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겪는 초등과 중등 수업의 차이
중학교 영어 수업의 딜레마
첫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공부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평가 기준이 그렇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지식을 맥락 상 이해하고 아이의 의사 표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도만 알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부터는 해당 지식을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쓸 수 있는 능력, 거의 재생산(reproduction) 수준의 이해력과 응용력을 요구합니다. 아이가 최대한 많은 지식을 수용하도록 하는 게 교육의 목표라면 이런 방법이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응용과 활용을 얼마나 잘하는 가를 목표로 둔 이들에게는 모순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제가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관찰해보니 아이들이 중학교 공부 방식에 적응할 때 거치는 과정은 과목에 따라 분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과학이나 사회 과목은 중학교 공부가 초등학교 공부에 비해 레벨이 높다고 주로 평가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은 실험에 대한 정리와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반해, 중학교 과학은 실험 자체보다는 그 실험의 원리와 특징을 설명하는 지식을 다루는 비중이 훨씬 많고 더 중요하게 간주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지식의 양과 깊이가 넓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중학교의 공부 방식이 어렵다고 여기지만, 아이들 대부분 그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학습의 모습과 많이 다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대표적인 과목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입니다. 첫째 아이의 친구들의 대화를 듣다가 아이들이 영어에서 특히 이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야, 너희 반 이번에 영어 단어 시험 봤어?”
“응”
“너 break 뜻 맞았냐? 나는 break의미를 ‘부수다’라고 썼는데 선생님이 틀리다고 하셨어. break 뜻 뭐라고 썼냐?”
“쉬는 시간 이라던데.”
“쉬는 시간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부수다도 맞지 않아?”
“…. 몰라”
사실 모른다는 마지막 답변은 break가 ‘부수다’는 의미가 있는지 아닌 지를 모른다기보다는 그 답변을 맞는 답으로 쳐줄 수 있는지 아닌지 그 기준을 모른다는 뜻이 숨어있습니다. 옆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break가 부순다는 의미도 갖지 않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Break가 ‘부수다, 깨지다’의 의미도 있다고 동조하는 순간, 아는 지식을 드러내고 으스댄다고 또래집단에서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모른다고 하려면 영어 채점의 기준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증명을 통해 설득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본인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는 이런 사회적 기준이 숨어있는 평가는 연루되지 않고 유보합니다. 하지만 서서히 학교가 압력을 넣는 지배적인 기준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그 안에 숨은 특징들과 기준을 체득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대화를 지켜본 저는 속으로 ‘너희가 대한민국 중학교에 적응하는 중이구나’라고 중얼거렸습니다. break의 뜻이 ‘부수다’는 틀리고 ‘쉬는 시간’만 맞는 특정한 맥락을 가진 곳, 대한민국 공립 중학교. 저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만,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영어시험에서 소방관을 ‘fireman’으로 쓰면 맞고 ‘firefighter’로 쓰면 틀렸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가치 기준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왜 ‘쉬는 시간’은 맞고 ‘부수다’는 틀리다고 하셨을지 이유는 짐작이 갑니다. 영어책 본문에서 break가 ‘쉬는 시간’의 의미로 활용되었을 것이고, 아이들 중 선행학습이나 학원에서 별도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점수를 더 잘 받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본문 지식만을 답의 기준으로만 인정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변하지 않는 학교와 교실의 보수성에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정해진 규범과 기준이 있으면 그것이 인간의 합리성을 압도하는 공간, 학교. 내 아이가 청소년기를 거치며 ‘공정’의 가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런 학교의 교육 문화가 상식의 기준으로 작용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영어에서 이런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학교의 평가 기준은 거의 변하지 않는데 반해 아이들의 일상에서 갖는 영어의 지위와 활용도는 크게 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 며칠 전 TV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featuring, AKA‘ 등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시면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는 문화적인 코드가 담긴 영어 표현을 TV 화면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세계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고, SNS의 발달로 영어적 표현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젊은 세대의 습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영어를 공부가 아닌 맥락에서도 자주 활용하는 시대적 환경이 영어를 지식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서 활용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게 끔 아이들의 인식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영어를 활용해서 ‘성장’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려면 위와 같은 일시적인 자극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의도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힘을 기르는데 영어를 활용하려면, 아카데믹(academic)의 맥락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기회는 공부하는 장소인 학교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조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교의 영어 교실에서 아이에게 영어 표현의 기회도 주고 피드백도 주어야 합니다.
수업의 개혁이 더디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종류의 모순을 겪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겪는 혼란과 모순을 형용할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무엇이 잘못되어서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건지 이유를 모릅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혹여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억울하다고 토로해도, 마음을 헤아리고 들어줄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탓으로 돌리거나, 그냥 포기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 시민의 모습이 과연 이런 사람인지 고민해볼 일입니다.