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도 열심히 살아볼 거야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계속되는 죽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지쳐갈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학교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가 되었고, 기숙사는 학생들을 모두 본가로 돌려보냈다. 아빠와 오빠는 해외에서 발이 묶였다. 그래서 엄마와 단 둘이서 집에 있게 되었다. 집에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맛있는 걸 잔뜩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날 일이 없었다. 집에만 있으니 좀이 쑤셨지만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에서 내 마음은 편했다.
그 무렵 농구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농구를 축구보다 좀 더 잘하기도 했고, 창단멤버라는 소속감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만들어진 동아리여서 활동하는 사람이 적어서 나의 존재감이 더 큰 느낌이었다. 그렇게 소속감으로 충만해서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냥 내가 뭔가를 하고 있고,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운동하며 땀을 흘리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만큼은 모든 생각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같았다.
시간은 빠르게 갔고 2학년 겨울이 되었다. 대2병이 슬슬 도졌다. 대학생활 2년 동안 학업적으로 이룬 성과가 무엇이며, 친구들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운동만 한 것인가. 현타가 왔다. 어느 하나 주도적으로 이뤄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고등학교 때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한 명이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편입을 성공했다. 나의 열등감은 폭발했고 뭔가가 당겨졌다. 얼마 없는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속으로 분노하고 상처받았다. 나를 잘 챙기지 않는 것 같았고, 다들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친구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에 팔에 상처가 늘었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대학교에 와서 잘하는 것 하나 없었으며, 친구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기는커녕, 다정하게 나와 놀아주던 친구들에게 마음속으로 칼을 꼽고 있었다. 그래서 연말에 동아리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내년부터는 공부하느라 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고. 내가 1, 2 학년 때 죄를 많이 지어서 이제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따뜻했던 친구들은 그 소식에 많이 아쉬워했다.
동기가 연구실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것에 힘입어 수업이 마음에 들었던 교수님의 연구실에 인턴을 하게 되었다. 자취도 시작했다. 이제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똑바로 살고,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뭐든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열정에 기름을 잔뜩 부어놓은 상태였다.
학기가 시작되며 열정에 불이 붙었다. 새벽운동을 했고, 스터디 동아리를 3개씩 하고, 학점을 풀로 채워서 들었으며, 인턴 활동까지 해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잠도 많이 못 잤지만 졸릴 때 커피를 들이켜면 풀충전 된 것 같이 정신이 맑아졌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받았던 성적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고, 내 자신감은 하늘을 뚫었다. 책도 많이 읽었는데,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에 감명을 받아 30살이 되기 전에 100억을 벌겠다고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하지만 속은 깊은 불안감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불안을 감추려고 더 과장되게 열심히 했고, 나는 언젠가 무너질 거라고 그거에 대비해야 한다고 일기장에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