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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며늘희 Jun 08. 2021

시어머니의 호의

격식없는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16. 시어머니의 호의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 아닐까. 내가 임신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태어날 아기를 맞이하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내 것보다는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작은 아기가 언제나 우선순위가 되곤 했다.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_ 능력만 된다면_ 아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어찌해서든 내 자식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벌컥벌컥 든다. 엄마 또한 그러했다. 늘 챙겨주셨고 자신은 못한 것을 하더라도 나에게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애쓰셨다. 결혼한 지금도 엄마는 엄마는 뭘 그렇게 사주려 하신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지만 가끔은 결국 나의 시가로 향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아무리 그래도 비단이불을 사줬어야 했는데-  너희 시부모님 이불도 원래 여자가 해가는 거야-  돈으로 줄 테니 네가 때맞춰해 드려라- " 라고 하시길래 받은 돈을 비상금으로 챙겼다. 혼자 자는 것이 편하다며 따로따로 침대를 두고 각방 생활하시는 시부모님께 차르르 흐르는 비단이불을 두벌 사드릴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 생각해보니 안방의 퀸 사이드 침대를 두신 시어머니는 낮잠은 거기서 주무시더라도 밤잠은 또 거실에 나와 또 다른 이불을 펴고 주무셨다. 밤에 잘 때는 방에서는 도저히 잠이 안 오신다나 어쩐다나..  그렇다면 내가 시부모님께 해 드려야 하는 이불이 세 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걸 알 리 없는 엄마는 그도 모자라 유명한 곳에서 지어왔다며 공진단을  몇 박스나 내놓았고 함께 드시라고 권하였더니 그 모든 것을 자신이 먹겠노라 시모 혼자 챙겨 자신의 방으로 가져간 사실은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계속하여 온갖 값비싼 것들을 나의 시가로 향하는 나는 엄마의 정성에 대해 이제는 선을 긋고 싶었다. 여기까지, 이제 그만_이라고 말이다.



물론 엄마와 마찬가지로 시모도 나에게 뭔가를 계속 주신다. 단지 그게 내의사와 상관없고 취향과 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문제이지만 말이다. 임신 초기 발이 유난히 차가워지기에 수면양말을 신고 있는 내게 그렇게 생긴 것도 다 있냐며- 시어머니는 검은색 봉지 하나를 내밀으셨다.

 

그 봉지 안에는 양말 한주먹이 들어있었다. " 웬 양말이에요? "라고 물으니 " 며늘희 너는 그런 양말만 신니? " 라며 내가 신은 두툼한 양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신다. 요즘 발이 유독 차가워지기에 뽀실뽀실한 수면양말을 신고 있던 내가 맘에 안 드신 걸까 아니면 그냥 그런 폭폭한 양말이 별로였던 걸까. 양말을 봉투에 담아 챙겨주시는데 언뜻 보아도 내 취향과는 별개의 무늬가 그려진 양말들이었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준 양말은 어머님이 옷을 살 때 사은품으로 받아놓고 긴 시간 동안 쟁겨놓았던 물건인 듯 보였다. 주시니 그냥 군소리 없이 받아왔다. 나는 발이 커서 안 맞으니 너에게 좋겠더라- 그래서 시어머니인 본인이 일부러 챙겨놨다며 너 신으면 딱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그 사은품 양말 꾸러미를 내어주시던 그날의 어머님이 신고 있던 양말은 내가 연애시절 남자친구에게 주었던 비싼 양말이었다. 나는 사실 시모가 그렇게 남편 양말을 매번 신고 있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남편은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혼집을 꾸려 이사 올 때 내가 선물한 양말을 하나하나 챙겨 가져오지 않았다. 결혼 전부터 예비 시가에 들르면 내가 선물한 양말을 버젓이 신고 있던 시어머니가 무척이나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의 양말을 빨고 널다가 그냥 가족의 것으로 치부되어 아무렇지 않게 신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자친구에게 뭐라고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연애시절 고르고 골라 생각하여 마음 담아 선물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시가에 놓고 왔다. 양말도 그중에 하나였다. 남자 사이즈 양말이 맞는 시모는 왕발임이 틀림없다.


