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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형제 Nov 19. 2023

세일즈맨의 된장찌개

조바심 가득한 일상 속 허기를 채우다

조용히 침실을 빠져나와 거실의 커튼을 젖혔다. 저만치 한강이 바라다보인다. 현중은 이곳의 생활환경이 좋다. 서울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는 점이 주는 나름의 정취 같은 것이 있다. 왠지 공기도 더 상쾌한 것 같고 나무와 풀도 더 푸른 것 같다. 남들보다 먼저 내 집을 갖고 싶었던 현중은 서울을 포기하고 남양주에 아파트를 샀다.


출근 준비를 한다. 부지런한 아내는 현중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 후 착실히 모은 돈으로 아내는 작년부터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로 아내가 출근하기 위해 자동차도 한 대 더 구입했다. 아내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선 각종 베이커리들도 취급한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침 식사 메뉴로 빵과 커피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중은 개인적으로 아침에 밥과 국을 먹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침마다 맡는 은은한 커피 향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현중의 지점에서 오전 조회가 있는 날이라 일찍 출근해야 한다. 그래서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은 아내가 대신해주어야 한다. "다녀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딸 유림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서울로 향하는 길은 아침에 서둘러 출발하지 않으면 극심한 교통체증이 시작된다. 현중은 동기부여 강좌를 들으며 엑셀에 올린 발에 힘을 준다. 서울 강남 한 복판에 있는 지점 사무실 인근에 도착하자 차들이 많아졌다.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앞으로 가로막고 들어오는 차를 향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교차로 신호대기 때문에 차를 멈춰서는 초조한 듯 탁탁탁 하고 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린다.


보험대리점의 월요일 아침 지점 미팅은 살풍경하다. 양옆 길이가 많이 좁은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이로 정장을 입은 남녀가 뒤섞여 앉아있다. 이들은 사무실 한쪽 벽면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아 있고 그들의 시선은 벽면의 큰 스크린을 향해있다. 스크린 옆에는 지점장이 마이크를 들고 포디움 뒤에 서있다. 보험 세일즈의 세계는 매일, 매주, 매달, 매년이 치열한 레이스이다. 지난주에 가장 많은 보험 계약 건 수를 체결한 동료 설계사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호명된 젊은 여성이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앞으로 나가 지점장과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는 마이크 앞에 서서 지난주 자신의 영업 사례를 발표했다. 그렇게 가장 큰 금액의 보험료 성과를 올린 사람과 3건 이상의 계약을 체결한 사람들이 한 명씩 순서대로 호명되고 각자의 사례를 발표했다. 현중의 이름은 없다.


현중은 이 일을 시작한 지 5년이 지났다. 보험 영업을 하기 전에는 대형 유통회사의 정직원으로 일했었다. 대형마트의 부점장으로 승진했을 때 그의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지방의 신도시에 신규 매장 오픈을 준비하느라 며칠을 밤새워가며 일했어도 월급은 똑같았다. 현중은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아져 버렸다. 그렇게 의욕 없이 살던 어느 날 몇 년간 연락이 닿질 않던 대학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중의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그는 자신이 현재 보험 세일즈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일해서 성과를 올리는 만큼 벌기 때문에 일반 직장 생활하는 사람보다 많이 번다고 했다. 현중도 그처럼 빨리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지점 미팅이 끝나고 나서 이번 일주일 동안의 활동 계획을 작성하여 팀장에게 제출했다. 어느 날 몇 시에 어디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출한다. 당연히 만날 계획이 빼곡히 잡혀 있는 설계사일수록 높은 성과를 낼 수 있기에 계획표를 받아 들은 팀장의 표정은 팀원들이 제출한 계획표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달라졌다. 현중의 이번 주 일정은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편이다. 다만, 새로운 고객을 만나 가입권유를 할 수 있는 영업 목적의 만남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고객이 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보험금을 청구하는 일이나, 계약과 관련된 부수적인 일들 처리해 주는 서비스 성격의 일정들이 반 이상이나 된다. 현중은 이 일을 시작하면서 영업 실적에 혈안 되어 고객 관리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오늘 일정은 사무실에서 각종 서류 정리와 자료 작성을 마친 후 오전 11시에 판교에서 고객을 만나 수익자 변경과 보험금 청구 서류를 접수하고, 저녁 7시에 김포에서 가망 고객을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망 고객이란 아직 계약을 체결해서 고객이 되지는 않은 상태를 말하며, 영업 목적으로 만나서 고객으로 만들어야 할 사람을 뜻한다. 시계를 보며 사무실을 나선 현중은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의 도착지를 설정했다. 만나기로 한 고객에게 지금 출발하니 앞으로 약 1시간 정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미리 메시지를 보낸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자 도심의 교통 체증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다시 현중은 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


