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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매댁 Apr 22. 2021

눈물 젖은 빵도 사치- 영화<미나리>

위대한 이민자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찬사

<미나리>가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을 찾았다. 한국인 이민자의 자전적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있다는 희열과 더불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나와 남편 모두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나와 남편이 한 이야기는 이랬다.

짜증나.... 저거 뭔지 알아서 짜증나..

<미나리>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가족의 유대, 또는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에 대한 감상이라는 두 가지의 큰 갈래가 있는듯 하다. 타지의 삶을 경험했던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역경을 이겨내는 미나리의 메타포보다는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야만 하는 이민자의 삶이 그대로 담긴 것이 가슴을 쿡 찔렀다.

모니카의 "아이구 엄마 우리 사는 꼴 다 봤네"하는 단순한 말에 담긴 감정, 엄마가 가져온 한국 음식을 꺼낼 때의 설레임, 몇 번씩 돌려보는 한국 비디오... 아. 하이퍼리얼리즘 수준이다.

애들만 집에 두면 아동학대 범죄, 슈퍼는 차로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경우가 대다수. 휴일은 온가족이 차로 나가 밀린 바깥일을 보고 아이들은 끌려다니며 기다리고 기다리는 날.



꾸역꾸역 살기

익숙한 사회를 떠나 새로운 사회 구조로 들어가는 것은 바닥부터의 시작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익숙해진다 해도 내가 태어나 살아온 사회가 아닌 이상 사회 제도와 보편적 지식과 인식, 문화를 완벽히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가족, 친척, 친구의 울타리 없이 나 홀로이기에 내가 잠시 쉬면 가족 모두의 삶이 멈춰선다. 알아서 되어지는 일이 하나 없다. 나 혼자면 차라리 나을텐데 책임져야 할 가족들도 있다.

멈춰서는 안된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꾸역꾸역 살아야 한다. 강물에 띄운듯 잠시 노젓기를 멈춰도 흘러가는 고향의 삶과 달리, 내가 멈추면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 이민자의 삶이다.


그래서 영화의 가장은 하루종일 어두운 건물 안에서 병아리 엉덩이를 쳐다보고, 주말엔 가족들을 끌고 병원과 거래처를 전전하고, 우울해하는 아내를 위해 교회를 간다. 아메리칸 드림이 이런 것이었나 현타가 온다. 그래도 이렇게 끝나가는 삶은 싫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해"라고 다짐한다.



내 마음처럼 되는 것 하나 없는

그 와중에 내맘 같은 것이 하나 없다. 좀 풀리나 하면 꼬여버리고, 좀 나아지나 싶으면 어그러진다. 풀이 좀 자라나 했더니만 우물이 마르고, 장사 좀 되나 했더니 아니란다.

끝까지 내몰리고,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에 가슴이 짓눌려도 철저하게 혼자이고 잠시도 기댈 곳은 없다. 한껏 상황이 어질러진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어나 스스로를 바로잡고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 한숨만 나오는 트레일러 집에 도착했지만 다른 갈 곳은 없고, 나 아니면 아이들을 먹이고 재울 사람 없던 모니카처럼.

그래서 이제 좀 풀리나 싶던 농장을 하루 아침에 잃었지만, 제이콥은 애도의 기간이란 사치를 부릴 새 없이 아침부터 망가진 농장을 정리하고, 다시 씨를 뿌렸을 것이다.



눈물 젖은 빵도 사치

쉼이 없는 고단한 이민자의 삶. 절망이 사치인 삶. 

홀로 보낸 미국 생활과 영화 속 이민자 가족의 삶과 겹쳐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며 친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눈물 젖은 빵? 그런 것도 없었어. 눈물로 빵 적실 틈이 어딨어.
돌덩이 같이 딱딱하고 맛대가리 없는 빵을 목 메어가며 꾸역꾸역 씹고 삼켜내는게 그 생활이었어.

이렇게 잔잔하게 이민자의 고단함을 그려낸 영화가 있을까. 어떠한 반전이나 사건보다도 이 가족의 하루하루를 지켜보며 그 피곤함이 서서히 누적되고, 그럼에도 삶을 놓을 수 없는 그 상황과 공명하게 된다.


그래서 <미나리>는 "위대한 이민자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찬사"였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고된 하루를 수 없이 보내야했던, 그리고 지금도 지친 어깨에 가족의 희망을 걸고 몸을 누이는 사람들. 그렇게 사회와 자식들의 거름이 되고 디딤돌이 되는 사람들.

적어도 내겐 <미나리>가 이민자들에게 수고했다, 힘내라는 말이나 희망보다는, 지금 당신이 이렇게 버티는 것이 대단하다고, 엄청나다고 칭찬해주고 존경을 표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까지 꼭 석권하시기를 응원한다. 배우님 너무 멋져요 하트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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