시모가 맞지 않는다고 한주먹 쥐어준 양말 더미를 꺼내어보니 그 사은품 양말들은 세월을 꽤나 지나 나에게로 온 듯 보였다. 또한 그 색깔이며 무늬며_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브랜드 네임이 이리저리 굴려 쓰여있는 이 양말을 신고 어디 나갈 일은 없어 보이는데_ 당신 쓰지 않으니 나에게 맞고 필요하다 주시는 모양새가 나는 정말이지 백 프로 맘에 들지 않았다. 본인도 신지 않고 구석에 짱박아 두었다가 갑자기 집 정리를 하면서 구석에서 꺼내 나에게 주신 시모의 양말은 내 발을 따스히 감싸주는 수면양말을 어머님 말대로 '그런 거'로 취급해버릴 만큼 훨씬 더 좋은 것도 아니 었다.


오래된 사은품 양말을 권하시니

나는 그냥 내가 바로 그런 양말이 된 거 같았다. 


시가에서_ 아니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나의 정도가 지금 내가 받아온 신경 써서 담은 종이 쇼핑백도 아닌 검정 비닐봉지 속 양말만큼의 척도로 느껴졌다. 나는 불만을 담아 큰소리로 청소할 때나 신어야겠다고 중얼거렸으나 남편은 그런 나의 말투나 소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남편에게 선물해준 양말은 나름 디자인 브랜드로 하나에 12,000원이 넘는 귀엽고 유니크한 양말이었다. 그 양말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남편도 미웠고 누가 봐도 본인 집에 매일 널브러져 있던 물건이 아니라 새로 들여온 물건임이 분명해 보이는 그 비싼 양말을 남편의 의사도 묻지 않고 본인 것으로 탈바꿈함 시모도 싫었다.


나는 무심 경한 남편에게 당신은 내가 연애할 때 선물해준걸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비싸게 주고 샀던 것을 떠나 내 마음 씀씀이가 들어간 바디로션이나 화장품 그리고 양말들은 왜 시모가 손수 남편 물건이라고 바리바리 싸주신 것에는 절대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남편이 챙겨 온 그 어떤 박스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아직도 시가의 화장실에 버젓이 서있는 내가 선물했던 바디로션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그렇다고 확 집어올 수도 없으니_ 더 열 받는다.


슬슬 눈치를 챈 남편이 내가 선물해준 것 중에 양말을 말하는 것이냐며 그거 뭐 누가 맘대로 신는다고 - 나밖에 안 신어 - 라고 말한다. 너님밖에 안 신었다면 내가 이런 표정과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는 남편은 조심스럽게 " 뭐 신어봤자 우리 엄마인데.. "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 뒤로 시가에 가서 남편은 그곳에 남겨두었던 양말 두 켤레를 더 챙겨 왔다. 하지만 그날도 역시 나에게는 검정 비밀봉지에 선물이라고 양말 한주먹을 주셨던 시모의 발을 감싸고 있던 것은 내가 남자친구에게 선물해주었던 유니크한 양말이었으므로 모든 양말세트가 모두 우리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만원이 넘는 특별한 양말을 선물할 만큼 좋은 소품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모는 그것마저 주인 여부 상관없이 막 신어놓고 나에게 사은품으로 받은 양말 한주먹을 준 것이다. 내가 너무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났을까?


