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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Nov 12. 2023

교사의 짬뽕

짬뽕은 갈등하지 않는다

여덟 시 삼십 분이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 잠근다. 이제 제법 쌀쌀해진 아침 공기가 볼을 스친다. 학교 건물로 들어서려는 찰나에 등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윤선생님! 안녕하세요."


상미는 뒤를 돌아보았다. 교무부장 장 선생이 걸어오고 있다. "안녕하세요"하고 상미도 인사를 건넨다. 장 선생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둘은 학교 건물로 들어섰다.


상미는 작년에 이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올해로 상미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17년이나 되었다. 교실로 향하며 장 선생은 인성 연구 발표대회 보고서는 잘되고 있느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며칠째 진척이 없었다. 연구 발표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장 선생은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자신에게 물어보라며 상미에게 웃어 보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상미는 5-2 교실에 들어섰다.


가방을 책상에 올려놓고 교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다음 가방을 책상 서랍에 넣는다. 며칠째 연구 보고서 작성이 지지부진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아직도 상미는 갈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교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임용고시를 보고 선생님이 되었다. 신규 임용되었을 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의지를 더 끌어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뜨거운 불씨는 가슴에 남아있지 않다. 상미는 이제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는 시간을 점차 줄이고 싶다. 교감으로 승진하는 길을 생각하고 있다.


교실 뒷 문이 열리며 영민이가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영민에게 상미는 웃으며 "영민이 안녕?"이라고 답해준다. 영민이는 몸집이 크고 말 수가 적은 아이다.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셔서 일찍 집을 나가신다고 했다. 영민이가 자리에 앉은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속속 교실로 들어선다. 어느새 재잘거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운동장 쪽에서도 들려오고 있다. 아이들은 주위에 활기를 발산하는 샘물 같은 존재라고 상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상미는 이 아이들에게서 한 발치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다.


"선생님, 오늘 알림장 쓰셨어요?"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다짜고짜 따지고 든다.

"안녕하세요, 지훈이 어머님. 무슨 일이세요?"

"아니, 우리 지훈이는 알림장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상미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옆에서 남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왜 우리 애만 알림장에 아무것도 없느냐고요. 다른 애들은 다 써 온 것 같은데."

"아니요, 어머니. 지훈이는 제가 직접 프린트해서 알림장에 붙여주기까지 했어요. 다시 한번 잘 찾아보세요. 분명히 있을 겁니다."

"잠시만요."

휴대전화를 든 채로 부스럭부스럭 알림장을 뒤적이는 듯한 소음이 수화기를 타고 상미의 귀에 그대로 들려왔다. 몇 분인가 소음이 계속되었지만 상미는 가만히 참고 듣고 있었다. 마침내 "여기 있네요."하고 지훈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이내 통화 종료음이 '뚜우 뚜우'하고 울렸다. 미안하다거나 어떤 인사도 없이 그냥 끊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학부모라는 사람이 이렇게 무례할 수 있느냐고 옆에서 남편이 역정을 냈다. 하지만 이 정도 무개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미가 작년 2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수업 시간에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보면 5학년이나 된 녀석들이지만 한편으론 귀엽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노는 모습을 보면 과하게 장난치다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여자 아이들은 간혹 쉬는 시간에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 상미에게 다가와 "선생님, 선생님은 화장품 어떤 것 쓰세요?" 같은 요망스러운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미는 그런 아이들의 관심도 귀엽게 받아준다.


점심시간이 되면 상미는 더 긴장한다. 아이들이 음식을 흘리거나 옷에 묻히는 일 정도 때문에 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년 일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작년에 담임을 맡았던 2학년 지훈이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아이였다. 주위가 산만하고 학습태도도 불량했고, 무엇보다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다. 걸핏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시비를 걸어 트러블을 만들기 일쑤였다. 지훈이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엄마가 지훈이와 살고 있지만 엄마는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문제의 그날은 지훈이가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를 밀쳐 넘어뜨리는 일이 있었다. 넘어진 아이는 뜨거운 국물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상미는 신속하게 넘어진 아이를 얼른 양호실에 보내고 상황을 수습했다. 이번에는 상미도 크게 화가 났다. 지훈에게 왜 그랬냐고 꾸짖었다. 지훈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보건실에 갔던 아이가 교실로 돌아왔다. 보건선생님의 말로는 워낙 경미해서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서 알코올 거즈를 대어주었다고 했다. 상미는 지훈이에게 친구한테 사과하라고 하고 둘을 화해시켰다. 화해하는 두 아이를 토닥여주고 각자 자리로 돌려보냈다.


