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아예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 '워킹 쓰루'라는 표현을 이렇게 자주 써 볼 때가 또 올까.
원래는 오랜만에 학생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수능 성적표를 배부하기로 한 날이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다 2.5단계니, 핀셋 방역이니, 3단계니라는 말이 무수히 오갈 때에도 '시험은 예외'라는 단서가 따라붙었기에, 시험을 보러 1,2학년 학생들이 매일 학교를 드나드니 3학년 아이들은 교실까지 '입성'할 기회를 또 놓치고 말았다. 아이들끼리도 몰리면 위험하니, 학급별로 시간을 나누어 '워킹쓰루'로 성적표를 배부하기로 했다. 한달 여만에 겨우 얼굴을 보는데, 성적표를 불쑥 들이밀어야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학교 편지 봉투에 급한대로 성적표를 접어서 담았다.
우리 반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여느 때 같으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수험표를 들면 할인해 준다는 미용실을 다니며 ,갖가지 색으로 머리카락을 물들였을텐데, 코로나는 그것마저도 막아버린 것 같았다.
짧게나마 서로 인사를 주고 받고, 성적표를 전달하고, 아이들을 돌려 보낸 뒤 자리에 돌아왔다. 다른 때와 달라지지 않는 유일한 것은, 메인 뉴스에서 여전히 '수능 만점자'를 마치, 인생의 승리자처럼 다루고 있다는 것.
우리 학교 아이들은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 동네에 비하면, 학생들의 학교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을 찾고, 고민이 있어도 선생님을 찾고, 사교육 기관에서는 분당 비용을 책정한다는 학생부 분석이나 자기 소개서 첨삭도 선생님에게 요청한다. 코로나로 학교의 도움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수능 점수들은 여지없이 하락세를 타고 말았다.
교실은 틀에 박히고 답답한 공간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느껴지는 공간의 힘이 있다. 한 마디의 말도, 그 안에서는 내 마음의 무게가 실려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건네는 이야기들은 내 속내와는 달리 찬바람과 함께 아이들에게 가 닿지 않고 어디론가 흩날려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담임의 입장에선 우리반 아이들이 아직까지 모두 무사히, 비정상적인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버텨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특하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에게, 어느 때보다 차디찬 마음에 따뜻한 격려가 필요했을 아이들에게 겨우 성적표를 쥐어주면서도 이런 마음조차 따뜻하게 얹어줄 수 없어 온종일 찜찜했다.
교무실에서는 1월 초에 예정된 졸업식도 '워킹쓰루'로 하자는 논의들이 이어지고 있다.
시작도, 끝도 스쳐 지나가듯 보내는 한 해가 되었다.
오늘 받은 성적표는 스쳐 가는 일들로, 단 올해 흘렸던 눈물과 땀들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나가는 거름으로, 그렇게들 2020년과, 고3과, 10대를 마무리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