그런데 시모가 나에게 우리 엄마 갖다 주라고 주던 손수건도 사은품 스티커가 붙여져 있던 것이었다. 굳이 받고 싶지 않아 어머니 쓰세요 - 라고 하니 나는 필요 없다 하시며 쓰지 아니하고, 정리해야 되는 어떤 더미를 나에게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주는 느낌이라 미칠 듯이 싫었다. 우리의 신혼집에 정식 초대된 이후 시모는 갑자기 집안을 정리하셨다. 너희 집 깨끗해 여기 눌러앉아 살고 싶다더니 잘 정돈된 우리 집에 자극을 받으셨던 것일까. 갑자기 본인의 집을 정리라도 하고 계신 거 같았다. 그렇게 정리하다 사은품 딱지가 붙은 그 손수건을 사돈인 우리 엄마에게 갖다 주라고 할 때 시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는 딱 그 정도_ 사은품이라는 스티커도 제거하지 않은 바로 그 정도인 거 같았다. 자신의 사부인에게 무엇을 사면 따라오는 물건이 아닌 정품을 주면 안 되었을까. 그렇게 시어머니는 한주는 양말을 주고 그다음 주엔 바지를 쥐어주셨다.


나 안 입는 바지인데 있더라며... 말이다. 그러면서 남편이 여름이면 입는 냉장고 바지가 많았는데 다 없어졌다고 뒷말을 붙인다. 신혼집에 짐을 옮길 때 남편이 그 바지는 또 다 챙겨 왔나 보다. 아들이 입는 옷을 마구 같이 입다가 냉장고 바지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자 섭섭하셨는지 그것 좀 사달라고 하신다. 본인 안 입는 바지는 내 취향 상관없이 쥐어주시면서 본인 취향에 꼭 맞는 냉장고 바지는 주문해달라니..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너희 친정집엔 언제 가냐고 물으시더라. 가려거든 본인 집에 먼저 들으라고 하신다. 왜 그러시는 건지 자주 가는 곳도 아닌데 내려가려면 곧장 가는 것이 편한것만 갈 거면 말을 꼭!! 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하시는데 왜 내가 친정에 가끔 가면서도 가기 전에는 들리라는 말을 듣고 앉아있어야만 하는 며느리가 되었나 속이 상했다. 남편이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집에 있는 화분을 다 가져가라 하신다.


내가 아는 시가의 화분은 깨지고 오래되고 금가 있던 것들인데 그걸 가져가라고?


아파트라 흙 처리할 곳도 없는데 시골에서는 그런 거 좋아한다며 잘됐다고 - 하신다. 속이 팍팍 삭아왔다. 다행히 내편인 남편이 그런 건 장모님께 여쭤보고 원하시면 가져가는 거라고 말한다. 남편도 본인의 엄마가 저리 말하는 것이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시모가 우리 친정집에 오래되고 쓸모없는 화분을 폐기물 스티커마저 사서 붙이고 싶지 않아 나의 친정에 버린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의 말에 시모는 " 뭘 여쭤본다 만다냐 - 주면 좋아하지 - 싹 다 가져가라 - "라고 말한다.


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예쁜 화단을 꾸미고 있는데 거기에 금가고 깨진 그 옛날 옛적 이상한 색깔과 문양을 가진 시모의 화분을 두고 싶을까. 시어머니는 삼천 원짜리 스티커 사러 가는 것과 화분을 폐기물 처리장으로 옮기는 것까지 모두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귀농하신 우리 부모님 집이라고 답을 정하신 거 같다.


이전 양말도 바지도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갖다 주라던 그 손수건 까지도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나쁜 의도는 어쩌면 없지 않았을까, 단순히 오해일지도 모른다는_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_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날 화분으로 인해 시모가 본인의 집을 정리하면서 필요 없는 쓰레기를 나에게 버리고 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한주는 시가에 들리지 않았더니 매주 주말마다 보지 않으면 가시가 돋는 시부모님들께서 신혼집으로 직접 찾아와 챙겨줄 것이 있다며 무늬도 다르고 내 취향은 당연히 아닌, 심지어 그 무늬가 몇 개는 흠이 있는 그릇을 가져오셨다. 나는 그동안 참고 있던 고뇌가 터져 나와 시모가 다녀간 뒤 남편에게 왜 자꾸 필요 없는 것을 주냐고 나에게 버리는 거냐고 대뜸 따져댔다. 지난번 화분 이야기도 너무 기분 나쁘고 이전에 양말이며 내가 바로바로 화내지 않고 참고 있는데 저 그릇은 뭐냐고 하니 열불이 터진 아내를 달래고자 남편은 본인이 달라고 했다며 화내지 말라며 변명을 해댄다.