오후 수업을 하는 내내 상미의 마음 한 편에서는 갈등 중이다. 이렇게 예쁘고 천진한 아이들과 내 힘이 닿는 만큼 오래오래 함께 수업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제 더 이상 작년과 같은 일은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영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박한 눈망울은 상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지훈이 엄마가 수업 중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은 점심시간 소동이 있은 그다음 날이었다. 왈칵 열어젖혀지는 소리에 상미와 아이들 모두가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입에 담기 힘든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지훈 엄마는 상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쳤다. 상미는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 왜 자기 아이를 혼냈냐는 지훈 엄마의 악다구니가 교실을 채우고 복도로 퍼져나갔다. 큰 소리에 놀라 아이들이 동요했고 옆반 선생님이 달려와 지훈 엄마를 상미에게서 떼어 놓았다. 상미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지훈 엄마가 무례한 행동을 일삼다 못해 이제는 수업 중에 난입해 폭언까지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수치심이 몇 배는 더했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며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뼛속 깊이 회의감이 들었다. 매년 힘들게 하는 학부모들이 있어 왔지만 작년의 그 사건으로 인해 상미는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동료 교사들이 겪은 수많은 교권 침해 사례들에 분개하면서도 언제든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상미는 생각했다.


어느새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교실에 상미는 혼자 남아있다. 활기 찬 아이들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기운이 소진된 느낌을 받는다. 당이 떨어진 느낌이 들어 믹스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이제 연구대회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다. 연구대회에서 입상을 하면 교감으로 승진을 하기 위한 점수를 확보할 수 있다. 상미는 교감, 나아가서는 교장이 되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직업이 싫지 않고 아이들도 좋아한다. 하지만, 더는 작년과 같은 비인격적인 일을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고민 끝에 절충한 것이 바로 교감 승진 코스이다.


"선생님, 퇴근 안 하세요?"

옆반 박 선생이 퇴근하는 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먼저 들어가요. 난 좀 할 게 남아서..."

내일 뵙겠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박 선생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느낀 상미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린다. 지금까지 일에서나 공부에서나 누구에게 뒤처지며 살아온 적이 없다. 교사들 대부분이 책임감이 강하고 무엇에든 열심히여서 이런 연구대회는 경쟁이 치열하다. 상미도 지고 싶지 않아 열심히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들에게서 멀어진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집중력이 떨어진다. 마음속으로는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계가 7시를 가리켰다. 아들에게 저녁을 챙겨 먹였노라는 남편으로부터의 문자가 왔다. 상미는 오늘은 이만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할까 그만할까 갈등하느라 PC의 전원을 끄기까지는 30분이나 더 지났다. 교실 문을 잠그고 학교 건물 1층으로 내려왔더니 허기가 몰려왔다.


가게 안에는 식사를 하고 있는 손님들이 몇몇 있었다. 주인에게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며 한 명이라고 이야기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과 단무지를 내려놓는 주인인듯한 남자에게 상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삼선짬뽕 하나 주세요."

Photo from 123RF Stock Photos

점심시간에 먹는 급식은 그야말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온 신경이 곤두서서 긴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들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간이 세지 않다. 엄마가 전라남도 출신 분이셔서 늘 상미는 자라오면서 간이 세고 맛깔난 음식에 입맛이 익숙해져 있다. 그런 상미에게 급식의 간은 성에 차지 않는다.


이윽고 짬뽕이 상미의 앞에 놓였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짬뽕을 바라보며 젓가락을 들어 홍합 껍데기를 덜어낸다. 해물들이 국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면과 함께 휘적인다. 숟가락으로 국물의 맛을 본다. 짜고 매콤한 자극이 입안을 감돈다. 면을 집아 올려 후후 불어 입에 넣는다. 후루룩하고 빨아 당기다 입으로 면을 끊는다. 면을 씹으면서 가로 세로 모양으로 칼집을 낸 갑오징어 살집을 한 덩어리 집어 입에 넣는다. 짠 국물의 맛이 면, 해물과 입 안에서 어우러진다. 뒤이어지는 매콤한 맛이 입 안쪽에서 올라온다.


상미의 마음은 갈팡질팡이다. 이런저런 갈등이 많다. 무엇도 포기하기 싫은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것은 좋지만 진상 학부모들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은 지키고 싶다. 교감이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교사라는 직업으로 남아있기엔 그나마 가장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짬뽕은 망설임이 없다. 가차 없이 짜고 매운맛이 입안을 헤집어 놓는다. 건강 따위는 안중에 없다. 오로지 자극적인 맛으로 앙칼지게 승부해 온다. 짬뽕은 상미처럼 갈등하지 않는다.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언제 와?"

"응. 다 끝났어. 곧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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