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승희 Feb 28. 2019

2월의 어느 날

잘 자라 준 우리 아이들에게 보내는 글

2월은 예전부터 아주 짧다는 생각을 했다.

고작 며칠 다른 달에 비해 적을 뿐인데 이상하게 뭐 시작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훅 지나가버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해의 시작인 1월도 아니고, 봄을 알리고 새 학기 시작을 알리는 3월 사이에 낀 어중간한 그런 달로 말이다.


요새 지인들 카톡 사진에 아이들 졸업 사진이 많이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2월은 졸업식을 하는 달이다. 하도 오래전에 졸업식장을 가고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2월에 졸업을 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보아왔던 아이들이 어느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금세 컸는지 신기하다.


세월의 덧없음은 아이들에게만큼은 예외다.

그저 그렇게 흘러가버리는 줄 알았던 세월은 아이들을 훌쩍 키워내고 있었다.


아이들 크는 것을 보니, 세월이 눈에 보인다.

덧 없이 흐른 세월이 아니라 아주 잘 흐르고 흘러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 그런 세월이 보인다.

세월만큼 큰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고 대견하다.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면, 할머니는 항상 내 등을 쓸어내려 주셨다.

마치 내가 목구멍으로 넘기는 밥들이 내 몸에 들어가 잘 소화되기를 도와주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시곤 하셨다.


그러면서 항상 추임새를 넣곤 하셨는데,

잘 먹으니 이쁘다, 잘 먹으니 건강하겠다. 잘 먹는 거 보니 내 강아지 잘 살겠다.
그럼 그럼 아주 잘 살 테야.

이렇게 말이다.


할머니는 항상 그러셨다.

밥 잘 먹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할머니는 매번 이러시나 싶었다.

뭐 할머니는 먹는 것이 귀한 시절에 사셨으니 그런가 보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할머니가 밥 한 그릇 마음껏 먹을 수 없었던 모질고 가난했던 시절에 태어나고 자라서, 내 새끼들이 잘 먹는 모습에 그리 대견해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떠한 시대를 살았건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내 아이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것만큼 대견하고,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을.

아이가 밥을 잘 먹으면, 그것으로 좋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잘 크고 있다는 말이고, 잘 크면 건강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건강하면 우리 아이가 잘 살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할머니가 밥 먹는 나를 대견해하셨던 것은 본인이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을 살아서가 아니다.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서 잘 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밥 먹는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시면서 그렇게 대견해하신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밥 먹고 힘내면 또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할머니는 나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반찬은 없어도 항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밥을 지어주시던 우리 할머니,

그 따뜻한 밥 한 공기가 내 자식 몸에 들어가 그런 온기를 품어주기를, 할머니는 바라셨던 것은 아닐까.


살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고, 혼자 밥을 먹다 나도 모르게 운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등을 쓸어 주시던 우리 할머니를 생각한다.

' 잘 먹으니 이쁘다. 잘 먹으니 건강하겠다. 잘 먹으니 잘 살겠다. '

그래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힘들어도 버텨야지.

새어 나오는 눈물과 콧물을 훔치며 그렇게 밥을 다 먹었다.

내가 잘 살 것이라 한치 의심도 없이 믿어 주었던 우리 할머니가 떠올라 그렇게 밥을 잘 먹고 견디어 냈다.




대견하게 잘 자라 준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공기 먹이고 싶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

당장 너무 힘들고 슬퍼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고, 그 시기를 버틸 힘만 있으면 된다고,

그러니 밥을 잘 먹어야 한다고.

건강하기만 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당당히 맞설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잘 먹으니 이쁘다. 잘 먹는 거 보니 잘 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년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