 

내가 필요하다 말한 적도 없는데 부엌 물건을 달라고 했다고? 라며 남편에게 따졌다. 그는 우리가 그릇세트를 사지 않아 모자라지 않냐며_ 그리고 엄마가 가져다준 것이 나름 브랜드 있는 것이라며_ 좋은 의도였노라 제발 오해하지 말아 달라 말한다.


그놈의 좋은 의도_ 그놈의 악의는 절대 없는 행동이라는 그 말_

어휴


나는 그렇게 못 받아들이겠다. 그동안 이밖에도 내 취향 존중 없이 좋은걸 주시려는 것보다 언제나 별로인 본인 안 쓰시는 것을 쓰라고 강요하며 주시지 않냐고 그동안의 취급에 대해 불만을 쏟았다. 김치를 담아주시는 플라스틱 통도 매번 뚜껑이 망가지거나 깨져있는 것들이고 우리가 한주 시가에 방문하지 않으면 만나고자 줄 게 있다며 핑계로 들고 오시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쓰레기를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모가 주신 그릇 중에는 심지어 수평이 맞지 않아 삐그덕 거리는 것이 두 개나 있었으며 지금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지만 그 옛날 고릿적 변경되기도 전인 1980년대 삼성마크가 떡하니 찍혀있던, 그러니까 아주아주 오래전에_ 그것도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은 그릇까지 몇 개 끼어있었다. 남편이 말한 나름 브랜드 있는 그릇인 코웰 또한 무늬가 벗겨진 것은 그나마 고상 한 것이고 이가 깨진 것이 있었다. 나는 그 그릇을 그냥 찬장에 넣어두고 있었는데 출산 후 산후도우미가 와서 식사를 준비해 주면서 그 그릇을 꺼냈더이다. 그리고 나에게 한다는 말이 코웰은 진짜 안 깨지는데 이건 어떻게 이가 나갔네. 코웰 그릇이 이나 간 건 처음 봤다며 한마디를 하였다. 어머님이 굳이 우리의 신혼집을 찾아와 주신 것은 쓰지 않는 그릇 중에서 고르고 골라 이가 나간 것이었고 무늬가 다른 것이며 그리고 또 그 무늬가 벗겨진 것들이었다.


단 한주만, 이번 주만 좀 그냥 넘어갈 수는 정말 없는 것일까? 쉬고 싶은 주말에는 굳이 신혼집으로 찾아와서 들어오진 않고 물건만 전해주겠다는 말만 몇 번이고 되뇌신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집에 안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를 떠보는 것인지 진심 물건만 전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들어오셔서 주시는 음식은 반찬통을 꽉 채우지도 않고 반만 들어있다. 시모의 냉장고에도 모자라는 음식을 굳이 담아서 핑계 삼아 주말의 식사를 같이 하자고_ 시간을 꼭 같이 보내자고 오시는 것이다.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며 저 그릇 어떻게 할까? 라고 물으며 마무리를 하려는 남편에게 나는 " 제일 아래칸에 두고 써! 많이 써야 빨리 깨지겠지! " 라고 내 나름대로 막장을 담은 대사를 쳐버렸다.




시어머니는 질투가 많았다. 연애시절 인사동에서 우리 둘이 맞춘 팔찌를 시모는 그야말로 바로 뺏어갔다. 소품집에서 구입한 태어난 달에 맞는 탄생석을 품고 있는 그 팔찌를 다음에 만났을 때 차고 오지 않자 나는 커플팔찌의 행적에 대해 물었더니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엄마가 이쁘다고 본인이 쓰겠다고 가져갔노라 대답했다. 그건 커플 팔찌가 아니냐고 태어나신 달이 너와 같냐고 물었더니 "우리 엄마는 원래 내 것 다 뺏어가." 라고 대답했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나 보다. 그런 사소한 것을 놓치고 남자친구와 시간을 쌓아 사랑하고 믿어온 결과는 나에게 힘든 시월드를 들이밀고 있었다.