판교에서 만난 고객과는 이미 친분이 쌓여 있다. 아내와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IT 회사원 고객이었다. 판교의 이름 있는 회사의 1층 접객실에서 만났다. 처음 그에게 계약을 받아냈을 때를 떠올렸다. 현중이 제안한 보험상품 설계안을 놓고 며칠이고 고민을 했으나 현중은 그를 채근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현중의 고객이 되어주었고 지금까지 관계를 이어오면서 점차 친분도 쌓여갔다. 그가 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대장의 용종을 제거하는 내시경 수술을 받은지라 수술 보험금을 청구 서류를 건네받았다. 이걸로 만난 목적은 완료되었다. 나머지 시간은 서로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다. 결국 일찌감치 목적이 완료된 스몰 토크는 억지로 오래 끌지 못하고 30분 만에 끝난다. 다음에 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달라는 말을 남기고 현중을 다시 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저녁 미팅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번 주 미팅을 조금 더 확보하기 위해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보험 영업 방식은 대부분 DB라고 불리는 이른바 보험 상담을 받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연락처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다. 인터넷 광고나 콜센터 등을 통해 가망 고객이 보험 상담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그것이 DB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DB는 보험설계사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된다. 이렇게 DB를 넘겨받은 보험설계사는 상담을 희망하는 가망 고객에게 연락을 해서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가족과 지인을 대상으로 했었기 때문에 폐해가 많았다. 그러다 점점 영업할 대상이 없어지자 광고를 통해서 DB를 만들어 설계사에게 판매하는 업자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그나마 그렇게 만들어진 DB 조차도 이제는 타율이 떨어진다. DB 10건을 구매하면 그중에 실제 계약까지 체결하는 사람은 1~2명 정도뿐이다.


현중은 진실성 있게 고객관리를 잘하면 소개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현중보다 먼저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던 선배들은 그런 식의 소개를 통해 영업 성과를 꽤 많이 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소개는 잘 나오지 않는다. 보험 시장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보험을 판매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이미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런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현중은 조바심이 난다. 빨리 더 많이 벌어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이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는 올림픽대로 위에서 현중의 차가 김포로 향하고 있다. 오늘 만나기로 한 가망 고객은 얼마 전 현중이 돈을 내고 구매한 DB로 연락하게 된 사람이다. 첫 통화했을 때는 상냥한 느낌이었고 딱히 경계하는 분위기도 없었다. 며칠 전 첫 미팅에서는 보험 가입 현황을 분석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는 쪽으로 상담 방향을 잡았다. 오늘은 부족한 보험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현중이 설계한 상품을 제안하려는 것이다. 미리 여러 개의 설계안을 준비해서 태블릿 PC에 저장해 두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와 함께 현중은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 자동차 룸미러로 얼굴과 셔츠 매무새를 비추어보았다. 차문을 닫고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지난번 미팅 때 만났던 카페로 향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다. 카페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죄송해요. 남편이 지금 있는 보험에서 더 늘리지 말라고 반대를 해서요. 오늘 미팅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문을 받기 위해 현중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던 카페 점원을 향해 "죄송합니다. 다음에 올게요."라고 말하며 나왔다. 한숨이 나온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저녁은 집에 와서 같이 할 수 있냐고 묻는 아내의 전화다. 허기를 느낀 현중은 밖에서 먹고 들어갈 것 같다고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최근 들어 영업 성과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보험 영업을 처음 시작했을 땐 직장 생활 월급보다 훨씬 큰 수당을 받으며 만족했었는데, 이제는 점점 그 격차의 만족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충실하게 고객관리를 해서 지금까지 왔지만 앞으로는 이렇게만 고집해서는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현중은 사비를 들여 DB를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이번 달에도 DB를 사용한 보람은 없었다. 한 명이 계약을 했지만 단돈 3만 원 손해보험 상품 1건이 전부였다. 보험료가 크거나 수당을 많이 받는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데 매번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지난번 미팅 때 김포를 다녀가면서 봐두었던 길가 기사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현중을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었다. 화물차 기사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각자 혼자서 밥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에 물병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에게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식당 안에 틀어 놓은 TV에서 뉴스를 방송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 물가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다. 좋은 일이란 일어날 리 없다. 현중은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켰다.


된장찌개가 나왔다. 뚝배기에 담긴 채 부글부글 끓고 있다. 끓어오르는 기포가 터질 때마다 두부가 푸르르 몸을 떨었다. 찌개에서 피어오르는 후끈한 김이 얼굴을 스친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뜬다. 입가에 가져와 후우 후우 하고 두 번 불고 숟가락을 깨물듯이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된장의 구수함과 짠맛이 입 속 첫맛을 남긴다. 목구멍을 넘길 즈음 혀와 입안에 남는 칼칼한 기운이 좋다. 마지막에 올라오는 바지락조개의 감질맛까지 일품이다. 삼킨 후 날숨과 함께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다시 한번 국물을 뜨고 불어 입에 넣는 동작을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야 공깃밥 뚜껑을 열고 입에 흰쌀밥을 집어넣는다.


언제부터인가 현중은 조바심이 났다. 남들보다 빨리 앞서야 가한다는 욕심이 솟아났다. 운전을 할 때도, 집을 살 때도, 돈을 벌 때도 말이다. 빨리, 먼저, 그리고 많이 하고 싶었다. 소개를 많이 받는 것이 예전엔 가장 안정적이고 좋은 영업 방식이었기 때문에 현중도 택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그 방식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현중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제는 보험 세일즈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이상 이 직업으로 남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돈을 모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현중은 학창 시절부터 어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등교를 했다. 늘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현중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참 맛있게 끓여주시곤 했었다. 그때의 된장찌개 맛을 떠올리며 현중은 된장찌개를 숟가락으로 떠서 밥에 비볐다. 두부와 애호박이 숟가락의 놀림에 따라 으깨진다. 고춧가루의 붉은색이 밥과 어우러져 울긋불긋해진다. 한 손으로 스탠리스 공깃밥을 들어 올려 쓰윽쓰윽 된장찌개로 비벼낸 밥을 한 숟갈 가득 입에 넣는다. 그렇게 오늘의 허기를 잠재운다.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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