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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자까 Nov 24. 2024

죽으려고 했다

삶을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과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고 나를 싫어할까 봐 걱정했다. 어렵게 사귄 친구들을 잃기가 싫었다. 그래서 활달하고 꼬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고, 그럴수록 얼마 남지 않은 마음의 연료는 점점 바닥이 났다.


 여름 방학이 지날 무렵 몸이 점점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부지런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누가 감시하지도 않는데 늦잠을 잔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까 봐 걱정했다. 정오가 지난 이후에 자취방 밖으로 나가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늦게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 흘끔 쳐다보며 게으른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해가 떠있지 않는 저녁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겨우 연구실에 갔다. 저녁에 출근하는 나를 보며 연구실 사람들이 나를 게으르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상 연구실에도 가지 못했고, 늦은 시간에 한 번의 외출을 할 때는 자취방 앞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과 소주를 사 왔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고통이 꽝꽝 얼어 마비되는 것 같았고, 술을 마시면 그래도 꽉 막힌 가슴이 말랑해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아이스크림과 소주를 사가는데 직원이 ‘아이스크림 하고 소주는 안 어울리는데^^’라고 했다. 억지웃음을 짓고 자취방에 돌아왔는데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제는 외출도 무서워서 잘 못하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생각했고, 편의점 직원까지 한심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넷플릭스만 보며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가끔 무서우면 옷장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전보다 심해졌고, 나의 모든 면이 한심했다. 고3 때부터 우울과 강박에 시달렸지만 스스로 노력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4년 동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제는 그것을 실행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너무 지쳐버렸다.
머릿속에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생활패턴은 박살 났고
밥도 안 챙겨 먹고
유튜브 하고 넷플만 쳐보고
그냥 짐승이 된 거 같다
이제 희망이 없다
조금 지친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걸 알지만 이 또한 다시 올 거란 것도 안다. 다 놔버리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울은 계속 찾아온다.
과거는 죄다 잿빛이고
지금은 불행하고
미래는 캄캄하다
주변 사람들은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뿐인데
왜 나란 사람은 항상 불행할까
그냥 다 끝내버릴래

2021.10.13 일기장


하지만 용기가 없었고, 간절하게 죽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누가 도와주고 구원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국엔 죽게 될까 봐 두려워서 밤을 꼬박 새운 날, 학교상담센터에 신청서를 넣었다. 상담을 시작하기까지 한 달의 대기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 문헌을 통해 내가 선택한 방법의 사망기전을 파악했고, 죽을 때 잠깐의 고통이 삶의 고통보다 훨씬 작다고 생각했다. 삶의 소망과 죽음의 소망을 담은 저울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아주 잠깐 동안 살짝 죽음의 소망 쪽으로 기울었다. 그 순간 참지 못하고 실행에 옮겼다. 공포심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렇게 얘기하더라.


‘그 순간, 저는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었어요. 그 이후로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죠.’


개뿔. 실패한 이후 마지막으로 간절히 소망했던 일마저 실패해 버린 좌절감은 나를 더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충동으로 이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다. 죽고 싶지 않은 날이 오길 바라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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