남의 것은 다 가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나의 집들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다. 그 팔찌뿐 아니라 이후 나와 함께 맞춘 소품이나 내가 준 선물을 시모는 남자친구의 허락과 상관없이 풀어헤쳤고, 가져갔으며, 기여코 본인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얼굴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안경을 쓰고 싶다고 했었다. 이왕이면 똑똑해 보이는 모양으로 말이다. 나는 귀여워 보이는 안경태를 골라주었고 똑똑이 스머프 같은 남자친구의 새로운 모습에 귀여워 죽을 뻔했었다. 다음에 만난 남자 친구는 그 안경을 그대로 쓰고 있었지만 이 안경 사수하느라 힘들었다는 말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엄마가 그 안경 뭐냐며 맘에 든다고 내놓으라고 했다고 하더라. 안경태를 함께 고르고 시력도 체크하고, 보안경이었지만 당시 남자친구 눈에 맞춘 그 안경을 뺏으려 했다는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그런 자신의 엄마에게 여자친구가 맞춰주고 골라준 거라고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럼 자신의 안경을 사달라고 엄마가 생떼를 부렸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남자친구의 엄마는 대체 뭔가 싶었다. 결국 그 당시 시모는 그렇게 조르고 질투하다 남자친구 안경모양과 비슷한 것으로 기필코 맞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번 쓰지도 않고 어디 처박아 내버려 두신 듯 보였다. 나중에 나는 필요 없으니 너 해라 - 라며 그 안경이 나에게 언젠간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거 가져가라



그렇게 시어머니의 일방적인 호의가 어느 정도 끝나가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앞치마를 내미셨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니 내 취향 일리 없다. 그래서 "어머니 입으시지 그러세요" 라고 물으니 "아니 난 안 입어~ "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체 본인도 안 입는걸 왜 나한테 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달라고 한 적도 없다. 필요하다 말한 적도 없었다.


그냥 주는 대로 곧이곧대로 받아왔어도 됐었다.

네, 하고 입 다물고 챙겨 와서 어디 쳐 받아 두었어도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나는 묵묵히 받아 들고 오던 때처럼 그리고 그냥 말없이 받아들이던 때와는 다르게 한마디를 더 해보았다. 그렇게 용기를 낸 나의 한마디는 "어머니한테는 작아서 그러시는 거예요? " 였다. 그랬더니 괜찮아서 샀는데 별로다- 싶어 너 주려고 내버려 두었다고 하신다.



딱 그 정도이다.

갖고 싶어 샀지만 아니다 싶어 주는 꼴. 그게 시모가 나에게 행하는 마음 같았다. 그리고 딱 그 정도가 나의 시어머니의 호의의 정도 일지 모른다. 내가 받은 하늘색 앞치마는 82년생 김지영 씨가 받은 것처럼 다행히도(?) 은행 로고가 붙여있지는 않았지만 그 문양과 색깔이 닮아있음에 치밀도록 싫었고, 나에게 가져가라- 너를 위해 챙겨놨노라- 앞치마를 내미는 시어머니가 너무너무 미웠다. 내게는 이미 예쁜 프릴 앞치마가 두장이나 있다. 시모가 챙겨주지 않아도 앞치마 두르고 당신 아들 밥을 열심히 해대고 있다. 얼마나 부엌에서 일을 하라고 이걸 내미는 건지_ 내 취향도 아닌 색깔과 꽃무늬를 내가 굳이 가져가서 속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그 앞치마에 흥미가 없다는 듯 다른 곳을 보았고 작은 것도 아니고 잘 맞으시면 두고 쓰시라고 말해버렸다. 그야말로 어머님이 날 위해 매번 두었다는 그 말을 잘도 맞받아 드렸던 것이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챙겨주는 앞치마의 의미는 무엇일까. 너는 밥순이다 - 너는 부엌데기이노라.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당신 또한 그렇게 한평생 집안 일거리에 치였으니 너도 어서 그러한 인생을 살아라- 라고 말하는 거 같기도 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밥을 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말하지만 나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시집온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앞치마라고 하는 물건이 가장 필요한 것도 아니며 없으면 더욱 좋을 물건일지 모르겠다.


