼 그쳤다. 그리고 눈이 그친 그 자리에 그림책 속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로 채워져 갔다. 마치 전쟁이 끝난 후 피난처에 숨어 있던 피난민들이 하나둘 나오는 것처럼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모두들 코로나를 피해 집 안에 숨어 사느라 800세대가 넘게 사는 이 아파트 단지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까마득히 잊고 지내왔다. 하얀 눈이 우리만의 보이지 않는 자물쇠를 풀어버린 듯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11시가 훌쩍 넘는 시간까지 아이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를 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스키장의 콘도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 날 이후 뭔가 리셋이 되었다. 세상은 분명 아직도 코로나가 남아있는데 내 마음에 작은 틈이 생겼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내 마음에도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를 씨앗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책 『리디아의 정원』에서 리디아는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도시에서 빵가게를 운영하는 외삼촌 댁에 보내지게 된다. 삭막한 도시처럼 웃음기 없는 외삼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비밀 장소에서 꽃씨를 심으며 열심히 가꾸던 리디아는 마침내 외삼촌에게 아름다운 정원을 보여주고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를 선물 받는다.


외삼촌을 변화시킨 리디아의 정원처럼 코로나로 뒤덮인 우리네 세상엔 눈으로 다가온 건 아닐까. 작년 한 해 지치고 힘든 생활을 버티며 얼어붙은 마음을 평소와는 다른 기후로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만들었다. 그것이 시작인 듯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조금씩 들려오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한 결 가벼워졌다.


봄이 오면 꽃이 핀다. 무심코 눈을 돌리면 작은 풀꽃이라도 봄꽃은 피기 마련이다. 올봄은 우리 모두에게 꽃이 피었으면 한다. 흩날리는 씨앗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마음 한 켠을 비워두면 어느새 새싹은 올라오고 나만의 꽃이 방긋 인사할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나를, 당신을, 우리를 설레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외딴섬에 살고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