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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희 May 02. 2020

인생의 대답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딸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이 산책을 하고 있다.

짙게 저물어 가는 노을을 마냥 보고 걷고 있는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엄마는 처음 아빠를 어떻게 만났어요?"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딸이 이성에 관심이 생겼는지 아니면 사이좋게 손을 잡고 우리를 스쳐 지나가던 젊은 연인을 봐서 인지 내 팔짱을 끼며 묻는다.


"엄마?  엄마는 아빠 처음 본 날 기억하지. 동아리 방이었어. 아빠 혼자 과제를 하고 있었어. 그날 엄마가  동아리 가입하러 처음 동아리 방에 찾아간 날이었거든. "


"오호~ 아빠 첫인상이 어땠어요? "


"모범생 같았어. 보통 새내기 때는 다들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놀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모범생 같더라고"


"아..... 아빠는 그때도 모범생 같았구나...."

딸아이가 아빠를 쳐다보며 키득거린다.  아빠를 보는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엄마랑 아빠는 뭐 첫눈에 반했다 그런 건 아니죠?"


"흠....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맞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엄마는 아빠 처음 본 날 아빠랑 결혼할 거라 생각했어"


"예?!!! 뭐라고요?"


진정 놀란 모습으로 딸아이가 되묻는다.

연신 나에게 정말이냐 진짜냐 계속 묻는다. 어떻게 결혼을 할 줄 알았냐고 묻는다.

아빠가 박보검도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공유도 아닌데 그것이 가능하냐고 연신 남편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묻는다.


"응, 엄마는 아빠 처음 보자마자 '너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이랬어.

네 아빠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어. "


딸아이는 뭐가 그리  웃기는지 웃느라 눈이 작아진다.

그러면서 연신 엄마와 아빠 얼굴을 번갈아 본다.

지금의 엄마 아빠 모습에서 상상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지

너무 담담히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는 내 대답에 딸아이는 키득거린다.


"그럼 엄마가 먼저 아빠한테 고백한 거예요?"


"응"


"우와 대박!!"


딸아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웃는다.

그러면서 연신 질문을 한다. 뭐가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첫눈에 반했는지, 언제 손잡았는지, 누가 먼저 사귀자고 했는지 등등


내 솔직한 대답에 쑥스러움은 딸아이 몫이다.

힐끗 쳐다본 남편의 얼굴에 쑥스러움과 뭐가 모를 뿌듯함이 뒤섞인 미소가 퍼진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렸는지 딸아이는 연신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른다.

"말도 안 돼. 엄마가 아빠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요?"

"뭐가 말이 안 되냐? 아빠가 그런 사람이야~~"

티격태격하고 있는 남편과 딸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좀 빠르게 걷기로 한다.  당분간 저 둘은 저렇게 시끄러울 거 같다.

나는 좀 조용히 걷고 싶은데 말이다.


가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우리 아이가 저렇게 훌쩍 커서 엄마 아빠 사랑 이야기를 물어볼 때면,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되짚어 보곤 한다.

그 시절이 너무 아득하다.


남편을 처음 봤을 때, 당돌하다고 해야 할지,  엉뚱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슨 운명이라 해야 할지,

스무 살 나는 내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사람 좋게 웃고만 있는 이 사람이랑 내가 결혼을 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황당 그 자체였다. 풀린 운동화 끈을 묶으려고 머리를 숙이는 순간, 내 머릿속에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전혀 모르는 스무 살 남자애를 방금 봤는데, 결혼이라니!! 그 황당함과  어이없음이란. 그런 생각에 나도 어이가 없어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스무 살 봄,  남편을 처음 본 날,  나는 어떻게 처음 본 남자랑 결혼을 할 거라 생각을 했을까?

그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이런 확신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하나?


알 수 없다.

어쩌면 답이 없는 것을 질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흔을 훌쩍 넘게 살았지만 내 인생은 답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보다 많다.


하지만 인생이 꼭 확신에 차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 모든 질문에 꼭 해답이 있어야 할까?


아빠를 놀려대던 딸아이는 저만치 뛰어가고,

딸아이 장난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남편이 다가온다.

20년도 훨씬 지난 이야기인데도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남편은 쑥스러워한다.


지금 나를 스쳐가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무엇을 싣고 오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바람이 다 멈추고 난 다음 우리는 그 바람이 무엇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질문과 운명이라 불리는 것들은 그렇게 더 훗날 자연스럽게 답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인생에 답을 기대하며 조급하게 불안하게 현재를 살아서는 안된다.

인생은 답을 찾기 위한 것도 아니고 끝을 위해 달리는 경주도 아니니까.

있는 그대로 인생을 바라보고 현재를 살아야 한다.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당신을 처음 본 날 당신과 결혼할 줄은 알았지만, 당신과 결혼해 우리 딸을 낳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


삶을 살면서 나는 내 인생에 간혹 질문을 던지곤 한다. 하지만  항상 그 질문에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그 답을 내 삶이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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