내가 냉랭하게 대답하고, 싫은 티를 내자 결국 시모는 김치를 또 한가득 싸주면서 그 위에 놓아두었던 앞치마를 빼냈다. 그렇게 두고 쓰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마지막까지 현관 앞에 내가 미칠 듯이 가져가기 싫어하는 그 시어머니의 김치와 함께 넣어두셔놓셨는데 아무래도 내 반응이 아니다 싶었다보다. 그렇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나의 태도를 언급은 꼭 하고 싶어 하셨다. 며느리인 나에게 다 들리도록 자신의 아들이자 나의 남편에게 "며늘희가 싫어하는 거 같아서 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이렇게 챙겨주고 싶어도 못준다" 고 큰소리로 떠들고 계셨다. 남편은 그런 소리를 듣고 우리 엄마는 너를 위하는데 왜 너는 삐딱하게만 보냐며 또 뭐라고 할 것 같았다. 제발 의도는 좋은 마음이라는 것만이라도 알아달라고 말하는 남편의 레퍼토리가 생각났다. 그렇게 큰소리로 앞치마 안 가져가서 서운하다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도 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굴뚝같은 마음이시다면 백화점 리빙층에 있는 이태리 디자이너가 손수 만든 앞치마를 사주신다면 어떨까, 앞치마를 구매하기에는 속이 시커매질 정도의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치르신다면, 돈이 다는 아니라지만 어머님의 그 굴뚝같은 마음이 어쩌면 내게 전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머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어쩌라고 싶었다. 이쯤 되면 내가 죄송한 낯빛을 하고 가져가겠노라 말해야만 하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어머님이 필요도 없고 심지어 싫어하는 것이지만 내게 필요 없는 것을 시가에 갖다 날아댄다면 그때는 어머님이 내게 행하시던 호의에 대한 내 마음을 역지사지의 개념으로 이해는 하실까?




그렇게 나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님에게 필요 없다고 하여내게 필요하고 내 마음에 들리 없다는 표현을 했었다. 그런데 너무 소심한 제스처였을까? 단 한주가 지나 방문한 시가에서 시어머니는 이번에는 사이즈가 정말 작아서 못 입노라며 내게 브라를 내미셨다. 시모가 내민 속옷은 홈쇼핑에서 구입한 것이고 자신에게는 너무 작다고 연신 말씀하셨다. "새 거야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어." 라고 하시는데 작다는 건 대보고 작다고 느꼈던 것인지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 한 번은 입어봤을 것만 같았다. 입지 않고 자신에게는 작은 그 브라는 내게 내미는 것은 시어머니 가슴이 꽤 사이즈가 된다고 내게 말하시는 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작고?)


그런데 왜 자기가 입으려 했던 속옷을 주는 것일까?

그 속옷을 받아가라고 나를 부를 때 시모는 "며늘희 너 일루와 봐" 라며 뭔가 무섭게 나를 불렀다. 내가 조금 놀라 무슨 일인지 여쭈니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이전에 보인 태도를 가지고 서운하다 - 어쩐다 - 혹은 혼내시려나 했더니 대뜸 "너는 속옷 뭐 입냐" 고 물으신다. 나는 당황했다. 시어머니가 이제는 내 속옷까지 물어보시는 이 사태는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그리고 가져가라고 반강제식으로 무조건 받으라는 모습이 싫었다. 나는 그 속옷을 보기도 전에 몇 번이고 사양했었다. "어머님 입으세요. 아니다 싶으면 환불하세요." 때마침 임신 중이라 좋은 핑계다 싶어 저는 임산부라 임산부용 입노라 알려드렸더니 서랍 저 깊이 놓여있던_ 이전에 다 챙겨서 검정 봉지에 담아주지 못했던 사은품으로 받았던 양말까지 갑자기 던져준다. 그 모양새가 좋은 것을 주는 모습이 아니다. 그냥 구석에 짱 박혀 있던 것을, 필요 없어 있는지도 몰랐던 것을, 갑자기 꺼내 그야말로 나에게 던지셨다.


