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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나무숲 Jun 26. 2020

아이의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엄마표 공부와 아이의 성장

코로나 19의 확장세가 학원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학원 선생님과 학생들 중에도 확진 판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저희 집 아이들도 다니던 학원을 정리하였습니다. 아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까 싶은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리 가족이 확진자가 됨으로 인해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나 친지들이 피해를 입을까 싶어 조심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첫째 아이는 대형 학원의 단과 수학반을 다녔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제는 수학학원을 좀 다녀봐야 하지 않나 싶어 지난 2월부터 다녔으니 한 세 달 다녔나 봅니다. 처음엔 친구들이 모두 다니니 자신도 당연히 다녀야 하는 곳인 줄로 여기고 버스 타고 왕복 1시간, 수업시간 일주일에 세 번 3 시간을 그럭저럭 다녔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넘어가니 그 생활이 좀 힘들었나 봐요. 코로나 사태도 겹쳤고, 아이도 학원이 자신의 일상에서 차지하는 과도한 양에 지쳤고 해서 학원 대신 저와 공부하는 걸로 합의하고 수학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끊는 선택을 하기는 사실 쉽지 않았어요. 학원은 진도의 스케줄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내 아이가 잠깐 쉬는 사이에 다른 아이들은 다음 진도에 다다르게 됩니다. 내 아이만 몇 주 쉬었다가 학원에 가서 다음 진도를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과 다시 발맞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내려면 별도의 도움 없이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학원도 진도에 뒤떨어진 아이는 다시 받아주지 않아요. 한 반에 열 명이 넘는 아이 중 진도를 따로 챙겨야 하는 한 명이 생기면 학원도 선생님도 아이들도 여러모로 불편해지니까요. 그래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위험부담을 충분히 받아들인 후 에야 학원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날짜에 일정 양의 공부를 꾸준히 하는 진도 스케줄을 스스로 관리할 수만 있다면, 집에서도 물리적으로는 학원과 거의 흡사하게 공부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원을 가지 않는 대신 아들과 저는 일주일에 3번, 1시간 30분 동안, 수학 문제집 3장을 풀기로 스케줄을 맞췄습니다. 시간 안에 다 못 푼 문제는 숙제로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약 한 달여 진행했습니다. 진도 속도는 학원에 비해 약 1/3 정도 뒤쳐지지만 아이가 그 정도가 본인에게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라 존중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와 제가 합의해서 함께 공부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에요. 아이가 열네 살이 되는 동안 수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가 영어책을 곧 잘 읽게 되거나 수학 문제집을 꾸준히 풀게 되는 결실이 있을 때도 있었고, 그 반대로 서로 싸우고, 아이가 혼나고 울며 끝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아이 공부를 도와주려는 시도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코로나 사태로 학원에 못 가는 경우가 생길 때 아이가 찾아오면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요.


제가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걸 적극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공부할 때 아이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도움은 사실 사회적인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아이가 공부하는 과정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이가 교과 지식을 대면하는 첫 번째 과정은 우선 책을 읽는 것입니다. 교과서 또는 문제집이겠죠. 저는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함께 해 본 경험이 있으므로 수학을 예로 들겠습니다. 수학은 인간이 이해하는 세상의 규칙을 수리적으로 정리한 학문입니다. 당연히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글로 이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몇 번 읽어봐도 수학 정의가 잘 이해되지 않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혹은 이해가 쉽게 되는 것 같더라도 이게 왜 중요한 지 배움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응용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이해가 보완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에요. 문제를 풀면 신기하게도 설명으로만 읽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던 수학 정의가 좀 더 잘 이해가 됩니다. 수학 지식이 적용되는 예시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아이가 머릿속에 그렸던 가설에 확신이 생기는 거죠. 그리고 여러 문제를 풀수록 수학적 정의로 읽었던 언어들의 의미를 더 정교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충분해지면,  어떤 수학 지식이 어떤 문제 풀이에 활용되는지 분류합니다(categorizing). 점차 쉬운 문제는 덜 주목하고 어려운 문제에 집중해서 노력과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과 논리 관계를 탐색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지식 언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추리하고, 응용문제에 적용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수학적 인지 발달이 일어납니다.


아이가 수학을 이해하는 과정은 하나의 수학 주제 아래서도 어떤 지식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지 평가하고, 어떤 행위에 자신의 노력을 조준할지 탐색하고 결정하는 사회적 능력을 활용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과정에 어른이 함께 하면 아이는 모델링(modeling)을 통해 훨씬 수월하게 학습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으로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아이에게 모델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본인이 어려워하는 수학 문제를 엄마가 푸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셀 수 없이 많은 사회적 코드(social codes)들을 눈치채고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차용합니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하는데 부모가 수학적 지식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 가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부모가 배움을 체득하는 과정을 아이가 옆에서 관찰할 기회를 준다는 데 의미가 있으니까요. 문제를 푸는 부모가 때로는 틀리기도 하고, 때로는 성공적으로 답을 맞히기도 합니다. 각각의 성공과 실패의 케이스가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전략을 수립할 때 필요한 데이터가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너무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는 판단하는 동물이에요. 엄마, 아빠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뿐, 그게 결말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오래 하다 보면, 아이가 성장하는 게 점점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아이와 공부하는 게 재밌어집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그래서 여전히 아이와 함께 공부합니다. 아이가 수학 문제 풀다 어렵다 하면 내가 한 번 풀어볼까 하고 같이 풉니다.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별 두려움 없이 풀 수 있었습니다. 못 풀면, 해답지 펴 놓고 아이와 머리 맞대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못 푼 문제에 별표 쳐 놓습니다. 해답지 풀이로 익혔으니  네 스스로 힘으로 푼 게 아니니까 혼자 다시 풀어보고 복습해오라고 아이에게 숙제 내줍니다.


이렇게 엄마표 공부법으로 도와주면 아이가 나중에 공부를 잘하게 되는지는 저는 아직 모릅니다. 그저 현재의 과정이 즐거우니 함께 할 뿐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엄마표 공부법이 천재를 키운 엄마들의 성공담이나 족집게 정보를 알려 경우는 많은데,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실질적으로 궁금했던 건 성공담보다는 엄마의 도움을 통해 아이의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이 무엇인가 였습니다. 조금만 가르쳐도 빠르게 성장하는 재능 있는 아이는 분명 세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아이들은 그렇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부모로서 내 아이를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엄마표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이와 공부 과정을 합의하고, 아이가 결정한 수준에서 하루, 이틀 성공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큰 결실도 나타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은 성공이 쌓여야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십여 년 키워보니 아이 성장의 메커니즘이 그렇더군요. 각 가정의 분위기와 여건에 따라 엄마표, 아빠표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재치 있게 응용할 것인가는 각 가정의 몫이자 권리입니다. 코로나 시대, 부모의 역할에 대한 또 다른 단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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