그걸 손에 쥐어주며 잘 입으라고 하신다. 잘 입고 싶지 않았다. 그리곤 어서 나가보라고 하신다. 거실에는 시동생이 앉아있었다. 그런 상황에 여성용 속옷을 들고나갈 자신은 없었다. 여자가 브라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시모의 둘째 아들에게까지 속옷을 든 모습이나 그 색깔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반품할 시기는 지났고 너에게 아주 딱 맞을 거 같아 일부러 챙겨놓은 것이라며_ 가져가서 꼭 입으라고 몇 번을 말하시는 통에 더 이상의 거절이 어려웠다. 내 표정은 점점 굳었고 기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모는 너무 편한 것이라고 좋지 않냐고 이제는 내 감정까지 컨트롤하려 했다.


내가 이걸 받으면서 좋아야만 하고 이걸 입고 편해야만 한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주신 속옷은 시동생이 알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속옷까지 챙겨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우리는 가족이니 며느리의 브라 정도는 모두가 보고 공유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이놈의 시월드는 이상한 나라이다.



솔직히 시어머니가 사놓은 맞지 않는 속옷을 받게 될 일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사양을 하고 거부를 한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자 나는 적어도 그것을 어떤 모양으로 거실로 들고나가야 할지 몰라 담을 것을 달라고 했다. 시모는 큰소리로 내게 호통하듯 "뭘 담냐-  그냥 들고나가라"라고 하신다. 정말이지 나는 나는 싫었다.

"어머님 속옷이에요 이걸 어찌 그냥 들고 나가요 어디 싸주셔야 가지고 가죠"

시어머니는 내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는 거 같았다. "다 가족인데 뭐 어떠냐 - 참 별나다"며 구석에 있던 쇼핑백을 그제야 꺼내 주었다.



그걸 들고 나오는 내 표정을 보고 남편은 무슨 일인지 그게 무엇인지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그 쇼핑백을 차에 두고 오며 바깥공기를 한번 쐬고 기분을 바로잡아야 했다. 남편에게 시어머니가 나한테 속옷을 주은 이유는 뭐냐고 물었다. 어머님이 작아서 나에게는 딱 맞을 거 같아 일부러 반품도 안 했다는 말과 한 번도 안 입었다고는 하시는데 어쨌든 내가 이걸 입어야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남편의 입은 꿰맨 것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도 적잖이 당황했나 보다. 그 속옷을 손에 쥐고 네 동생 있는 곳에 그냥 나가는 게 별나지 않는 거라고 했다는 말까지는 내가 너-어-무 피곤해서 하지 않았다.




마음이 가는 것들이 있다.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것이다. 무엇을 주려할 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더 나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받는 물건에서부터 행하는 태도까지 그 모든 면이 보이기 마련이다.



시어머니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 그리고 나를 위한 다며 챙겨주시는 것들이 나는 그저 감사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알쏭달쏭하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나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만 겸허히 받아들여 고맙게 느끼려 애써봤었다. 하지만 감사함을 노력하면서 까지 느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은 의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나는 시어머니 음식 맛있다는 글이 제일 공감되지 않고 (특히 시모 김치가 너무 좋다는 건 절대!) 같이 쇼핑 다니고 형편 모자라까 보태주고 말도 이쁘게 하신다는 시모의 사연을 보면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읽혀 지가 않는다. 판타지 소설도 그런 게 없을 거 같아 상상도 되지 않고 공감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글을 재미도 없다.


어머님도 어머님대로 며느리에 대한 환상이 이었을 것이다. 때마다 전화하고 뻑하면 방문하고 같이 사우나도 가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그런 며느리 말이다. 시어머니가 상상하고 공상하는 것들을 내가 어쩌면 해드릴 수도 있다. 단, 어머님이 내게 이런 식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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